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두산, 순교의 이름이 되다

건축 이야기

by hesed by


# 절두산, 순교의 기억을 찾아가다.


지하철 합정역에서 홍대입구역 사이의 거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젊음과 열정을 느껴보고 싶은 이라면 누구나 걷고 싶은 유명한 거리이다.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와 다양한 맛집들이 즐비하고 다채로운 거리공연도 많아 열정과 즐거움을 찾는 수많은 이들로 항상 북적이는 곳이다. 나 역시 젊은 시절 무척이나 이 주변 어딘가를 어슬렁거리며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걸어 다니던 목적은 다소 불순했던 것 같으나 젊은 날의 객기였으니 웃음으로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행여나 무슨 좋은 일이 생길까 기대 반 설렘 반의 들뜸을 가지고 찾아오곤 하던 곳이다.


그 시절로부터 꽤 오랜 세월이 흘러 중년을 훌쩍 지나가고 있는 지금, 난 봄의 절정을 훌쩍 지나치고 있는 오늘의 날씨를 만끽하며, 또다시 합정역 출구에 서 있다. 하지만 오늘 내가 이곳을 방문한 목적은 젊은 날의 흥분과 열정의 방향과는 정반대에 놓인 듯하다. 오늘은 홍대 방면이 아닌, 양화대교 방면으로 걸어가야 한다. 낭만과 젊음이 넘실대는 거리가 아닌 추모와 죽음의 기억이 넘실대는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그곳은 바로 '절두산 순교성지'이다.


골목골목을 지나 꽤나 숨어있는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다 보니, 문득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화대교 옆 한강변 어딘가에 이런 장소가 자리하고 있는 것도 잘 모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세의 즐거움이 가득한 홍대거리 반대편 가까운 어딘가에, 누군가의 신념과 고통이 처절한 순교의 기억들과 교차하고 있는 숭고한 장소가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었다.


'절두산 순교성지'의 전체적인 첫인상은 예상외로 '평안함'이었다. 조용하게 추모하고 예배하는 공간의 특성 때문이겠으나, '절두산'의 살벌한 의미 -머리가 잘린 산- 가 무색하게, 마음에 평안과 안식을 가져다주는 장소였다. 참고 삼아 '절두산'이라는 명칭의 유래를 살펴보면, 원래는 마치 머리를 든 누에 같다고 해서 '잠두봉'이라 불렸으나, 이후 천주교도 약 8,000여 명이 이곳에 끌려와 목이 잘리는 처형을 당했다 하여, 머리를 자른다는 의미에서 '절두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끔찍하면서도 숙연해지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절두산과 순교성지 전경]


# 무명인, 순교의 이름이 되다.


사실 나는 걸어서 이곳을 방문했기에 당초대로라면 차량이 드나드는 출입구의 오브제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원래는 차량이 들어오고 나가는 출입구인데, 내가 길을 잘못 잡는 바람에 우연치 않게 이쪽 방향으로 걸어오게 되었고, 덕분에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아담하지만 의미 있는 출입구의 상징을 만나게 되었다. 만약 정상적인 루트로 걸어오게 된다면 일부러 내려와 봐야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나를 맞아주는 것은 '칼 형구' -죄인에게 씌우던 형틀- 형태의 출입구였다. 이 출입구는 '절두산 순교성지 기념 성당'의 종탑과 동일한 오브제를 바탕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추후 설명하겠지만-, 시작부터 나를 숙연함과 알 수 없는 평안함으로 몰고 갔다.


['칼'을 형상화한 출입구]


출입구를 지나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 바로 앞에 나타난 '절두산 순교자 기념탑'은 참수 형틀의 모형 아래 수많은 무명인 순교자들의 형상이 커다란 돌에 조각되어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고, 그나마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일부 순교자들은 차가운 돌 표면에 기록되어 나에게 굳건한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나는 차마 순교자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참을 기념탑 주위를 맴돌며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를 쓴 후에야 그곳을 지나칠 수 있었다.


[절두산 순교자 기념탑]
[무명인 순교자들의 조각상(왼쪽) / 순교자 명단(오른쪽)]



# 순교의 상징, 전통적 고유미를 만나다.


'절두산 순교성지'를 방문하게 되면 언덕 위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서 있는 건축물을 하나 만나게 된다. 바로 '절두산 순교성지 기념 성당' -병인박해 100주년 기념성당- 인데 그 모양새 범상치 않다. 마치 '갓' -조선시대 성인 남자가 머리에 쓰던 관모- 을 쓴 듯한 지붕은 엄중하지만 권위적이지 않게 안정감을 더해주며 수평적 공간을 아우르고 있고, 아래를 지탱하며 층마다 쌍을 이루는 기둥의 열주들은 규칙적이며 가지런하지만 의연하게 지붕을 받쳐 내고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칼'의 형상을 오브제화 한 종탑인데, 본디 '칼'이란 사형을 처할 죄인의 목에 씌우던 형틀을 가리키는 말로 비극적인 죽음과 고통의 상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지붕 위 우뚝 솟아 있는 이 '칼'의 오브제는 부드러운 면처리와 곡선으로 인하여, 자칫 너무도 무겁고 침울하게 가라 않을 수 있는 추모의 공간에 자애로운 용서의 분위기마저 풍기게 만들어 준다.


[병인박해 100주년 기념 성당 전경]


'절두산 순교성지 기념 성당'을 설계한 '이희태' (1925~1981) 건축가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광복 이후 근대화 시기에 활동한 우리나라 2세대 건축가로 분류할 수 있다. 김중업, 김수근 등 당시 스타 건축가들과 동시대에 활약했으나 다소 아웃사이더적인 기질로 그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한국 전통건축의 현대화'라는 평생의 노력으로 '남산 국립극장', '절두산 순교성지', '혜화동 성당'등 기념비적 작품들을 다수 남기며 한국 종교 건축의 대가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많은 한국의 현대건축가들은 전통의 현대화, 즉 현대건축의 한국적 구현이라는 중요한 화두에 직면해 있었으며, '절두산 순교성지 기념 성당' 또한 그러한 고민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칼'을 형상화한 종탑(왼쪽) / 순교자들의 쇠사슬을 의미하는 지붕 처마 장식물(오른쪽)]


[성당 진입 계단(왼쪽) / 쌍을 이루는 기둥 열주(오른쪽)]



# 이방인의 헌신, 이곳에 기억되다.


'절두산 순교성지' 가까운 곳에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조성되어 있다. 반드시 같이 둘러보시길 권해드리는 바이며, 이 묘원은 원래 양화진 나루터를 방어하던 '양화진영'이 있었던 곳으로, 1890년에 외국인 묘지로 조성되었다. 이곳에는 조선 말 고종 때부터 한국을 위해 공헌한 언론계, 교육계, 종교계 외국인 인사들 500여 명이 묻혀 있다. 어니스트 베델,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헨리 아펜젤러와 그의 가족들, 호머 헐버트 박사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 통해 지대한 공헌을 해온 외국인들의 묘비가 이국적이면서도 평화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멀리 타국에서 온 이들의 헌신은 보는 관점이나 역사적 사실에 따라 다소 다르게 평가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근대화를 위한 의료와 교육 분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감당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 듯하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 짧은 추모의 순례를 마치며


100여 년 전 시작된 '병인박해'는 그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의해 수많은 무명인들의 신앙과 목숨을 앗아갔다. 우리는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순교의 순간들을 잊어가고 있지만, 아마도 그들의 신앙만은 지금도 오롯이 남아서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하다. 세상이 제아무리 척박해지고 이기심과 허영심으로 날뛴다 해도 인류의 역사가 반복되는 한 누군가의 신앙은 남아있을 것이고, 그 신앙이 우리의 마음속에도 깊이 새겨지고 전파되어, 결국은 사랑과 용서의 모습으로 영원히 재현될 것을 기대하며 짧은 추모의 순례를 마친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의 교수형을 집행하기 위해 고안된 형구돌(왼쪽) / 순교성지 내 십자가(오른쪽)]


[절두산 성지에 세워진 시 비 "영혼의 강"]


한강아, 너는 물이 아니라 피로 흐른다.
물빛 푸른 고요가 아니라
순교의 터, 거룩한 혈관을 흐른다.

핏물을 삼키고 가는 어둠이 아니라
물결 가득 영혼의 빛살로 흐른다.

한강아, 너는 피의 역사를 굽이쳐
우리들 가슴에 쏟아붓고 가는
놀란 침묵이 아니라 성혈로 흐른다.

<영혼의 강> 이인평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