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야기
된장, 고추장, 간장을 손수 담가 먹는 집이 몇이나 있을까.
마트에 가면 아니 인터넷 클릭 몇 번에 된장, 고추장, 간장까지 얼렁뚱땅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모르긴 몰라도 얼마없겠지요.
아파트 살이에 장독을 주욱 늘어놓을 곳도 마땅히 없고 말입니다.
밤새 하얀 눈을 맞은 장독들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그간 은근슬쩍 쌓아둔 먼지 뗏국물을 씻어내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장 항아리가 제각기 몸뚱아리에 맞게 홈뻑 눈에 파묻혀 버렸습니다.
짙은 고동 빛깔의 항아리에 희디힌 눈발이 한데 어울려 눈이 부셨습니다.
두 눈을 조프리면서도 주머니를 뒤적거려 핸드폰 사진을 부랴부랴 찍어두었습니다.
사진은 찰나의 시간을 담는 일이라 돌아서 버리면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져버리거든요.
짧지만 따스한 겨울 햇살에 사르르 녹아서 빗물로 흘러내리면 자취를 찾을 수도 없으니까요.
'엄마의 장독대'
장을 담그는 엄마가 계시니 그 덕택에 장독대가 올망졸망 어여쁘게 살아있습니다.
새언니, 언니 할 것없이 이구동성으로 장담그는 일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엄마니까 장을 잠그는 거야.
요즘에 누가 간장, 된장에 고추장을 담그는 사람이 있니?"
돌이켜보니 여든 여덟 엄마솜씨에 여태껏 기대어 살아왔습니다.
큰오빠의 경우에는 이미 며느리를 보았는데도 엄마에겐 그저 큰 아들이라 된장을 퍼가라는 둥, 주고 또 주어도 더 못줘서 엄마는 늘 애를 태웁니다.
부모님이 장수를 하시니 큰오빠도 이미 환갑을 지났고요.
"올해 동치미가 왜 이리 짜요?"
유난스레 짠 동치미, 한 수저를 제대로 떠먹을 수가 없습니다.
엄마가 납작하게 잘라놓은 동치미 무 한 조각을 호기롭게 한 입에 넣었다 이내 짠맛을 못이기고 퉤퉤 뱉어냈습니다.
결국 짠물이 흠뻑 든 동치미 위에 맹물을 넉넉하게 부어놓고선 엄마 혼자 아작 아작 씹어드시고 계십니다.
"아따! 칼칼한 맛은 있는 디 내 입에도 짜구만."
엄마가 짜다고 인정할 정도이니 오죽하랴.
그림에 떡처럼 짠 맛에 놀라 동치미에 감히 숟가락을 얹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위에 사진중에 가장 큰 항아리는 왕소금를 담은 것입니다.
엄마는 천일염 굵은 왕소금 몇 자루씩 봄가을에 주기적으로 사들이고 계십니다.
"김장 담글 때나 쓸 긴디 소금은 묵힐 수록 좋은 거여.
간수가 빠지니께 말이여."
천일염은 정제되지 않은 소금이라 알갱이가 녹고 나면 얼마간 불순물이 있다고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으십니다.
"아따 이런 거 먹구 살어두 괜찮았어야."
절이는 용도에나 쓰면 딱인 왕소금, 변함없이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소금항아리 옆에는 된장, 간장, 고추장 항아리가 쪼르르 줄을 맞춰 서 있습니다.
위에 두 언니들 말대로 장을 담그지 않으면 장독대도 필요가 없을 법하네요.
장독대 풍경도 아파트 공동주택에서는 쉬이 볼 수 있는 그림도 아니고요.
엄마의 부엌는 장독대에서부터 시작입니다.
냉장고에 음식을 주로 넣어놓는 요즘 엄마들은 모르는 오래된 세상이 장독대와 엄마 사이에 있는 것이지요.
서서히 익어가고 묵묵히 맛이 드는 느린 세상, 장독은 엄마와 함께 시간을 건너가고 있습니다.
생긴 모양 그대로 동글동글한 자태로 거친 비바람에 하얀 눈까지 피하는 법을 모르고요.
진심에 진심으로.
세상의 모든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
-영화 <식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