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이 빛나는 밤에 Jun 18. 2024

남편 바라기

닮은 듯 너무 다른 우리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주말은 늘 분주하다.

조용한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 여유가 없다.

아침 먹고 뒤돌아서면 또 뭘 먹을지?

끼니를 걱정하는 평범한 주부였다.


푸짐하게 만들어 놓으면 게걸스럽게 먹어주는 가족이 있기에 언제나 무얼 만들지? 고민한다.

외식하는 것보다 집밥이 밥 있다고 말해주는 가족이 있어서 힘들어도 한 끼의 식탁을 차린다.


혼자였으면 대충 해결했을 한 끼였다.

등갈비 깔고 김치를 올리고 한 시간가량 푹 삶았다.

고기 국물에 어우러진 갈비와 숙성된 김치찜의 맛은 감칠맛 나는 밥도둑이었다.

사진을 찍어놓지 않아서 아쉽다.

중요한 건 또 과식했다.

달리기를 곁에 두고 생활한 다음부터는 늘 체중에 신경을 쓴다.

몸무게가 늘어나면 한 발 앞서는데 무척 힘들다는 걸 안다.


배도 부르고 나른함이 밀려올 때쯤 살며시 말을 꺼낸다.


"산책하러 갈까?" 

혼자 달리던 순간에 연인끼리 산책하는 모습이 가끔은 매우 부러웠다.


아까부터 연신 야구 경기에 빠져서 밥 먹을 때도 가족 얘기를 건성으로 듣던 남편이었다.


"너랑 산책 안 가?

넌 너무 빨라서 혼자만 앞서가!

다리가 아파서 천천히 벤치에서 쉬었다가도 가고, 걷기 싫으면 그냥 집에 오고 싶어"


귓가에 울려 퍼진 남편의  뼈 때리는 한마디가 지나간 과거를 스치게 만들었다.

혼자 가지 말고 함께 가야 하는데 항상 내 보폭만 생각하고 빨리 걷는 나였다.


다시 기회를 엿보더니 다시 아껴둔 속 마음을 꺼냈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야구도 보고 행복하다.

나에게 이런 휴식이 필요해!"


남편이 꺼낸 한 마디에는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좋아하는 야구 보는 게 행복하니가 산책 갈 거면 혼자 가라는 의미 아니까?


언제부터 변했는지 모른다.

쫑알쫑알 애교도 떨고 그냥 쓸데없는 말을 건네고 살며시 내 방으로 사라진다.

남편이 웃어주면 좋고, 그런 미소 속에 나도 웃는다.

책과 글쓰기와 친구 먹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푼수가 되어간다.

그게 아닌가?

어쩌면 어느 순간 마음의 평정과 고요가 찾아오니 남편을 대하는 태도도 바뀐 건 같다.

내 삶의 여유가 생기니 어떤 말을 해도 그냥 웃어넘기는 버릇이 있다.

그것도 순간이었다.

내 기분이 좋을 때 말이다.


"과식했나 봐, 나랑 산책 가자!"

난 당신을 원해"


다시 한번 당신이랑 산책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순수히 옷을 챙겨 입는다.

그 틈 사이로 아들도 끼어든다.

오른쪽에는 자상한 남편과 왼쪽에는 든든한 아들을 끼고 시원한 바람 벗 삼아 천천히 걸었다.

매일 달리던 길을 환한 레온 싸인 불빛과 어우러진 자연과 함께 행복 사냥에 나섰다.


거친 호흡을 참아가며 혼자 달리던 여유로운 호수공원을 남편과 동행하니 입가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그런 나와는 달리 남편의 마음은 내일 해야 할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네가 뭘 알아?

내일 처리해야 할 일들만 생각하면 머리가 빠게 져!"

앗아간 세월만큼 등에 진 무게에 마음이 시리고 애렸다.

가족의 무게에 책임지는 중압감에 눌려 어느새 애처로운 중년 남성으로 변해버렸다.


"고맙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주는 남편 덕분에 좋아하는 취미생활 실컷 누리고 산다.


그래서 요즘에는 남편의 비유를 잘 맞추고 산다.

남편이 내 돈 줄이고, 밥 줄이고, 사랑줄이었다.


얼마나 행복한 고민인가?

딱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사는 게...

그건 너무 슬픈 현실인가?

주위에 다정다감한 남자들이 많은데 인간이란 원래 이기적인 존재였다.


삶에 정답은 없다.


내 삶의 정답을 찾으로 오늘도 행복사냥에 나선다.




작가의 이전글 남들이 문제가 아니라 내 태도가 문제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