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파릇했던 대학교 1학년 시절의 이야기니 벌써 27년 전의 일이다. 부산의 한 대학에 입학하게 된 그는 기숙사 배정을 받지 못해 학교 인근의 허름한 그래서 월세가 무척이나 저렴한 한 원룸에 기거하게 되었다. 먼 거리의 집에서 통학하기에 너무 힘든 상황이라 중간고사를 이틀 앞두고 겨우 방을 구하게 된 거였다. 첫 시험이니만큼 전의를 불태우며 늦은 밤까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던 그는 밤 12시 무렵 등 뒤의 싸늘한 인기척을 느꼈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누군가 그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니 혼자 있는 이 방에 대체 누가? 하며 눈을 찌푸리며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원룸 현관문 바로 앞에 물에 젖은 채 고개를 반쯤 숙인 한 청년이 그를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얼어버린 그에게 그 청년이 큰 소리로 한 마디 했다. 손 뒤에 숨겨놓았던 큰 식칼을 꺼내 들어대며
'여기서 나가! 안 나가면 죽여버릴 거야!'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지갑도 챙기지 못한 채 슬리퍼만 겨우 신고 미친듯이 뛰쳐나왔다. 너무 늦은 밤이라 본가로 가지도 못하고 학과 사무실에서 겨우 새우잠을 잤다. 그리고 다음 날 방으로 다시 돌아간 그는 주인 할머니에게 어제의 소동에 대해 하소연했다. '학생,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월세는 못 돌려줘!' 어쩔 수 없이 그는 그날 밤 전날의 두려움을 잊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또 다시 밤12시가 다가올 무렵 그는 잔뜩 긴장했다. 또다시 등 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제발 제발 오늘은 제발... 그리고 그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어제의 그 물에 잔뜩 젖은 청년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고 다시 소리쳤다. '내가 여기 있지 말랬지! 죽여 버린다고 했지!' 그러고는 진짜 식칼을 들고 이번에는 무서운 속도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정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그는 또다시 헐래 벌떡 현관문으로 쫓아 가 문을 열고 도망갔다.
다시 학과 사무실에 신세를 졌고 다음날 벼루고 벼론 그는 주인 할머니를 찾아가 소리쳤다. 그의 절규를 예상이나 했다는 듯 할머니의 대답은 너무나 어이없이 담담했다. 1년 전 그 방에 세 들어 살던 학생이 목을 매 자살을 했고 그날은 무참히 천둥 번개가 치며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단다. 제대로 된 가족이 없는 그였기에 경찰에 신고해 겨우 시신 수습을 했단다. 그게 1년 전의 일이었고 그 사이 벌써 두 사람이나 그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던 거였다. 내가 돈에 눈이 멀어 학생을 받아 정말 미안하다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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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로 그는 월세를 받아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27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그 청년의 눈빛, 행동 하나하나가 그대로 잔상으로 남겨져 있다는 그. 다시는 그의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사연을 모르는 그 청년의 한이 어떻게든 풀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끔찍한 그때 그 순간, 그 방은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