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지난주 엄마를 모시고 유성 전통시장에 다녀왔습니다.
그날은 이번 주처럼 얼음꽁꽁 매서운 바람이 불기 전이라 그리 버겁지 않은 날씨였습니다.
"설날에 쓸 조기를 사다가 소금물에 쟁여 놀라구 그랴.
농협 하나로 마트에두 있지만서두 시장에서 사는 게 젤로 편하니께."
다음달에 다가올 설날, 부지런도 이만저만이 아닌 세상 제일 마음 급한 엄마십니다그려.
궁시렁 궁시렁거려봐야 부질없을 것 같아서 흔쾌히 다녀오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한 겨울이라 그런지 장꾼이 눈이 띄게 줄었네요."
좁다란 골목에 사람들이 한줄로 서로 어깨를 부딪쳐가면서 지나치기도 하였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아마 설이나 추석을 앞둔 경우, 바닷가 파도에 밀리듯이 북적북적 사람들에게 치여 이리저리 휩쓸리기도 하였는데 말입니다.
위 사진처럼 적당히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편 반가우면서도 생소하게 다가오기도 하였습니다.
아무래도 한겨울 추위가 전통시장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으리라.
마트에 가면 널직하고 깨끗한 주차장에 따스한 실내에서 시장을 볼 수 있잖아요.
어느 누가 찬바람 쌩쌩부는 전통시장 골목을 쉬이 찾아올 것인가.
모르긴 몰라도 어르신 위주의 전통시장, 엄마 세대가 어쩌면 마지막 손님으로 기록될 듯 하였습니다.
골목과 골목사이 지붕도 없이 제멋대로 난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져 있었습니다.
시장 계획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이 그야말로 자유롭게 오일마다 시장이 서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걷다보니 점포의 경우에는 '점포 정리'라는 표지판이 곳곳에 걸려있었습니다.
"예, 올해 4월까지만 장사해요.
얼른 얼른 사가세요."
땡처리, 점포정리 상술의 한 방편으로 주로 쓰이는 줄 이미 알고 있었는데 이번참에는 그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점포 정리하므는 여긴 뭐가 들어온댜?"
궁금증을 못이긴 엄마가 점포 사장님 말꼬리를 붙잡았습니다.
"네, 어르신 여기는요.
시에서 아파트를 짓는대요."
5월이후로는 유성 전통시장자리에 아파트 건설이라니.
귀가 쏘옥 들어오는 예상치 못한 소식을 듣고, 드문드문 유성시장 나들이를 즐기셨던 엄마의 기색을 살펴보았습니다.
'얼마간 실망하셨을 테지'
카드는 멀고 현금을 가깝게 한평생을 사셨으니 오죽할까 싶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지난 세월 당연하게 누려왔던 시장풍경도 이젠 역사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질 판국이 되었구나.
젊은이들이야 인터넷 쇼핑이 편안하고 친숙하지만 어르신들에겐 낯설고 거북하기만 할 터입니다.
손바닥 만한 핸드폰위의 글자도 깨알인데다가, 제대로 보이지 않고 보인다해도 어떤 방식으로든 결제를 해야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엄마는 다시 되물어보셨습니다.
"언제까정 시장을 연다구 했드라?"
"4월까지는 한다니까 이번 봄철에는 유성 시장 한번 더 가보시든가요."
어느 땐 뭐 그리 대단한 것을 산다고 그리 먼 데까지 찾아가는 지 의아하게만 여겼건만 막상 시장이 사라진다고하니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불쑥 드는 겁니다.
여름엔 뙤약볕, 겨울엔 얼음판 계절을 있는 그대로 온몸으로 견뎌야하는 시장골목의 묘미가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편리와 편안을 고이 접어둘 수 있는 전통시장만이 주는 삶의 고단함과 부대낌이 거기에 있었거든요.
진심에 진심으로.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심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