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야 글을 쓸 수 있는 줄 오해하였습니다.
글은 작가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로만 여겼던 거예요.
글쓰기도 그러할 진대 시를 짓는 생각은 털끝만치도 해보지 않았더랬습니다.
혹여 우스갯소리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요.
길가에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누가 공들여 바라보나요.
거기 없어도 거기 있어도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지요.
돌멩이 자기자신 조차도 말입니다.
문턱없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블로그.
열린 창에 망설이다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글 한줄을 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나긴 가뭄끝에 단비처럼 용기와 칭찬을 담은 마음의 소리가 댓글창에 살그머니 들려왔습니다.
때로는 둥둥 울려퍼지는 북소리로 때로는 톡톡 오는 듯 마는 듯 적셔주는 이슬비처럼요.
깨알보다 작디 작은 글이 바람처럼 떠돌다 귀밝은 어느 이의 가슴에 닿았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러다가 브런치 작가들의 세상에도 글인연이 닿았고요.
'마중물'
꼬맹이 시절, 쇠펌프로 물을 끌어올리려면 한 바가지의 물을 꼭 부어야 했습니다.
그러고는 손잡이를 양손으로 꼬옥 붙잡고 있는 힘껏 온몸의 무게를 실어서 두 팔로 펌프질을 해야했습니다.
바짝 말라서 물 한방울 쏟아질 것 같지 않던 쇠펌프에서 마중물을 따라서 콸콸 물이 쏟아질 때면 어찌나 반갑고 신기했는 지 모릅니다.
어쩌면 땅속에 숨어 흐르는 물줄기가 줄다리기하듯이 장난을 치는 것 같았습니다.
딱히 물이 필요하지 않아도 시소를 타는 듯이 펌프질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재밌어서 해도 해도 질리는 줄 몰랐던 겁니다.
두 팔에 온 몸에 힘을 쥐어짜야 하고 한 바가지의 물이 꼭 필요한 일인데도 귀찮은 줄 몰랐더랬습니다.
펌프질은 어린 눈에 그저 장난이었습니다.
그것도 어른들에게 허락받은 물장난이니 그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두 팔이 뻐근해도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가붓한 몸이 부웅떠서 그만 쇠펌프 손잡이에 달랑달랑 매달려도 까르르 웃음만 터졌습니다.
얼마지나지 않아 아무때고 콸콸 물이 쏟아지는 수도가 설치되고 수동펌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훨씬 더 편리해졌습니다.
하지만 마중물을 붓고 비실대면서도 기어이 물줄기를 끌어올리는 손맛은 세월속에서도 녹이 슬지 않았습니다.
우리네 삶도 응당 버려지는 물이 있어야 맑고 청량한 물 한방울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시행착오의 이름으로 자잘한 경험을 쌓아가면서요.
글쓰기도 마찬가지.
온 몸을 던져서 겪어보지 않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어떤 글을 쓸 수 있을 지는 정작 쓰는 이조차도 모를 수도 있으니까요.
글쓰는 길을 따라 터벅터벅 걷다보니 어느새 글이 되고 시가 되는 진실하지만 어이없는 순간도 있고요.
하여 마중물같은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아야겠습니다.
가만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떠봅니다.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지금이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두번째 삶이 아닌가 합니다.
처음이자 두번째 삶은 이렇듯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군요.
진심에 진심으로.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심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