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환 작가 특별강연 후기
지난여름, 고명환 작가의 강연을 보러 대전 DCC 컨벤션 센터를 다녀왔습니다. 성심당 매출이 파리바게뜨 전국 매출액을 넘어섰다고 하던데 실감이 나지 않았더니만 그게 아닙니다.
건물이 저만치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2030 젊은이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고 북토크 강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가 깜짝 놀랐습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시작하려면 1시간 정도 남은 이른 시간입니다. 처음엔 멋모르고 그 줄 끝에 서서 제 차례를 기다리려고 했습니다. 한데 앞사람이 언뜻 한마디를 하는 거 아닌가요.
“망고 시루 케이크 먹자고 한여름에 이게 뭐니?”
기나긴 사람들의 행렬은 북토크와 아무 상관없이 망고 시루 케이크를 기다리는 거였네요. 세상 사람들이 빵을 좋아해서 빵지 순례를 다닌다는 말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빵과 거리가 먼 사람이 여기서 맥없이 허송세월을 보낼 뻔했습니다.)
어이가 없어도 내 실수이니 할 수 없다고 여기고, 긴 행렬에서 빠져나와서 건물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1층에는 대학입시 관련 설명회, 3층에 드디어 기다리던 북 토크 강연장이 있습니다. 3층에 올라오니 강연장을 준비하는 행사 관계자 몇 명만 눈에 띕니다. 몇 분 전 빵집 앞 그림과 어떠면 이렇게 그림이 달라지는지 눈에 확연히 보이는 차이가 마음을 울립니다.
강연을 기다리는 사람은 어쩌다 한두 사람뿐, 줄지어 서야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젊은이들이 빵에 열광하고 책에 시큰둥한 현실을 오늘 제대로 몸으로 절감합니다. 막상 강연 시작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조금씩 자리를 채우고 앉아서 큰 강연장이 대강 빈자리 없이 꽉 채워져 다행입니다.
개그맨 출신답게 재치 넘치는 화술에 홀딱 빠져 웃다가도 엄청난 독서 내공을 느끼면서 가슴이 동시에 서늘해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로서 안정적인 직업 타령을 하는 제 모습을 꼬집을 땐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자고 남모르는 다짐도 합니다.
“아, 여기 건물에 도착하니 벌써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나를 기다리는구나 싶어서 어찌나 설렜는지 몰라요. 한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바로 아래 성심당 빵집 분점이 있는 거예요. 내가 아니라 빵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었던 거예요."
그 말에 한 시간 전 똑같은 실수를 한지라, 괜히 찔리면서도 반가워 함박웃음을 지었답니다.
(어리숙한 내 모습이 떠올랐으니까요.)
“이 건물에 성심당 분점이 있는 줄도 그제야 알았고요. 아직 제힘이 부족해서 빵에 밀리고 있네요.”
환히 웃으며 말씀하시는 모습에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되더군요. 젊은이들이 책에서 멀어지고 유 튜브 동영상 등의 영상 문화에 빠져있는 단면을 적나라하게 본 것 같습니다. 책은 사색을 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친구입니다. 그 활자의 세계로 향하는 길이 달콤한 혀에 밀려서 저 멀리 떠내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결같은 밝은 웃음으로 응대하는 모습을 보고 진짜 대단한 프로의 모습을 확인합니다. 웃으며 강연하고 호통을 치면서 잠든 뇌를 깨우며 인순이의 ‘거위의 꿈’도 무반주로 부르는 거칠 것 없는 호탕한 작가님의 모습이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아이고, 음을 너무 높게 잡았네, 다시 처음부터.”
노래도 일품이지만 그렇게 꾸밈없이 말을 재치 있게 할 수 있다니 더욱 놀라운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강연이나 노래 한 소절이나 모두 진심이 잔뜩 묻어납니다. 대략 200여 명의 사람이 한자리에 앉아서 마음을 열고 작가님의 호통을 기쁘게 듣습니다.
“야! 그냥 하면 된다고, 중요한 것은 바로 정신, 마음, 마인드를 바꾸는 자세가 필요한 거야.”
강연이라기보다는 호통 쇼에 가까운 작가님의 외침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귓가에 쟁쟁합니다. 왜 고함을 치면서까지 열변을 토하고 있는지 알겠습니다. 마음을 깨우기 위해서입니다. (낡은 생각을 버리려면 번쩍이는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야 하니까요.)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에게 공언을 할게요.
누구라도 좋으니 책을 쓰는 분이 나오면 따질 것 없이 추천사를 써줄 테니 무조건 쓰세요.
어느 출판사라도 문을 두드려보세요.”
그 말씀이 나에게만 달콤하게 속삭여주는 귓속말처럼 들립니다. 분명히 마이크로 200여 명 앉은 모두에게 우렁찬 공언을 하셨는데 말입니다. 그 자리에서 저절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쓰겠다. 무엇이든 도전하겠다’
강연이 끝나고 나서 사인을 받으려 긴 줄 앞에 서고도 어쩐지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습니다. 점점 줄이 짧아지고 제 차례가 오자마자 입을 열고 대뜸 엉뚱한 소리를 꺼냅니다.
“작가님, 책 쓰기 도전해 봐야겠지요?”
뜬금없는 말에도 바로 대답을 해주는 재치가 빛납니다.
“아, 암요. 해봐야지요.”
어쩐지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듯 가슴이 벅차오르고 온몸이 달달 떨리기까지 합니다.
강연을 들은 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깨우침을 받아야 할 순간이 드문 탓이겠지요. 누군가 나에게 대놓고 화를 내가면서 핏대를 세우고 나를 위한 쓴소리를 들어본 적이 언제였는지도 기억조차 가물가물합니다.
우리의 삶은 알 수 없기에 고운 희망을 품고 새로운 내일을 꿈꿉니다. 책을 읽고 날마다 글 쓰고 시를 쓰면서 스스로에게 긍정의 말을 해주곤 합니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약하지만 어제 보다 오늘 조금 더 성장하고 있다'
글쓰기를 하고 리뷰 글을 올린 모든 작가들 중 최초로 만나본 고명환 작가님에게 받은 사인을 낙인처럼 지울 수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린 그 약속의 주인공.’
아마 그 자리에 앉았던 200명 중 몇 명은 그런 핑크빛 꿈을 오늘도 꾸고 있을 듯합니다. 5 퍼센트와 같이. 꿈꾸는 일은 아이들에게만 해당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접은 지 오래입니다.
글 쓰면서 전에는 생각지 못한 설레는 순간을 여러 번 맞이합니다. 깊고 까만 밤을 지나 꿈꾸는 시간을 지나왔건만 눈을 뜨고도 낯선 꿈 안으로 새로이 들어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