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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카피 May 08. 2022

베트남, 호러 속으로

1. 흙집, 2. 물귀신, 3. 야행

1. 흙집


이 이야기는 20년도 더 된, 내가 아직 엄마 뱃속에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집은 무척이나 가난했고, 집이 없어 할아버지, 할머니가 간신히 비를 가릴 수 있는 작은 흙집을 마련해 주셨다고 해요. 이 초라한 작은 흙집에서 일어났던 이야기예요. 아버지는 숲에 들어가 나무를 베어 장에 내다 팔며 생계를 이어가셨죠. 오래도록 해온 일이라 사나운 짐승이나 귀신 따위는 아버지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해요. 그야말로 정글에 익숙한 나무 전문가였던 게죠.


어느 날 아버지는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깊은 밤 자다가 갑갑한 느낌에 잠에서 깼다고 해요. 분명 누군가가 아버지의 몸에 올라타고 그의 팔을 꽉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소름 끼치게 느끼고 있으셨던 거죠.  아버지는 놀라서 눈을 뜨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요.


지금 귀신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는 그 귀신의 손을 떨치기 위해 자신의 팔을 마구 흔들었다고 해요. 한참을 몸을 뒤척이며 팔을 흔들다 보니 몸이 가벼워지면서 아버지는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닥 해요. 무서운 꿈이나 가위에 눌렸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주위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요즘 피곤해서 이런 일이 생긴다며 안도했다고 해요. 이마에 식은땀을 닦던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죠. 자신의 팔에 누군가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에게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해요.  어느 날 엄마도 잠을 자고 있는데 부엌에서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무언가 쿵쿵거리며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대요. 엄마는 부엌에 쥐가 들어왔다고 생각해서 부엌으로 달려가 보았대요. 하지만 부엌에 들어가자 갑자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 이상이 없어 보여서 엄마는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잠자리에 드셨죠. 그런데 잠시 후 엄마는 다시 이상한 소리에 잠을 깨고 마셨죠. 이번에는 부엌 쪽이 아니라 방구석 쪽에서 아기가 웃고 있는 소리가 들렸대요. 


눈을 뜨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주위를 살펴봤는데 그때 침대 근처에 아이를 안고 있는 한 여성이 공중에 뜬 채로 서 있었고 창백한 얼굴이 어머니를 쳐다보고 있었고, 심지어 그녀는 웃고 있더래요. 엄마는 너무 놀라 정신없이 아버지를 깨우려고 소리를 질렀대요. 놀라 잠이 깬 아버지는 왜 그러냐 물었고 그 순간 아기를 안고 엄마를 내려다보던 그녀는 사라졌다고 해요. 아버지는 요즘 가족 모두가 피곤하고 또 엄마가 임신해서 신경이 많이 예민해져서 이상한 일이 생기는 것 같다며 다음에 나무를 팔아다 고기를 좀 사서 먹자며 엄마를 안심시켰다고 해요. 하지만 왠지 찝찝한 마음을 버리지 못한 아버지와 엄마는 결국 흙집을 버리고 근처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대요. 


시간이 지나고 엄마가 날 낳으셨고 더 이상 이상한 일은 생기지 않았죠. 내가 태어나자 할머니는 나를 보시기 위해 우리 집으로 오셨고 아버지는 전에 살던 흙집에서 일어났던 이상한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해주셨대요. 그러자 할머니는 표정이 굳어지며 전에 그 흙집에 할머니가 젊었을 때 이웃 아주머니가 아이를 낳다 아이와 함께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셨대요. 그 순간 아버지와 엄마는 머리가 쭈뼛한 채로 한 동안 얼어 있었다고 해요.

@pixabay


2. 물귀신


1995년 즈음에 일어난 이야기예요. 저는 베트남 중부지역에 바람과 폭풍우가 자주 몰아치는 지역에 살고 있었죠. 그날은 9월경으로 비가 많이 내렸어요. 저희 외할아버지는 시내에 물고기를 잡으러 가셨다고 해요. 할아버지는 익숙한 곳에 가셔서 신발을 벗고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늘 하시던 대로 물고기를 잡고 있었죠. 하지만 비가 오는 날은 보통 물고기가 잘 잡히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비가 많이 내렸는데도 잡히는 물고기는 없었다고 해요. 할아버지도 아무래도 이상해 집으로 가려고 하셨다고 해요. 그때 근처 다리 위에서 한 사람이 양손에 그물을 가득 들고 천천히 할아버지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고 해요. 


할아버지는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어딜 가냐고 오늘따라 비가 많이 오는대도 물고기가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요. 그러자 남자는 자기도 비가 와서 물고기나 잡아 보려고 나왔다고 했대요. 그 순간 그 남자가 하는 말이 ‘죄송한데 바짓단이 너무 길어서 물속에 들어가기 어려우니 바짓단을 좀 올려 주실 수 있을까요?’


할아버지는 친절하게도 그 남자의 바짓단을 접어서 올려 주었대요. 그런데 바짓단을 올리다 보니 그의 다리에 뭔지 알 수 없는 끈적끈적한 것이 가득 묻어 있었고 바짓단이 무릎까지 올라갔을 때 살점이 하나도 없는 앙상한 뼈가 보였다고 해요. 그때서야 할아버지는 오래전 그의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고 해요. 비가 많이 오는 날 물에 빠져 죽은 귀신이 나타나 사람을 홀리는 일이 있다는 이야기였죠. 이때 놀란 사람들이 귀신을 피해 도망가면 반드시 물에 빠져 물귀신이 된다고 했고 그때는 절대 도망쳐서는 안 된다고 하셨대요.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의 할아버지에게 들은 대로 주머니에서 소금을 조금 꺼내 그의 다리를 마구 문질렀대요. 그러자 그 남자는 무서운 눈초리로 할아버지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홀연히 사라졌다고 해요. 할아버지도 그때 바로 집에 달려오셨고 다시는 그 강둑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지 않으셨대요. 왜냐면 우리 고향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다시 그 강가에 가게 되면 그 물귀신이 따라와 물속으로 끌고 간다고 해요. 그래서 귀신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시는 귀신을 만났던 장소에 또다시 가지 않는 것이라고 해요.

@pixabay




3. 야행


술 취한 중년 남자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그는 잔뜩 취해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죠. 밤이 제법 깊어서인지 이미 길은 깜깜했고 사람 한 명 구경하기 힘든 시간이었어요. 그 중년 남자는 취기와 함께 약간 오싹한 기분이 들어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죠.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소녀가 작은 삽을 들고 땅을 파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죠. 그는 그 작은 소녀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다가가 물었어요. 이 늦은 시간에 뭘 하고 있냐고. 그녀는 그를 올려다보았고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입가에 이상한 미소를 지었다고 해요. 그녀의 눈은 깊이 파여 있어 눈동자는 희미하게 잘 보이지도 않았고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어머니를 묻을 땅을 파고 있다는 소녀, 아버지가 어머니를 버리고 집을 나갔고, 그래서 어머니는 아기를 유산했고 막 죽었다고 했대요. 그는 집이 너무 가난해서 제대로 묻을 돈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하면서 신경 쓰지 않고 가던 길을 갔더랬죠. 몸을 돌려 걷던 그는 갑자기 땅에 불쑥 솟아 나온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졌대요. 술에 너무 취한 탓에 중심도 잡지 못하고 바위에 머리를 부딪히며 넘어졌는데 마침 그 소녀가 파놓은 구덩이로 빠져버렸대요. 어둠이 흐르는 고요한 밤중에 그 소녀의 소름 끼치는 목소리와 징그러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죠. 


드디어 끝냈어요...

@pixabay


- 본 이야기는 베트남 현지에 있는 정영섭 님이 현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받아 쓴 글을 바탕으로 각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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