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서울 대치동에 비하면 손톱의 때도 되지 않을 부산 사직동. 여느 동네 아이만큼 여기저기 학원을 다니며 늦은 밤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쯤이면 고등학교 수학을 마스터하는 게 썩 이상하지 않은 이 동네. 하지만 선행(先行)을 늦게 시작한 우리 아이는 진도 나가기 바쁜 수학 학원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채 이해가 되지도 않았는데 챕터 컬렉터가 되어 학원 선생님의 질주를 따라가기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진지하게 수학학원을 그만 다니고 싶다는 말을 툭 뱉었다. 그리고 그날 바로 수학 학원을 관두었다. 이 동네에선 좀 의아해할 수 있는 상황. 아무리 아이가 힘들어해도 설득해서 다닐 수 있게 하거나 학원을 바꿔주는 게 어쩌면 순리일 텐데 대관절 수학 공부를 쉬어라고 한다니 엄마, 아빠 좀 이상한 사람 아님?
그리고는 정확히 수학 학원을 4개월을 쉬었다. 영 공부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엄마와 함께 문제를 풀며 이해가 되지 않았던 챕터들을 하나씩 다시 살폈다. 다시 조금 수학에 흥미를 느낀 아이는 조금씩 수학에 대한 두려움과 불편함을 떨쳐내기 시작했다. 이제 중학생인 아이는 수학 학원을 다니며 스스로 길을 찾고 있다. 필요한 문제집을 사서 풀고 선행(先行)과 내신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선행(先行)에 대해선 각자의 판단이니 맞다, 틀렸다를 논할 필요는 없다. 다만 과도한 선행(先行)이 가져오는 폐해에 대해서는 분명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아이가 무리 없이 잘 수행하고 있는지. 혹여나 멀미가 날 만큼 진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이해하는 척 고개만 끄덕이고 있는 건 아닌지. 이 모든 과정을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풀어낼 필요가 있다.
아이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친구들이 놀랄 때가 있다. '엄마, 아빠랑 대화를 하는 사람도 있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아직 우리 아이가 사춘기가 오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가족 셋이 모이면 소소한 일상에 대해 수다에 가까운 대화를 이어간다. 그 속에서 아이가 어떤 성장통을 겪는지, 어떤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
고양이를 키우자는 아이의 희망회로를 아주 오래도록 잠가놨다가 풀어준 지 1년이 되었다. 도마뱀까지는 괜찮지만 고양이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했던 우리 부부는 오히려 고양이와 정이 들어 아이의 사춘기를 함께 극복해 내고 있다. 이제는 주말에 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봉사 프로그램을 함께 알아볼 예정이다. 아이들이 선행(先行) 말고 선행(善行)을 먼저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의 꿈이 물론 언제까지 가게 될지는 모른다. 찾아서 공부하는 지금이 아주 잠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루고 싶은 꿈이 있고 해내고 싶은 목표가 있다는 것만으로 지금 이 순간은 아주 행복하다. 어떤 고등학교를 간다는 것, 어떤 대학교를 간다는 것, 그런 것들이 아이들의 이름이 되지 않기를. 내일의 행복을 보장하는 기준이 되지 않기를 손 모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