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봄, 농사일을 하나씩 시작하고 있어요.
물론 글과 시를 짓으면서 살아가지만 먹고 사는 일과는 다른 의미가 지닌 것이고요.
아래 사진처럼 올 봄에 심은 감자가 싹이 터서 빼꼼히 제 얼굴을 드러내고 있어요.
흙이불 속에서 영양을 듬뿍 받은 감자가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지요.
같은 날 심은 감자라도 싹 띄우는 시간은 제각기 달라요.
다만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각자 싹을 틔우는 모습이 반갑고 귀한 일이고요.
어차피 거둬들이는 날에는 모두 같으니까요.
흙과 함께 살아가는데 해도 해도 안되고 영락없이 좌절감을 안겨주는 일은 바로 삽질이예요.
삽 자루를 난생 처음 잡았던 어색하던 그날의 분위기와 느낌을 끌어안고, 시간따라 삽질을 하는 횟수는 자연스레 늘어나고 있어요.
한해 두해 어설픈 농사일도 알게모르게 친근한 일로 다가오고 있고요.
그에 달리 삽질은 처음 모습 그대로 여전히 버겁기만 해요.
남편은 커다란 삽으로 흙을 수북하게 담아 퍼 올리곤 해요.
딱 한번의 삽질로 거뜬하게요.
그 곁에서 반쯤 작은 삽을 들고 발로 꾹꾹 삽의 머리를 눌러줘가면서 흙을 퍼담아요.
팔힘만으로는 힘에 부치는 삽질인터라 나름 온몸의 무게감을 실어주는 거예요.
근력이 턱도 없이 부족하니 약은 꽤를 짜내보는 삽질이고요.
남편의 한 삽에, 두어번의 삽질로 겨우 겨우 따라가는 형편으로 함께 밭일을 해요.
고랑과 고랑사이가 폭이 넓어 삽질이 조금이라도 쉬운 곳을 고르기도 하고요.
"좁은 쪽은 내가 맡을 테니, 천천히 따라와요."
남편은 비닐끝자락에 흙을 연신 퍼부으면서 앞질러 나아가지요.
남편은 장화신은 발로 비닐을 팽팽하게 잡아당겨주면서 제일 어렵고 힘든 고랑만 찾아다녀요.
(비닐을 씌우지 않으면 밭작물의 열매가 실하게 맺히지 않을 정도로 잡풀이 무성하게 올라와요)
처음엔 어째서 번거롭게 검은 비닐을 굳이 씌우며 밭농사를 지어야하는 지도 전혀 몰랐어요.
더하여 비닐을 씌우지 않고 농사를 지으면 훨씬 간단한 일이라고 여길 정도였지요.
경험이 쌓이면 몰라볼 정도로 실력이 나아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흔히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들은 일련의 숙련 과정을 거쳐 나날이 성장할 수 있잖아요.
단, 삽질은 예외인가 봐요.
삽질을 잘 하는 것은 꿈조차 꿀 수 없어요.
그러고보니 꿈도 웬만해야 꿀 수 있는 것이네요.
그저 남편의 반의 반을 채워 나가면서 어줍잖은 힘을 보태어 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어요.
(힘쓰는 일은 못하는 구나 하면서요)
삽질처럼 엉성하게 못하는 일이 있어도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요.
'누구나 못할 수는 있어'
속엣말을 스스로에게 들려주어요.
(남편은 농담으로라도 핀잔을 주지 않지만 눈이 밝아 제모양이 환히 보이거든요)
요만한 힘에 어울리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궁리를 하기도 해요.
힘 자랑은 커녕 고만고만한 근력을 햇살 가득한 봄볕에 널어놓는 거예요.
삽질은 어렵구나 하면서요.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5 퍼센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