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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앞발을 잃은 채 돌아오고

금일기

by 심풀

밥그릇 순서의 끝자락, 고양이와 누렁이가 있습니다.

고양이의 꼬리가 유난히 짧아 이름도 "꼬리'로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겨울이 지나면서 부쩍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것을 익히 알고는 있었습니다.

집 앞 과수원을 가로지르거나 마을회관 근처에서 배회하는 것을 집 식구들이 종종 목격하기도 하였습니다.

몸통에 온갖 덤불 부스러기를 얹고 돌아오는 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하였습니다.

햇살 좋은 봄날이니 나돌아 다닐 곳은 얼마든지 많고 이젠 아기 고양이 어린 태를 벗어던졌기에 믿는 구석도 얼마간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낮에 어디까지 쏘다니더라도 저녁이나 아침엔 어김없이 마당으로 돌아와 귀찮을 정도로 밥타령을 하는 녀석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고양이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첫날 밤은 혹시나 하면서 아침이면 돌아오겠지 믿으며 기다리는 둥 기다리지 않으며 지냈습니다.

아침이면 현관앞에서 늘 그렇듯 '야옹' 거리면서 어슬렁거릴 줄 믿었으므로.

고양이의 가출 이틀이 지나니 남편까지 나서서 고양이 걱정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래도 고양이 집 나간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추운 겨울 지내고 날씨가 따뜻해지니 집에 돌아올 생각도 하지 않고 어디에서 놀고 지내면서 말이에요."

남편의 근거없는 추측을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그래도 성한 몸이라면 반드시 돌아올 것을 은근히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부턴 로드킬을 당한 것이라는 의심이 강하게 가슴속으로 밀려들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수일째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것은 의리없는 짐승은 아니라는 작은 믿음은 확고하였으니까.

남편이 감자밭을 관리기로 다듬어 주고 아침 식사를 마치고 텃밭에 쪼그려 앉아 감자를 심었습니다.

햇살은 따스해서 밭일하기에도 적당한 맑은 아침이었습니다.

누렁이는 아침밥을 실컷 먹고 멀찍이 앉아서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들며 아는 체를 하였습니다.

"누렁아, 너 혹시 고양이 어디 간 줄 아니? 벌써 3박 4일 가출이야."

누렁이에게 대답을 들을 요량없이 답답한 마음을 문득 털어놓기도 하였습니다.


SE-c2644447-1bd6-4060-a410-5fa4855945d0.jpg?type=w773 다치기 전의 고양이 모습☆



그 다음날 아침,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이층 계단을 타고 흘러들어왔습니다.

"막내야! 얼른 내려와 봐라. 마당에 고양이가 돌아왔어!"

마침 그 시간 출근하기 전이라 남편도 부리나케 함께 마당으로 뛰어내려갔습니다.

남편이 운전하는 SUV자동차 바퀴 아래 고양이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걱정하던 모습 그대로.

신음소리처럼 나즈막이 '앙앙' 한마디를 듣자마자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을 담박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평소와 달리 경계심을 잔뜩 세운 모양이었습니다.

왠지 뭐라고 한마디라도 해야 고양이가 경계심을 풀고 안심이 될 듯 하여 태연한 척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불러 보았습니다.

"이리와~, 여기 밥이랑 물 놓았어."

익숙한 목소리를 기억해냈는지 고양이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기척이 들려 무턱대고 반가웠습니다.

드디어 자동차밑 바퀴쪽에서 숨어 있던 고양이가 앞발에 무언가 하얀 뭉치를 땅바닥에 질질 끌고 나타났습니다.

처음엔 그게 무엇인지 분간조차도 할 수 없었습니다.

고양이는 물그릇에 그대로 얼굴을 박더니 연신 물을 몇번이고 핥아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굶주려서 제 밥부터 찾을 줄 알았것만 밥그릇엔 눈길조차 줄 여력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고라니 망이 앞발에 칭칭 감겨있어 며칠을 어디선가 묶인 상태로 지낸 모양이었습니다.

'스스로 앞발의 뼈를 부수지 않고는 돌아올 수 없었구나!'

언뜻 보인 하얀 뭉터기는 바로 고양이의 부서진 앞발이었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처절한 고통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물을 달게 마시는 고양이의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눈물이 핑 돌면서 가슴이 무너지는 것이었습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고양이를 바로 볼 수 가 없었습니다.

고양이는 끝까지 눈 앞에 놓인 밥그릇은 본체만체하고 세 다리로 무용지물된 앞다리를 어렵사리 끌고선 제 집으로 들어가 벌러덩 누워버렸습니다.

고양이의 목숨이 바람결에 훌쩍 떠날까 싶은 불안한 마음이 자꾸 들었습니다.

몸통이 살짝 울렁거리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여야 했습니다.

고양이의 고단한 숨이 아직 우리곁에 머문 것만으로 안도의 한숨을 깊게 쉬었습니다.

결국 동물병원에서 앞 발을 절단하고 고양이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세 발 고양이로 살아가야 하다니.

날아가는 새까지 잡는 날쌘 사냥꾼 고양이였던 예전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듯 합니다.

그럼에도 제 앞 발을 온 몸으로 부숴뜨리고 집으로 어찌 돌고 돌아 그 멀고 먼 길을 찾아왔을지 생각해보면 아찔하고 또 아찔합니다.

고통으로 쓰러질 듯 하여도 참고 참으며 돌아온 길이 얼마나 험난하였을까.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모진 고통의 수난을 겪어야 했는지 지금도 알 수는 없습니다.

이주일 후, 집으로 돌아올 고양이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양이가 제 천성을 찾아가길 함께 기다릴 것입니다.

세 발 고양이로 새 삶에 적응하면서 건강히 살아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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