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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Oct 25. 2023

좀비가 사람이 되어 나오는 집

24시간 심야식당 부산 연산동 연산즉석국수

연산동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그때부터 있던 곳이니 기본 20년은 된 곳이다. 그전부터 영업을 했으니 준 노포라 해도 무방한 곳, 부산 연산동 연산즉석국수다. 입사했던 당시 회식이 잦았고 1차, 2차, 3차에 이어 늘 마지막 차수로 들렀던 곳이 바로 여기 연산즉석국수다. 좀비 상태로 테이블에 앉아 해장술을 마시며 맛있는 국수에 사람이 되어 일어나곤 했던 이곳을 아주 오랜만에 들렀다.

코로나로 24시간 영업이 어려웠을 시절을 지나 다시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는 이곳은 여전히 야외에서 플라스틱 테이블에 앉아 먹을 수 있는 야장 컨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시절 할머니가 그대로 계셨고 물가 상승으로 그때에 비해선 올랐지만 그래도 혜자스런 가격과 양에 감동 한 스푼을 잊지 않는 곳이었다.

늘 먹던 국수가 아닌 오늘은 좀 특별한 걸 주문하자 싶어 선지국수도 아닌 선지칼국수를 주문했다. 선지정식을 주문한 분의 음식을 보니 여전히 그때 그 맛과 감성 그대로다. 놀라운 건 6가지 알찬 찬들. 화려한 찬들은 아니지만 밥상에서 나름 빛을 발하는 집에서 먹는 그 맛 그대로다.

비주얼이 이상하거나 향신료가 있거나 식감이 이상한 음식은 특히 싫어하는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선지와 멍게. 오늘은 그 선지를 먹을 수 있는 날이라 메뉴를 보곤 바로 선지칼국수를 주문했다. 칼국수 마니아인데 선지까지 곁들일 수 있다니 이보다 좋을 수 있으랴! 두근두근 기대를 하고 있는 찰나에 선지칼국수가 자리에 왔다. 비주얼은 그야말로 선짓국이다.


얼른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젓가락으로 전체를 휘저었더니 영롱한 하얀 칼국수면이 숨겨져 있었다. 면에 선짓국이 잘 베어나도록 10번을 정성껏 저은 후 칼국수면을 맛봤다. 와우! 일순 감탄. 진하게 베어난 칼국수면과 선지를 함께 입안으로 들이니 일석이조가 딱 이럴 때 쓰는 표현이다. 국물도 잊지 않고 세 숟가락을 떠 입안으로 대령했다. 삼박자가 어우러진 입안의 잔치다.

소주를 시킬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해장하러 갔다가 결국 소주를 주문했고 많이 들이켰지만 좀비가 되지 않고 사람으로 일어나 든든한 배를 두드리며 집으로 향했다. 이른 출근임에도 힘들지 않고 하루를 버텼다. 화려하고 근사한 안주보다 따뜻한 국밥, 국수, 칼국수 한 그릇에 더 진한 삶의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었다. 여전히 맛있고 든든한 우리들의 좀비 소생처, 연산즉석국수. 다음엔 술이 아닌 진짜 국수를 먹으러 가야겠다. 그중에서도 꼭 선지칼국수를 말이다.


[100퍼센트 리얼 내돈내산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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