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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빛나는 밤에 Jul 03. 2024

영광의 상처는 관점을 디자인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면 그 안에 진리 있다.


"새로운 환경 설정"


영광의 상처는 관점을 새롭게 디자인했다.


낯선 이방인들의 호의에 뇌가 심각하게 예민해졌다.

복잡한 생각들을 차분하게 매듭짓기 위해서는 상쾌한 공기와 시원한 바람과 푸릇푸릇한 나무 향이 필요했다.


저녁시간이 코앞에 두고 있어서 그냥 콧바람만 쐬고 어수선한 뇌를 비우는 작업만 하려고 가벼운 옷차림에 샌들을 신고 걸었다.



무거운 정신 때문에 한적한 벤치에 앉아 생각 정리할 공간이 필요했다.  

막상 나풀 되는 나뭇가지와 시원하게 흐르는 시냇물을 보니 마음이 바꿨다.

 걸어도 쥐덫에 걸려버린 파편들은 바람에 소멸되지 않았다. 무언가 집중할 거리가 필요했다.


처음 호수로 향할 때는 달릴 의욕도 한 줌 남아 있는 에너지도 없었다. 

싱그러운 자연을 보며 걸어도 여전히 내 머릿속은 흉측한 전쟁터를 방불쾌했다.


무언가 돌파구니가 필요했다.


그냥 몸이 반응하니 달렸다.

러닝 차림이 아니라서 다소 불편했지만 1킬로 정도 가쁜 호흡과 함께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흐르기 시작한 땀이 다시 몸속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고요하던 호수 한복판에 시원한 물줄기와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산책하던 사람들이

"루나 쇼"  행렬에 발걸음을 멈췄다.


군중 속에 숨어 있었다.

준비된 쇼가 끝났다.

다시 달리고 싶은 생각이 온 의식을 집어삼켰다.

골인 점은 매번 낙인찍힌 다리 밑이었다.

조금 달리니 딱딱한 샌들의 끝부분이 발목에 부딪치는 외마디 소리에 자지러졌다.


"멈쳐!~ 아프단 말이야"


예민한 몸은 즉각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나에게 속삭였다.


싸웠다.

살갗이 벗겨 서서 달리는 내내 시린 약간의 통증이 나를 붙잡았지만 이런 하찮은 고통 따위가

나를 짓누롤 순 없었다.

3킬로 정도 달리니 목표 지점까지 완성!


알고 있었다.

견딜 수 있는 고통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나면 왠지 모를 자기 효능감이 전신에서 찌릿찌릿 울러 퍼졌다.


"해냈네!

  잘했다."


참 다행이었다.

복잡한 잡념들은  흐르는 땀과 함께 호수 공원의 공기 속에 버려졌다.

다시 밝고 쾌활한 긍정 모드로 내 삶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이게 뭐람?

다시 걸으니 몇 군데 벗겨진 껍질 자국에 더 시리고 아팠다.

빨리 달릴 때는 견딜 수 있던 외마디가 지금은 한 발짝도 걸을 수가 없었다.


가던 걸음을 붙잡았다.

갓길에 싱그러운 풀들 사이로 가느다란 잎을 꺾었다.

상처 위에 덮어 씌우고 슬그머니 걸었다.

걷는 사이 풀들이 살과 섞이지 않고 바닥으로 굴러갔다.

 외면당한 상처는 다시 고함을 질려 됐다.



샌들을 벗었다.

맨발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영상을 여러 번 보았고 귀동냥으로 접했지만 한 번도 맨발로 걸은 적은 없었다.

샌들을 손에 쥐고 맨바닥으로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발을 내맡겼다.

 발바닥과 오돌 토돌 작은 돌멩이들과 찰떡궁합이 되어  조심히 한 발씩 앞으로 옮겼다.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길과 발바닥이 한 몸이 되는 느낌이었다.

이런 밀착으로 물체와 교감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쿡 꾹 밝히는 작은 통증은 견딜만했다.

 조금씩 걷다 보니 이젠 익숙해졌다.

집까지 2킬로를 맨발로 걸었고 신나는 음악 때문에 기분이 후끈 달아올랐다.


밖으로 나올 때는 미운 오리 새끼처럼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달리고, 맨발로 걷고 나니

 어느새 황홀한 백조가 되어 있었다.


똑같은 생각을 했으면 이런 달콤 짭짭한 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또 하나의 교훈을 배우다.

달리기는 환경의 구애받지 말고 아무 때나 몸에 익혀놓자

안될 거란 생각은 금물!

맨발로 걷으니 죽어 있는 촉각이 살아나 처진 기분을 달래줬다.


가끔은 의례적으로 편한 걸 거부해 보자.


남이 가던 길이 아니라 남이 거부하는 길을 가보자.


 그 속에 진리가 있다.


기분이 좋다 보니 어느새 깨알 같은 글씨체가 함께 춤추고 있다.

 글도 감정을 느끼나 보다.

역시 글도 숨을 쉰다.

주인장 닮아서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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