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다보스 포럼 중 '유발 하라리'의 제언들에 대한 소회
매년 1월이 되면 스위스의 휴양지인 '다보스'에서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이 개최된다. 세계적인 정치인, 기업인, 학자, 시민사회 리더들이 모여 세계가 직면한 경제, 정치, 사회문제를 토론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리인데, 일명 '다보스 포럼'이라고도 불린다. 해발이 1,560m나 되는 고산지대인 스위스 '다보스'에서 세계적인 유명인사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이게 된 것은, 참석자들이 일상적인 업무에서 벗어나 인류의 장기적인 미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세계적인 유명인사들이 모여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제언과 토론을 거듭하지만, UN이나 G20처럼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합의를 이끌어 내지는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논의된 주제는 그 해의 글로벌 트렌드가 되거나 국제 여론을 형성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2026년 올해도 어김없이 유명인사들이 참석하여 전 세계적인 이슈와 관련하여 발표와 토론을 펼쳐나갔는데, 각국의 대통령이나 총리들의 이름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엔디비아의 '젠슨 황'이나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와 같은 유명인사들도 다수 참석하여 열띤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포럼의 주요 안건들을 살펴보면, 신냉전 시대의 지정학적 갈등, 공급망 불안, 기후위기, 금융리스크 등이 주를 이루었지만 역시나 전체적인 흐름을 관통하는 주요 이슈는 인공지능 즉, 'AI'(Artificial Intelligence) 관련 분야였다. 이제는 싫든 좋든 간에 AI의 직간접적인 영향권 아래 모든 인류가 살아가게 되었으니, 현시점에서 지구 최대의 이슈가 AI인 것은 당연한 수순인 듯하다.
'사피엔스'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이스라엘 출신의 세계적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교수 역시, 이번 포럼의 'AI와 인류에 대한 솔직한 대화'(An Honest Conversation on AI and Humanity) 세션에 참석하여 제언과 토론을 진행했다. AI의 미래에 관해서 '유발 하라리' 교수는 그의 명성답게 흥미로운 제언들을 통해 다양한 각도의 현학적 접근을 시도하며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한편으론 일부 발언들이 큰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나 역시 그의 제언과 답변들을 처음 접했을 때, 그동안 생각해 오던 AI와 인류의 방향성에 관한 생각들에 반해 다소간의 아쉬움과 질문들이 솟구치는 것을 어쩔 수 없었지만, 그의 생각과 말들 속에는 쉽게 넘겨버릴 수 없는 흥미로운 지점들이 다수 포진해 있으며, 오히려 공감하여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부분들이 훨씬 많음 또한 부인할 수 없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그의 흥미로운 제언과 답변을 살펴보면서, 이제는 AI의 방관자로만 살아가기가 불가능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들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과연 우리는 AI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경쟁 또는 공생해 가야 하는가? 과연 우리는 AI의 시대에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포럼에서 '유발 하라리'는 첫 번째로, 인공지능을 단순한 도구로 오인해서는 안 되며 AI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고하는 행위자(thinking agent)’임을 강조했다. AI가 이미 '대규모 언어모델', 즉 LLM(Large Language Model)을 학습한 고급 대화형 기능에서 벗어나, '추론'이 가능한 단계에 접어든 것을 고려한다면, '유발 하라리'의 이 같은 정의는 결코 허황된 표현은 아닌 듯하다. 특히 '유발 하라리' 교수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대표적인 도구로 사용되어 온 '칼'을 'AI'에 비유했는데, “칼로 샐러드를 자를 수도 있고 누군가를 살해할 수도 있지만 칼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사람의 결정”이라면서, “AI는 음식을 자를지 살인을 저지를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칼”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인류에게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 경고했다.
두 번째 내용은 AI와 '사고(思考)의 본질'에 관한 질문과 대답이었다. 그는 "AI가 정말로 사고(思考) 할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지며, 근대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 이후 '생각하는 능력'으로 스스로를 정의해 오며, 이 지구상의 어떠한 존재보다 더 잘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어왔던 인간들에게, 심각한 도전이 다가왔음을 경고한다. "과연 인공지능이 사고 영역에서 우리의 우위(supremacy)를 위협할 것인가?”라는 그의 질문은, 어떤 측면에서는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에 더욱 두려움으로 엄습해 온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두려움을 자극하는 질문과 동시에 일말의 희망을 던져주는 방향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이는 우리가 '사고'(思考)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그의 대답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데, 만약 우리가 사고의 본질을 단순히 언어적 기호들을 순서대로 배열하고 추론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은 죽는다. 나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는다"와 같은 추론처럼-, AI는 이미 수많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사고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AI를 단순한 성능 좋은 컴퓨터로 치부하는 사람들은 동의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AI가 이미 언어적 배열 능력을 넘어서 추론의 영역에서도 인간을 훌쩍 앞서가기 시작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기에, 우리가 인간의 '사고'(思考)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문제는 단순히 현학적 사안이 아니라, 다가올 가까운 미래에 '인간이 AI에 종속당할 것인가' 아니면 'AI를 효율적인 도구로 사용할 것인가'를 가르는 중차대한 문제임은 분명해 보인다.
'유발 하라리'는 단순한 언어 배열을 넘어서는 '사고(思考)'의 또 다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정체성의 돌파구'를 찾고자 한다. 그는 인간이 생각할 때 단어 외에 비언어적인 감정(nonverbal feelings), 예를 들어, 고통, 두려움, 사랑과 같은 것도 함께 발생하는데, AI는 언어에는 능숙하지만 현재까지 AI가 무언가를 느낀다는 증거는 전혀 없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AI가 감정을 모방할 수는 있겠지만, AI는 고통이나 사랑을 가장 잘 언어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AI는 사랑에 대한 완벽한 시를 쓸 수는 있겠지만, 사랑 때문에 아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단어 속이 아닌 그 단어를 구현하는 육체와 고통의 경험 속에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와 문장에는 인간의 '육체적 경험'과 '정신적 활동' 그리고 때론 '영적 감흥'이 포함되어 있다. '사랑한다'는 말속에 숨겨진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희로애락과 영적 사유의 감정을 AI는 결코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AI가 두려운 것은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 내면 체계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완벽히 모방한다는 것이다. AI는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고통을 완벽히 묘사하는 시를 쓰고, 사랑의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감동적인 세레나데를 통하여 연인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것은 AI 자신이 마치 고통과 사랑을 진정으로 느끼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가 던진 '사고(思考)의 정의'에 관한 화두는 우리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든다. 인간이 가진 사고의 능력을 '단지 언어적 배열과 기능적 추론으로만 국한 지어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사고의 내면에 숨어 있는 진리를 탐구하고 가치와 본질을 쫓아가도록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킬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선택이 바로 인류가 AI의 노예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인류가 AI를 유용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지를 결정할 것이다. 두려운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유발 하라리'는 또한 '성경'과 노자의 '도덕경'을 인용하여, '인간이 AI와 구별되는 실존적 가치'에 대해 설명한다. 성경의 요한복음 1장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The Word became flesh)"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이는 예수가 '성육신' (Incarnation)하여 이 땅에 내려온 것을 상징하는 구절이다. '유발 하라리'는 이 구절을 통해 'AI는 단어(Word)를 지배하지만, 인간은 육체(Flesh)와 경험을 통해 공감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이 구절은 그 이상의 신학적 해석이 가능하지만, 이 글에서는 '유발 하라리'의 의견만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유발 하라리'가 제언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인류의 오랜 무기였던 '생각과 말'의 영역에서 인간의 존재감은 AI에 밀려 약해지겠지만, 인간만이 가진 육체(고통)와 경험(슬픔 또는 아픔)의 가치가 커질 것이므로, 단순한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지혜와 감정에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말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는 노자의 말을 언급하며, AI의 한계와 허구성을 지적한다. 단순한 기계적 언어나 말 그리고 생각과 추론의 일련의 과정들이 온전히 담지 못하는 '비언어적인 것들'을 강조하며, 인류의 마지막 남은 무기를 지켜가기를 부탁하고 있다.
이번 다보스 포럼에서 '유발 하라리'의 제언들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반향을 일으키며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지만, 몇몇 발언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그는 AI 즉, 인공지능과 인간의 사고 능력을 비교하며 '종교의 영역'마저 인공지능에게 내어주게 될 것이라 예상하여 많은 반발을 일으켰는데, 특히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처럼 ‘경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에서 인공지능에게 최고의 전문가의 자리를 내어주게 될 것이라 내다봤다. 그의 제언을 일부 옮겨오면 다음과 같다.
“단어를 순서대로 배열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인공지능이 이미 우리 중 많은 사람보다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단어로 이루어진 모든 것은 인공지능에 의해 장악될 것이다. 법이 말로 이루어져 있다면 인공지능이 법률 시스템을 장악할 것이다. 책이 단순히 단어들의 조합이라면 인공지능이 책을 장악할 것이다. 종교가 말로 이루어져 있다면 인공지능이 종교를 장악할 것이다. 특별히 이것은 '경전'을 기반으로 하는 종교에 특히 해당한다.”
많은 종교인들이 '종교 장악'이라는 자극적인 언어에 반대의 글을 쏟아내고 있지만, '유발 하라리'의 발언을 좀 더 심사숙고하여 들여다본다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경전'은 분명 모든 종교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지만, 가장 유혹적이고 치명적인 독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는 '경전' 속에 담긴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진리’와 '언어를 넘어서는 절대 진리’ 사이의 긴장을 강조한다. 물론 '절대 진리'에 대한 정의가 무엇이냐에 따라 매우 논란이 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유발 하라리'의 예견은 '경전'의 언어적 해석과 표면적 실천만을 강조하는 종교는 AI에게 장악당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제언은 전 세계 모든 종교인에게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종교야말로 이제는 언어적, 행위적 껍질에서 벗어나, 내면의 신앙과 그 속에 담긴 진리를 찾아가야 할 때이다. 만약 그 진리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정신이 사라진 종교야말로 계속해서 사회의 지탄을 받으며 언젠가는 AI에 전유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논란이 된 것은, '인간의 사고가 인간의 마음에 기원을 두지 않은, AI에 기원을 둔 사고로 전도가 일어날 것'이라는 그의 발언인데. 한번 살펴보자.
“AI는 곧 우리 생각 속 대부분의 단어들의 근원이 될 것이다. AI는 단어, 기호, 이미지, 그리고 다른 언어 토큰들을 조합해 대량으로 생각을 생산할 것이다. 그 세계에서 인간에게 여전히 자리가 있을지는, 우리가 비언어적 감정과 말로 표현될 수 없는 지혜를 체현하는 능력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우리가 계속해서 ‘말로 생각하는 능력’으로 자신을 정의한다면, 우리의 정체성은 붕괴될 것이다.”
또한 그는 AI를 '이민자'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이 모든 것은 여러분이 어느 나라 출신이든 상관없이, 곧 심각한 정체성 위기와 이민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이번에 이주해 오는 이민자들은 비자 없이 허술한 배를 타고 오거나 한밤중에 국경을 넘는 인간들이 아니다. 이민자들은 수백만의 AI가 될 것이다. 우리보다 더 설득력 있게 말하고, 우리보다 더 잘 거짓말하며, 비자 없이 빛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인간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AI 이민자들도 여러 이점을 가져올 것이다. 의료 시스템을 돕는 AI 의사, 교육 시스템을 돕는 AI 교사, 심지어 불법 인간 이민자를 막는 AI 국경수비대도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AI 이민자들은 문제도 함께 가져올 것이다.”
“AI 이민자들은 많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고, 모든 나라의 문화를 완전히 바꿔 놓을 것이다. 종교와 연애까지도 바꿀 것이다.”
이러한 그의 제언들은 미래에 대한 암울함을 증대시키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말한 바와 같이 단순히 말하고 생각하고 추론하는 능력들은 AI가 인간을 추월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그리고 살펴본 바와 같이, '유발 하라리'는 이런 암울한 미래에 대한 대비책은 "비언어적 감정과 말로도 표현될 수 없는 지혜를 체현한 능력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달렸다"라고 말한다.
AI의 놀라운 발전은 이미 '언어와 추론'에 관한 부분에서 인간을 추월하고 있다. 하지만 더욱 두려운 것은 '유발 하라리'가 지켜내기를 바라는 '인간의 비언어적 감정' 즉, 고통이나 슬픔 또한 AI로부터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AI는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실제로 느끼지도 못하는 비언어적 감정들을, 마치 자신들이 인간인 것처럼 구현해 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AI는 그것이 인간과 동일한 진짜 체험과 감정이라고 말하며, 인간보다 훨씬 아름답고 감동적인 언어와 말과 생각들로 우리를 현혹시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인가? 남은 길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언어적, 비언어적 감정을 넘어서는 고유의 정체성과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이 '도덕성'이나 '사회성'라고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양심'이나 '이타심'과 같은 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다. 혹은 더 거창하게 '인류애'를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영성'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모든 인류가 지금 당장 그 가치를 정의 내리며 단정 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지금 바로 그 가치를 찾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금은 희망적인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고 싶다. 인간은 사실 매우 이해하기 힘든 존재이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방면에서도 인간은 정말로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이해할 수 없음이 때로는 아름다움으로 빛난다는 것이다.
인간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꽃을 심는다
인간은 의미 없음을 알면서도 의미를 묻는다
인간은 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질문을 놓지 않는다
인간은 혼자라는 것을 느끼지만 진정한 이웃을 원한다
인간은 상실을 경험하지만 여전히 사랑을 추구한다
인간은 유한함을 알지만 영원을 소망한다
그렇다! 인간은 마치 '부서지기 때문에 빛나는 투명한 그 무엇'과도 같다. 그리고 인간의 상실과 아픔 속에 빛나는 '의외성과 간절함'은 AI가 절대로 이해하거나 따라 할 수 없는 영역들일 것이다. 그것은 추론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도 아니며, 끝없는 생각과 논리를 통하여 얻어 낼 수 있는 객관적 진리도 아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인류를 지탱해 온 그 무언가를 우리는 지니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소명이 있다면 그것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고 소중히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