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편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아들네와 함께 사는 할머니 한 분을 마을 회관앞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묻지도 않은 말씀을 냉큼 털어놓으셨습니다.
"잉, 나 말이여.
우리 아들몰래 옷 사러 갈라구햐."
어디를 가시느냐고 다그쳐 물어본 것처럼 술술 속엣말을 꺼내놓으셨습니다.
"아~, 예."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도 왜 아들 몰래 옷 구경을 가셔야 했는지 도통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왜냐고 다짜고짜 따져 물을 수는 더욱 없었고요.
"그럼, 잘 다녀오셔요."
그 할머니에게 짐짓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드리면서도 속으론 의문스럽기만 하였습니다.
저녁나절, 동네 마실을 다녀온 엄마를 붙잡고 은근슬쩍 이야기를 꺼내보았습니다.
"그 할머니를 우연히 만났는데, 아들 몰래 옷 사러가신다고 하시던데 무엇때문에 그러셔요?"
엄마와 몇 살 차이나지 않는 터라 두분이 평소에 흉허물없이 지내는 친한 사이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자세한 속사정을 환히 꿰고 있을 것 같아 믿음직하였거든요.
"옷을 사러가면 가는 것이지 아들 몰래 갈 이유가 뭐 있다고요?"
엄마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누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추며 입을 떼셨습니다.
" 그게 사정이 있으니께 그런겨.
옷 사러 간다구 하믄 아들이 길길이 뛰면서 옷은 무슨 옷이냐구, 못사게 한댜!"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요.
예쁜 옷을 사드리는 것은 고사하고 새옷을 사려는 할머니를 마땅찮게 여기고 있다는 소리였습니다.
"그 칭구가 맨날 주간보호센터에 다니는 디, 워메 다들 딸들이 꾸며주니께 모냥이 다르더랴.
딸 하나 읇는 자그가 젤로 답답하댜."
주간보호센터에 다니면서 동네 친구들과는 다른 세상을 살고 계시니 그럴 수도 있겠다싶었습니다.
여든여덟의 엄마도 3월 봄이 오면 새옷을 사고 싶어하실 것을 빤히 알고 있습니다.
날마다 가는 동네회관에 나설때에도 위아래로 어울리냐면서 차림새를 확인받고 싶어하시기도 하거든요.
겉모습을 꾸미고 싶은 마음은 나이를 막론하고 결코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스무살 여자든 여든살 여자든 다르나 같은 마음인 것이지요.
세상의 딸들은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태생적으로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엄마도 나와 같으니 굳이 나누려들지 않는 겁니다.
특히 예쁜 것을 좋아하는 본성은 나이가 들지 않거든요.
다만 할머니 스타일 중에서 본인 눈에 고운 것을 갖고 싶어하시고요.
여자는 여자.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여자는 계절이 바뀌면 새옷을 사고 싶어합니다.
그런 여자의 마음을 아는 남자가 몇 이나 있을 런지요.
할머니도 새 옷을 좋아하는 것을 남자들의 입장에서 자칫 모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아들은 할머니가 된 엄마에게도 철마다 새옷이 필요한 줄 까맣게 모르는 겁니다.
아들의 입장에선 굳이 옷이 많은데 왜 새옷을 타령하는 지 쓸데없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테니까요.
하긴 제 남편만 봐도 철마다 새옷이 필요한 이유를 모르더군요.
옷 쇼핑하는 자체를 세상 귀찮아하기도 하고요.
늙은 엄마도 여자라는 생각을 하면 좋을텐데.
그 아들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겠지만 엄마 마음을 헤아려주면 얼마나 좋을까싶었습니다.
진심에 진심으로.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심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