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다면 이미 행복해

토편지

by 심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난 후 문병을 온 지인들이 먼저 산으로 갔어요.

손가락으로 꼽아보니 어느새 열 손가락을 넘어가려고 해요.


이번 주엔 더하여 한 분이 아슬 아슬 뇌출혈 시술을 받으셨고요.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중의 한 분이신지라 엄마와 함께 친구분 걱정을 함께 나누었어요.

"아, 글쎄 밤에 말문이 막혀버려서 119를 타고 응급실로 간다는 디 불쌍혀서 어쩔꺼나?"

엄마가 얼어붙은 낯빛으로 깊은 한숨을 이리저리 내쉬는 통에 모른 척 할 수 없었어요.

"다음 번에 시장도 함께 구경가기로 했는디, 마지막이 될랑가?"

엄마는 혼잣말을 하듯 자꾸만 넋두리를 끝없이 내어놓으시네요.

그 사이 서너 시간 사이로 집전화도 평소와 달리 자꾸만 울려대고 있어요.

"잉, 뇌출혈 시술을 한다고 보호자 싸인을 하러 간다구?"

실시간 뉴스를 전하는 전화벨이 발작적으로 울리고 엄마는 그날 하루 내내 동네친구들과 걱정을 내려놓을 수 없었어요.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발병하신 터라 수술은 하지 않았거든요.

엊그제까지 정정하시던 엄마의 친구 할머니가 시술을 받게 된 거예요.

손바닥만한 동네에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엄마의 친구는 보물과 다름없어요.

날마다 신나서 엄마가 잰 걸음으로 동네 회관에 가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런 소중한 엄마의 친구에게 뇌출혈이라니.


불과 보름전에도 엄마와 막걸리를 한 잔하시면서 거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누리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올라요.

"안녕하셔유? 나 누군줄 아셔유? 저그서 친구랑 놀다갈게유~."

거실에 붙박이 장롱처럼 앉아계신 아픈 아버지에게 넉살좋은 인삿말을 먼저 건네시곤 하였어요.

그때도 아버지는 반가운 말씀 한마디를 냉큼 건내주지 못하셨고요.

누가봐도 엄마의 또래친구중에 가장 건강하고 오래 사실분이라 여겼


술 좋아하는 엄마와 주량이 엇비슷하여 두 분은 술친구이기도 해요.

막걸리, 소주, 약주, 맥주까지 다양하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보기좋은 사이였어요.

누가봐도 엄마의 또래친구중에 가장 건강하고 오래 오래 곁을 지킬분이라 여겼는데 하루 아침에 날벼락이 따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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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이 흐른 후 엄마의 표정이 살며시 발그스레 하네요.

"참 다행이여. 친구, 고생 많었어, 우리가 월매나 걱정을 했는디."

시술이 잘 끝나고 의식이 돌아와서 그 친구분과 통화를 한 모양이에요.

이제 막혔던 말문까지 시술후 트였다니 한 시름놓은 것이지요.


명절을 얼마 남겨두고, 동네에 먹구름이 잔뜩 낄 뻔 한 일이었지요.

엄마의 친구분은 아마도 설 명절엔 병원에서 치료를 받겠지만 동네로 돌아올 수만 있다는 것으로 엄마의 가슴이 환하게 밝아왔겠지요.


일상의 행복은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자잘한 것에 있구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제와 다름없이 몸을 움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은 흘러내릴 수 있고요.

아름다운 세상을 두 눈으로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두 발로 걸을 수만 있어도 행복할 수 있어요.

건강하다면 이미 행복하니까요.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5 퍼센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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