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 사이에 저녁이 물들고

나만의 단어사전

by 심풀

★ 낮

☆ 낮의 사전적 정의

해가 뜰때부터 질때까지의 동안

☆ 오퍼센트의 정의

1. 해가 있거나 없거나 핸드폰 알람이 부르르 울리는 때

2.해야할 일들 틈새로 고명처럼 자유로운 시간을 붙들어 놓고 싶어지는 시기

☆ 오퍼센트의 이야기

아무일이 없어서 무료하거나 심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보이는 곳마다 일거리가 아닌 게 따로 있으랴.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를 짓고 부엌일을 하면서 삼시 세끼 아버지의 먹거리를 챙기면서 살아가다보니

딱히 무슨 일이 있거나 없거나 분주한 것이다.

집안일 뿐만 아니라 밭일도 낮에 할 일이 주로 있는터라 어쩌다 조그만 틈이라도 생길라치면 반갑기 그지없다.


훌쩍 책속으로 스르르 걸어들어가거나 한 줄 글쓰기에 풍덩 빠져드는 것으로 나만의 시간을 맞이한다.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말이다.

예고도 없이 누군가 불쑥 집에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오는 것조차 꺼려질 정도로 달달한 한때.

아름다운 만큼 감질나는 짧디 짧은 요즘같은 가을날에는 오히려 집안에만 웅크리고 있기가 아까운 마음까지 스며드는 것이다.

동네 한바퀴, 내 얼굴같이 빤히 아는 그 길을 색다른 기분에 젖어 산책을 나서야 할 것 같다.

가을의 이름표를 달아놓으니 그럴싸해진 모양새로.

★ 밤

☆ 밤의 사전적 정의

1.해가 진 뒤부터 동이 트기 전까지의 동안

2.고통스럽고 막막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오퍼센트의 정의

1.어둠이 온 세상을 덮어주니 쉬는 일만 남은 고즈넉한 때

2.일상의 피로감이 몰려와 받아놓은 밤을 고스란히 잠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운 순간

3.무엇을 해도 좋지만 정작 무엇을 하기엔 택없이 짧고 짧아서 안타까운 시기

☆ 오퍼센트의 이야기

언젠가, 한가한 밤 시간을 유유자적 여유롭게 누릴 속셈으로 잠을 줄여 본 적이 있다.

다만 한두시간이라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식으로 말이다.

처음 며칠간은 보람차게 밤을 누린 것 같아서 나름 뿌듯하기도 하였것만 이게 웬일인가, 짧아진 밤 시간만큼 온 몸이 묵직하여 자고나도 하루내내 몸이 찌뿌둥한 게 아닌가.

잠을 줄이는 일이 얼마나 얄팍한 짓이었는지 그제서야 온 몸으로 체감한 것이다.

오히려 깊고 달콤한 잠이 여느 귀한 보약보다 중요한 것을 왜 몰랐을까.

아마도 욕심이 눈을 가렸겠지.

정작 밤잠을 줄일게 아니라 허투루 빠져나가는 짜투리 시간을 제대로 누려볼 작정을 하였으면 좋았을 덴데.

진정코 어리석은 짓이었음을 지나고 보니 빤히 알겠더군요.

밤이 되어야만 저도 모르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든가 혹은 올빼미 체질이어서 밤에 초롱초롱한 상태라는 말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들어본 적은 있다.

같아도 다른 사람의 체질이라니 뭐라 딴청을 부릴 일도 아니다.

다만 우리의 건강은 잠과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

그런 이유로 좋은 글, 아니 아름다운 생각도 맑고 활기찬 건강한 몸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해뜨면 몸을 움직여 가벼이 활동하고, 해지면 느긋하게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쉬면서요.

'빨리 피는 꽃은 빨리 진다'

같은 코스모스 무리중에도 유달리 서둘러 피는 꽃이 있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요.

피고 지는 시간조차 같은 꽃일망정 제각기 다르다.

각자의 밤을 누리는 일에도 정해진 답이 있을리 없고요.


KakaoTalk_20250924_075620499.jpg?type=w773 장독대 앞, 까마중 열매☆

★ 저녁

☆ 저녁의 사전적 정의

1.해질 때부터 밤이 오기까지의 사이

2.저녁에 먹는 끼니

☆ 오퍼센트의 정의

1.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밥을 짓느라 바쁜 한 때

2.어스름이 살금살금 도둑처럼 집을 에워싸는 순간, 찾아온 줄 알아채는 동안

3.저녁설거지를 하고나면 하루분치 부엌일에서 해방되니 쳇바퀴 일상의 마무리.

☆ 오퍼센트의 이야기

이른 저녁 5시, 그때부터 7시 사이 부엌일이 눈코뜰새 없다.

밥먹는 것 외에는 남아있는 즐거움이 없으신 아버지의 밥상을 제일 먼저 차려놓아야 한다.

부드러운 죽을 한 솥 끓여 식혀서 냉장고에 보관해 둔다.

일부러 질릴 정도로 많은 양을 준비하려 하지 않는다.

(큰손이 아니기도 하고요)

기왕이면 죽 메뉴를 바꿔가면서 같은 죽 차림새라도 변화를 주고 싶어서요.

음식 타박을 할 줄 모르는 아버지이지만, 비슷비슷한 차림의 음식을 마냥 달가워하시지는 않을테고요.

먹고 사는 게 적잖은 큰일이라 부엌을 도맡은 주부들은 사계절 음식 메뉴에 신경을 쓰인다.

맛이 있거나 없거나 무언가를 차려내야하는 의무감은 주부들 누구나 짊어진 등짐.

그로인해 제법 두 어깨가 뻐근하게 짓눌리는 날도 있고요.

어린날, 젊은 엄마의 손끝에 매달려 편히 밥 수저를 들었던 시절은 얼마나 가벼웠는가.

시골밥상차림이야 변함이 없다 하여도 내 몫이 아닌 날의 가붓함을 지나고 보니 알겠더이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부엌 등의 버튼을 딸깍 끄고 돌아설 때마다 하루의 숙제를 모두 해치운 보람에 발걸음이 나도모르게 살짝 들뜬다.

내일 아침까지는 자유시간이로구나!

(끝을 아는통에 더 감질나게 반가운 가보다)

먹는 일은 즐거움인 동시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엄연한 노동이다.

하루분치의 해방감이 소리없이 몰려드는 저녁 어스름과 함께 가슴가득히 차오르는 것이다.

벗어놓은 핑크빛 고무장갑 손가락 밑으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에 장단을 맞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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