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겪은 등골 오싹한 그날 밤의 이야기
무려 20년 전의 이야기다. 그것도 호주에서 겪었던 잊지 못할 일이다. 호주는 귀신 이야기를 무척 좋아하는 나라다. 섬나라에 귀신이 산다는 건 맞는 소리인 거 같다. TV를 틀어도 귀신 이야기를 자주 볼 수 있고, 더 자주 들을 수 있었다. 20년 전엔 외국에서 공부하는 한국 친구들은 찾아보기 힘든 시가였다. 일본 친구들이야 간간히 볼 수 있었지만 말이다.
시드니, 캔버라, 멜버른 그리고 섬 중의 섬 태즈메이니아, 그래, 태즈메이니아로 놀러 가자! 멜버른에서 태즈메이니아, 여긴 섬과 섬의 이동이라 배편으로도 비행기로도 쉽게 갈 수 있다. 배로 가려했지만 2주일 방학을 이용해 가려면 긴 시간을 교통수단에 쓰는 건 아까운 시간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곧바로 늦은 시간이었지만 비행기로 고고!
아무런 연고지가 없는 태즈메이니아, 시간과 돈이 넉넉지 않은 유학생, 저녁 5시 비행기로 출발한 나는 6~7시가 넘어서야 태즈메이니아에 도착하게 되었고 문득 아무 숙소도 예약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고 있었다. 저기서 솔깃! 눈에 들어오는 택시 드라이버 아저씨. ‘저기... 오늘 숙소를 정하지 않아 그러는데 저렴하고 가까운 숙소 없을까요?’. ‘OK! I will show you.(내가 보여줄게)’ 다짜고짜 짐을 설어 아저씨가 소개하는 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택시 안에서 안절부절 불안하다. 이상한 곳 가는 건 아니겠지?
8시 반 넘어 도착했나? 호주는 8시만 넘으면 한국의 밤 12시를 넘은 것과 같다. 동네슈퍼도 해가 떨어지는 6시에 문을 닫으니 9시만 되면 온통 PUP(술집)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생각보다 커다란 백패커 숙소, 다짜고짜 정산하라는 주인아주머니, 내일도 숙박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2박을 신청한다. 그리고 방은 도미토리 1인실로 할 건지, 룸(여러 명이 묶을 수 있는 넓은 방)으로 할 건지 물어본다. 여하튼 잘 몰라 룸으로 결정! 돈을 아낄수록 여유가 생길 테니 말이다.
탁구대도 보이고 저기 샤워 룸은 공동인가 보다. 물론 남녀 나눠있긴 하지만 말이다. 룸을 보는 순간 소름이 쫙! 20명 남짓 충분히 들어갈 사이즈다. Oh my god! 물론 나의 짐을 풀 곳은 문 옆 구석으로 한다. 저편 구석에는 두서너 개의 짐이 더 있다. 창문을 보는데 기분이 으스스하다. 곧 귀신이라도 들이닥칠 느낌이다. 씻고 자야 하는데 그럴 겨를도 없다. 지금 있는 곳의 지명이 어딘지도 확인할 힘도 없다. 여긴 이상하다 못해 수상하다. 수많은 여행을 했지만 이렇게 이상한 이층 침대는 처음이었다.
눈을 감아보려 하지만 정신만은 또렷하다. 뚜벅뚜벅뚜벅. 한 남자가 들어온다. 그것도 커다란 덩치의 수염 달린 남자. 뚜벅뚜벅뚜벅. 그리고 연이어 또 다른 남자들이 들어온다. 굵은 목소리의 “only just one person?(너 혼자니?)’나한테 하는 소린가? 여자만 숙박하는 방이 아니었던 거야? 별의별 생각들이 다 들고 소름이 끼치는 순간이다. 이미 비용도 지불했고 방을 바꿔야 하는 생각조차 겁에 질려하지 못했다. 유일한 카드와 현금을 지갑에서 꺼내어 팬티 속에 넣고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자는 척을 했다. 도무지 잠이 들지 않았고, 뚜벅 소리를 정확히 6시까지 또렷하게 들으며 새벽을 맞았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보내고 오늘도 이 숙소에서 묵을 수 있을까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하염없이 저녁까지 주위를 계속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어쩔 없이 다시 그 백패커로 돌아갔다.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1인실 숙박이 가능한지 물었고 다행히 가능해 1인실로 직행했다. 진즉에 그럴 걸 후회가 밀려왔다. 호기심이 발동해 호스트 할머니 방으로 갔다. 그와 TV를 함께 보며 대화가 오가게 되었다. 어제 숙소에 남자가 계속 들어와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그랬더니 할머니의 이야기가 가관이다.
여긴 원래 귀신이 많다고. 큰 병원이 있던 곳이라고. 그래서 그 방이 병원에서도 유독 큰 방이었다고. 이 숙소가 다른 숙소에 비해 싼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고.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기 시작했다. 어린 손녀를 두었던 그녀는 사고로 그 아이가 죽게 되었고, 그녀의 엄마인 할머니의 딸은 늦은 밤만 되면 이 집 앞다리에 가 딸을 그리워한단다. 실화인지, 지어낸 이야긴지 어질어질할 무렵 방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다음 여행지로의 이동을 위해 호스트 할머니에게 택시를 부탁했고 거짓말처럼 그저께 이곳으로 데려다준 택시 기사가 다시 왔다. 다음 여행지를 말해주며 ‘Bye bye! see you later’를 외치는 그. 무슨 또 다음에 만나냐며 오만상을 찌푸렸는데 7일 후 정확히 일주일 후 태즈메이니아 첫 숙소와 정반대인 호바트에서 그 택시 드라이버를 다시 만났다.
여행 중에 만난 노랑머리 친구들, 그리고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택시를 탔고 그들과 대화 중에 1주일 전 그 공포의 백패커에서 도난 사건이 많았다고 한다. 그 동네에서 가장 꺼려하는 숙소이고 예약을 하지 못한 여행자들을 안내하는 기본 코스의 백패커라고. 그날 밤새도록 뚜벅거리던 남자 이야기를 했더니 택시 드라이버가 한마디 던진다. 원래 거긴 병원이었고 중환자실과 영안실이 붙어있던 곳 이래. 귀신이거나 도둑이었겠네. 그날 밤의 뚜벅뚜벅뚜벅 소리가 다시 귀를 맴돌았다.
- 본 이야기는 호주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김보숙 님의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