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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주의자 앨리스 Nov 04. 2023

두 번째 에세이 책 내기

글을 쓰는 자세와 태도

 이날 강의를 들으며 적어둔 메모가 없다. 메모를 하지 않은 이유는 여느 글쓰기 책이나 보이는 내용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자신만의 글쓰기 루틴, 하루에 일정한 시간, 장소를 만들고 글쓰기 전 의례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모두가 잠든 늦은 밤이나 새벽, 글쓰기로 정한 집안 거실, 주방 식탁, 혹은 한적한 카페, 시작하기 전 커피를 내리거나 책상 정리를 하는 일 등.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이었다. '써야 되는데, 써야 되는데'하며 초조해하고 '이렇게 시작하고 그다음에 이 이야기를 넣고'하고 생각만 하다가 마감에 이르러 부랴부랴 마구잡이로 써서 겨우 맞춤법만 확인하고 글을 올렸다.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흐릿한 구상을 뚜렷한 글자로 옮기는 과정을 최대한 미루려고 했다. 애를 쓰고 용을 쓰려는 것도 생각만으로 그쳤다. 스스로 게으름뱅이라거나 못났다고 비난하기 싫어서 찾아낸 변명은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고 진화한 인류의 생리적 기제였다. 글을 쓰는 일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고 인류는 에너지를 비축하려는 방향으로 진화했기에 이를 피하려는 것이다. 

 글쓰기는 힘들다. 떠오르지 않는 단어, 문장에 머리카락을 뜯어도 머릿속 닿지 않는 전두엽이 근질거리기만 한다. 정확한 방법은 없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마냥 컴퓨터 앞으로 자신을 끌고 가 그냥 써야 한다. 

 글쓰기는 등산과 같다. 산 입구에 다다라서 오르막이 시작될 때야 떠오르는 힘든 기억에 '아차, 내가 왜 또 이렇고 있지?' 싶지만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 시작한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이라는 표현은 정답이 아니다. 땀으로 머리카락이 붙어 레게머리가 되며 허연 두피가 드러나지만 물에 젖은 시궁창 쥐의 몰골을 신경 쓸 틈이 없다. 폐가 터질 것 같고 심장이 곧 배 밖으로 나올 기세다. 후들거리는 허벅지는 이미 내 것이 아니다. 무거운 짐이 된 다리를 계단 위로 올려놓는 게 등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런 데도 등산을 왜 하는지. 

 산 정상에 도달했을 때 짜릿함. 고도가 올라 갈수록 선명하게 보이는 산 아래 정경, 평소 볼 수 없는 지평선 너머 세상, 한라산 중턱에서 보이는 풍경은 동그란 렌즈에 비친 청명한 파란색 바다와 수평선이 하늘 중턱에 다다라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색감으로만 구분된다. 날씨가 화창한 날의 풍경이다. 구름이 잔뜩 끼어 기대한 풍경은 없어도 목적지에 도착해서 꺼내 먹는 커피, 달콤한 초코빵, 삶은 달걀의 조화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올라간 이번 등반을 자축하는 맛이다. 

 글쓰기도 차곡차곡 쌓이는 원고가 모이는 맛이 있다. 화창한 날의 풍경 같은 원고도 있고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원고도 있지만. 한 권 분량의 원고가 쌓이면 책으로 출간하고 사람들에게 읽히게 될 것이다.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나는 유명 인사가 되는 일은 없겠지만 무조건 써라. 우선은 써라.


 기억에 남은 강사의 말은 한 가지였다. 책을 냈다고 이제 됐다, 사람들이 다 알아보고 베스트셀러가 되고 유명해지고 하는 이런 기대 혹은 확신을 경계하라는 것. 사실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순간 모두 다 이런 상상을 한다고 했다. 나는 베스트셀러가 되고 유명해지는 상상까지는 하지 않... 상상했다. 강사는 과도한 기대가 글을 계속 쓰는 걸 멈추게 한다고 염려했다. 

 집필 계획으로 일주일에 한 편이나 두 편의 글을 쓰겠다고 했고 목차도 짰지만 다섯째 주부터 글이 밀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밀렸다가는 강사가 전화가 올 것 같아지는 지점에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숙제를 안 해서 교무실로 불려 간 아이 같은 민망한 상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무엇을 쓸지 정했지만 글을 구성하는 법도 글을 시작하는 방법도 아는 게 없었다. 야생에 내던져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생각은 단어로 튀어나와 머릿속에서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이를 붙잡아 문장으로 만들고 문단을 채워 글을 완성하는 일을 겨우 해냈다. 

 글쓰기 강좌는 쓰지 못하는 글을 쓸 수 있게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제출한 과제 글에 대한 피드백은 전체적인 분위기와 소재에 대한 것이었고 그저 무조건 쓰라고만 했다. 쓰지 못하겠는데 어떻게 무조건 쓰냐고?

 작법서를 찾아 읽었다. 소설 작법서에서 에세이, 논픽션 작법서, 보고서 작성법까지. 책은 글쓰기 방법을 실제로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지 않았고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책에 쓰인 내용을 이해하고 알게 되는 시점은 글을 쓰고 난 다음이라는 것. 그러니 나도 무조건 쓰라고 말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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