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세계는 한 권의 책과 같아서, 여행하지 않는 자는 오직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자이자 철학자로서 서양 기독교와 신학적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성 아우구스티스'(Augustinus Hipponensis)가 여행을 좋아했다는 것은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자 격려였다. 물론 실제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말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말인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그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여행을 사랑하는 나에게는 도전이 되는 그야말로 명언이었다.
난 사실 세상이라는 책을 가능하면 완독하고 싶은 욕심에, 조금은 심하게 나를 몰아붙이는 여행광이자 걷기광이다. 그리고 어떤 장소를 방문할 때 처음 간 길조차 돌아올 때에는 다른 길로 돌아올 정도로 새로운 장소와 분위기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나였기에, 여행은 당연히 좋은 친구였고 연인이었고 스승이었다.
아내와 두 딸에게는 미안한말이지만,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은 물론이고 홀로 나서는 여행이야 말로 나의 감정 치를 최대한 끌어올려 온갖 상상과 창의력의 결과물들을 마구마구 머릿속에 샘솟게 하는, 그야말로 나에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혼자 가는 사람은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함께 여행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혼자 하는 여행은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기에 일단 출발부터 마음이 편하다. 혹여나 일정이 틀어지거나 방문한 여행지가 생각만큼 좋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눈치를 볼일이 없기에, 사랑하는 가족이나 혹은 가장 친한 친구와의 여행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아니 때론 더 풍성하고 자유로운 여행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제주로의 혼자만의 여행'은 갑작스레 시작되었다. 당초에는 삼십 년을 훌쩍 뛰어넘도록 어울려 다니던 친구 두 녀석과 제주도를 여행하기로 거창한 계획을 세웠던 터였다. 직장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우리는 포르투갈, 멕시코 등등 머나먼 이국땅으로의 동반 일탈을 꿈꿔왔지만, 겨우겨우 맞춰진 스케줄은 제주도가 최대였다. 하지만 장소가 중요하랴! 삼십 년 만의 친구들과의 동반일탈이니 장소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게다가 사실 '제주'는 아무런 곳이 아니다. 세계 어느 곳보다 이국적이고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신비한 섬이 아닌가!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친구 중 한 명의 아버지께서 오랜 지병이 갑작스레 병세가 악화되셔서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설레임 가득한 계획은 기약 없이 다음으로 미루어졌다. 다행히 친구 아버지는 당장 위급할 정도는 아니신 듯했으나 친구의 불안한 마음을 생각하면 여행을 강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덕분에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가며 예약했던 숙소와 항공권, 그리고 몇 주일을 고민해 만든 여행 루트와 맛집 리스트는 한낱 종이 쪼가리로 변해버렸지만, 그거야 뭐... 약간의 수수료만 물어내면 되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미 불이 지펴져 달궈질 때로 달궈진 내 여행을 향한 갈망이었다. '제주'라는 섬은 수많은 여행객과 비싼 물가로 최근 오명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최애의 장소 중 하나였다.
난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혼자라도 가야겠다는 갑작스러운 충동에 정신을 차려보니, 제주행이 선명하게 표시된 항공권 한 장이 나의 스마트폰에 다시 들어와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뭐라 말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사실대로 털어놓았고 아내는 예상과 다르게 선뜻 OK 사인을 보내왔다. 드디어 새로운 장소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이 다시금 나를 바짝 끌어당기고 있었다.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라는 제주도에 관한 속담이 있다. 만약 전생이 있다면 난 분명 말이었을 것이다. 가도 가도 제주도를 또 가고 싶어 하니 내가 사람인지 말인지 헷갈리곤 한다. 어찌 되었던 날 태운 저녁 비행기는 다소 과격하게 뒤뚱거리며 활주로에 도착을 했고, 난 또 한 번 정겨운 "HELLO JEJU" 간판을 마주하며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야. 제주! 또 만나네"
그리고 제주 역시 오랜 친구처럼 가을밤 포근한 바람으로 날 감싸주며 반가이 인사를 건넸다.
"아! 친구 어서 오게. 또 보네"
어떤 이의 목적지는 절대적 장소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법이다.
<헨리 밀러>
얼마 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개인적으로는 이 표현이 맘에 안 들지만, 내 눈물은 정말로 닭똥처럼 흘러내렸다.- 감명 깊게 보았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수십 개의 달이 나온다. 사고로 병상에 누워 생사의 기로를 왔다 갔다 하는 아버지의 무사 귀환을 위해 소원을 빌고 싶어 하는 어린 여자아이를 위해, 주인공들은 힘을 모아 밤바다에 배를 띄우고 천 개의 달을 만든다. 그 간절한 기도 덕분에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살아난다는 다소 신파적이 소재이지만, 오늘 밤 내 눈앞에 천 개의 달이 떠 있었다. 물론 천 개보다는 다소 부족한듯하지만 밤바다의 어둠을 환히 비춰 낮의 해가 줄 수 없는 신비하고도 어렴풋한 밝음을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달이었다.
난 제주의 대중교통을 너무 쉽게 본듯하다. 버스를 타고 쉽게 이동할 수 있으려니 하는 안일한 나의 생각을 비웃 듯, 내가 기다리던 버스는 대중교통 알림 앱의 최첨단 과학기술과 나의 뛰어난 예지력을 보기 좋게 뭉게 버리고 예상시간보다 삼십여분이나 지난 후에 도착했다. 난 이대로 나의 최상의 기분을 무너뜨리지 않고자 스스로를 도닥이며 버스에 올랐고 꽤 많은 분들이 타고 있었다. 다행히 빈 좌석 하나가 나의 피곤한 몸을 반겨주었고 이내 빈좌석과 나는 일심동체 한 몸이 되었다. 하지만 역시나, 나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는 점점 누워가는 나의 몸뚱이와는 상관없이 창밖과 버스 안을 정신없이 둘러보고 있었다. 그때 나의 눈에 들어온 한 문구가 있었으니 '임산부 배려석'이라는 큼지막한 명조체 글씨였다.
서울이나 수도권의 버스에서는 좌석 옆에 조그맣게 새겨져 있어, 가끔 사람이 없을 때면 두 눈 질끈 감고 앉아서 가곤 했지만, 제주 버스에는 도저히 읽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큰 글씨체로, 그것도 주황색 바탕 위에 새겨져 있었다. 난 순간 움찔하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앉은 좌석이 '임산부 배려석'일까? 아니면 앞에 할아버지가 앉아계신 좌석이 '임산부 배려석'일까? 하지만 난 잠시의 쓸데없는 고민을 서둘러 마치고 이내 다시 딱딱함과 아늑함, 그 중간 어디쯤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좌석에 몸을 맡겼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알랭 드 보통>
제주에는 수많은 맛집이 있다. 맛집만 소개해도 수년은 걸릴 듯하고 아마도 나는 그 수많은 진미를 평생 다 먹어 보지는 못할 것이다. 평상시 맛집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아무래도 혼자만의 여행에서는 왠지 국밥 혹은 라면을 자주 찾아 먹게 된다. 혼밥에 적합하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 유명식당들의 메뉴판에는 거의 모두 '2인 이상'이라는 다소 냉정한 문구들이 곁들여져 있다. 빈 속을 채워달라 아우성 데는 나의 배를 움켜잡고 찾은 제주에서의 첫끼도 역시 해물라면을 파는 바닷가 식당이었다. 평생의 동반자 중 하나인 라면이 제주 바다의 -물론 러시아나 다른 머나먼 이역만리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일 수도 있지만- 다채로운 해산물들에 둘러싸여 먹음직스럽게 내 눈앞에 차려졌다. 주인 아저씨의 구수한 목소리와 함께. "하영 드섭써"(많이 드세요.)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느라 지쳤던 나의 몸과 마음은, 감칠맛이 한도를 초과해 버린 얼큰한 해물라면 국물과 주인장 아저씨의 구수한 제주 사투리에 이미 위로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참고로 이 식당은 제주의 흔하지만 여전히 매혹적인 밤바다 풍경과 함께 거대한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내려 않는 광경도 바라볼 수 있다.
나름 푸짐한 저녁 만찬을 즐긴 후 그날따라 푸근했던 제주 밤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밤바다를 따라 펼쳐진 둘레길을 천천히 걸어 나갔다. 문득 같이 가기로 했었던 친구들에게 미안하여 문자 한 통을 넣었다. 쓰고 보니 표현이 너무 구세대처럼 보이지만 '문자 한 통을 넣었다'라는 표현이 정겨워 그냥 남겨둔다.
"나 혼자 왔다. 미안하다. 다음에는 너희랑 꼭 같이 와서 이 밤을 함께하고 싶다. 진심이다."
문자를 보내기 전 '친구란 가족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그리 영양가 없는 고민을 잠시 했었다. 그런데 친구가 보낸 답장에는 의외로 아래와 같이 우문현답의 대답이 담겨 있었다. 뭐 친구는 별생각 없이 한 말이겠지만...
"가족은 다 같이 모여서 같이 자는 거고, 친구는 놀다가 자기 전에 헤어지는 거다. 이제 그만하고 들어가서 자라."
정답인듯하다. 매정한 놈!
최대한 경비를 아끼며 낭만까지 즐길 수 있는 나의 일석이조의 계획은 제주에서 랜트한 차를 이용하여 홀로 차박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밤은 저녁 늦게 제주공항에 도착했기에 아직은 차를 랜트하기 전이었고, 난 제주시 인근 찜질방을 선택하여 도보로 이동한 후 뜨끈뜨끈한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였다.
다음날 새벽, 꽤 나른해진 몸을 이끌고 새벽 일찍 거리로 나왔을 때는 세상 시원한 제주의 새벽바람이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일깨우기 시작했다. 나는 본격적인 여행의 기대를 안고 제주공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는 '도두봉'을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재촉했다. 새벽녘이라 사람이 없을 줄 알았지만, 유명 관광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로 정상은 활기가 넘쳤다. 특히나 전라도에서 온 것이 확실한 - 서울깍쟁이 출신인 나에게는 그녀들의 사투리는 정말로 쾌활하고 구성지게 들려왔다.- 한 무리의 젊은 여성분들은 인상 깊은 전라도 말씨와 전투적인 사진 촬영으로 소소한 유쾌함을 나에게 선사했다. 무리의 리더인듯한 아가씨 한 명이 연신 친구들을 불러대는 것이다. "아따 싸게 싸게 와라. 가시나야." 전라도 아가씨는 주변 사람들이 다소 의식되었는지 최대한 여성스럽고 나긋나긋한 말투로 친구들을 불러댔으나,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자연스러운 사투리는 너무나 정겹고 구성지어 나로 하여금 미소를 품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살짝 흐린 날씨로 인해 풍경은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소소하고 유쾌한 출발이 너무나도 맘에 들었다. 혼자만의 여행을 향한 본격적인 기대감이 나의 혈관을 달구기 시작한 것이다.
어둑어욱 했던 주변은 점차 밝아오고 있었고 내가 용두암 해안가 산책길에 다다랐을 때는 그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속살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었다. 제주의 바다에는 바다만 있지 않았다. 이름 모를 바닷가의 야생초와 들풀들이 어쩜 그리도 제주의 바다와 어울리며 자리 잡고 있는지, 바닷가 언덕 위 들풀들은 화려하게 튀지도 않으면서 차분한 자리매김과 은근한 풀내음으로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고, 바다는 푸근한 배경이 되어 들풀을 품고 있었다. 그중 신비로운 녀석이 있었으니 제주에만 자생한다는 '문주란'이다. '청순, 순박함'의 상징이라는데 그 싱그러운 초록은 제주의 푸른 바다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아침을 수놓고 있었다.
간단히 전복죽 한 그릇으로 아침의 호사를 즐긴 뒤 나는 일찌 감치 차를 랜트했다. 조금이라도 제주를 눈에 더 담으려는 나의 욕심은 발걸음을 바쁘게 만들었다. 차량을 랜트 한 후 제주의 서측 해안길을 따라 최대한 바다를 가까이하여 운전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풍경과 길을 마주했으나 모든 것을 담기에는 나의 감성과 능력이 부족해 보였다. 아니 모두를 담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애초에 제주에 대한 나의 과한 욕심이 아닌가 싶다. 내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것들을 가능한 정돈하고 다듬어, 이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전 9시경 차를 몰고 도착 한 곳은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한 '장한철 산책로'였다. 사실 장한철 산책로는 애월 입구에서부터 곽지해수욕장까지 '한담해안산책로'와 연이어 이어져 있어, 시간만 허락한다면 바닷가를 따라 애월에서부터 곽지까지 천천히 걸어가 보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정겨운 산책로의 시작인 '애월카페거리'입구에 도착한 나는 -장한철 산책로는 애월카레거리 입구에서 출발한다.- 예상보다 살짝 많은 차량에 잠시 당황했지만, 운 좋게도 도로변 주차장에 빈자리를 하나 발견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뿐히 주차를 완료했다. 어느 관광지에서나, 주차할 때부터 난관에 봉착하거나, 입구에서부터 수많은 인파를 목격한다면 여행의 흥미가 반감하기 나름이지만, 오늘은 왠지 차량도 적당하고 사람도 적당했다. 그리고 하늘과 바다도 너무나 적당한 블루였다.
'장한철'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대단한 벼슬을 한 것은 아니지만 '표해록'의 저술로 이름을 남기신 분이다. 한양에 과거를 보러 가다가 풍랑을 만나 오키나와에 표류했던 내용을 담고 있는 책으로 그 문학성이 높아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한다. '장한철 산책로'는 마치 주인공의 스릴 넘치는 모험처럼, 하얀 포말들이 가득한 파도를 바닷가 산책로에 뿌려댔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웃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들을 질러대며 즐거워했다. 산책로는 그야말로 바다를 거니는 기분이었다.
한림읍에 위치하고 있는 '협재해수욕장'은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제주의 명소로서 조개껍질이 많이 섞인 은모래빛 백사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곳곳에 현무암의 숨은 자태가 드러나는 해수욕장이다. 수심 또한 얕고 경사도 완만하여 물놀이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이런저런 감상에 젖어 "한몇 년만 젊었어도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을 텐데"하는 갈등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망설이고 있던 내 눈앞에, 불쑥 솟아오르는 형체가 있었으니, 어느 철없는 내 또래 아저씨가 이미 바다에 흠뻑 젖어 머리를 바닷속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던 것이다. 다음 장면은 모두가 예상하시다시피, 철없는 나 역시 바닷속으로 머리를 곤두박칠 치고 있었다. 그것도 나의 몸에 아직 옷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이성적인 판단이 내 머릿속에 들어올 사이도 없이...
아마도 아내가 봤으면 등짝을 한대 얻어맞을 행동을 시원스레 하고 난 뒤, 난 몰래 도둑질에 성공한 듯한 쾌감을 간직한 채 바닷속에서 나왔고 결국은 한참을 말려대고 씻어댄 끝에야 간신히 봐줄 만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바닷가에 최대한 자유로운 자세로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내 눈앞에 둥그렇게 내려 않은 바다 위 포근한 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협재해수욕장 수평선 위에 선물같이 펼쳐진 '비양도'였다. 제주의 화산체 중 가장 나중에 생긴 막내 섬인 비양도(飛揚島)는 '날아온 섬'이라는 뜻으로, 고려 시대 중국에서 한 오름이 제주도로 날아와 비양도가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크기도 아담할뿐더러 비양도에서 자생한다는 '비양나무'로도 유명하여 한번쯤 가보고 싶었건만 아직도 찾아보지 못한 섬 중하나였다. 다음번 여행에는 반드시 한번 방문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생긴다. 어쨌든 한 시간 여의 협재와의 해후를 마치고 나는 다시 차를 몰아 제주 서쪽의 일주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요즘 부쩍 유명세를 타고 있는 '신창 풍차 해안도로'는 해안가 풍차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장소로, 자동차 운전석에 쭈그러진 채 운전에만 몰두하던 나의 육체와 정신을 깨우는 제주도 특유의 비경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바다와 풍차들과 돌담들이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보며 달리다 보니, 생소한 장소가 눈에 띄었다. 잠시 차를 세우고 둘러보니 '원담'이라는 장소였다. '원담'은 제주 해안의 자연지형과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하여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돌을 쌓아 만든 담으로 '갯담'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옛날 제주 지역의 공동어로 시설이라 할 수 있는데, 그물 가득 잡아 올리는 물고기에 제주 어민들의 행복한 미소를 떠올리니 그 모양새가 더욱 신비롭고 정겨워졌다.
'신창 풍차 해안도로' 인근에는 또 하나의 낯선 이름이 있으니 바로 '싱게물 공원'이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싱게물'이란 단어는, 제주도의 옛 노천탕을 가리키는 말로, 바닷가에서 '새로 발견한 갯물'이라 하여 '신게물' 또는 '성게물'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제주도 해안가에 지하수가 솟아오르는 샘을 '용천대'라 하는데, 상하수도 시설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용천대 주변으로 취락이 주로 분포했고, '싱게물 공원'에는 이런 샘(용천대)을 이용하여 사방으로 돌담을 쌓고 목욕탕을 만들어 이용했던 것이다. 지금도 남탕과 여탕의 표지가 분명히 구분되어 있어, 혹시나 아직도 사용을 하는 시설인지 하는 궁금증이 마음속 가득해졌지만, 또 다른 여행지가 나를 기다린다는 조바심에 나는 또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의 대학시절 전공은 '건축'이다. 그다지 노력파가 아니었던 나는, 그래도 운이 좋았는지 아직까지도 건축과 관련된 일을 업으로 삼으며 살아나가고 있다. 요즘은 한 가지 덧붙여 '건축기행'과 '건축에세이'등을 취미로 삼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창의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건축물들을 디자인하고 설계하며 살고자 했던 젊은 날의 꿈과는 다소 괴리가 있는 현재의 삶에 대한 보상차원인듯하다. 어찌 되었든 사실 제주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다.
- 설계 : 이타미 준 (한국명 유동룡, 재일교포 건축가)
- 위치 : 제주 서귀포시 산록남로 762번길 113
- 건축의도 :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한 작품. 물 위에 떠 있는 형태로 물과 빛, 그리고 아름다운 나무, Zinc
소재의 메탈로 이루어진 성전.
- 설계 : 건축가 홍재승
- 위치 : 제주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883-5
- 건축의도 : 신전 혹은 무덤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김창열 화백의 뜻을 반영해, 짙은 회색 콘크리트 외
벽과 나뭇결, 거친 돌의 표면으로 단장한 입구와 건물 중앙에 물을 채운 중정을 만들어 물방울이 자연 광선
에 반사되게 연출해 놓은 것이 특징.
- 설계 : 안도 다다오 (1995년 프리츠커상 수상, 일본 건축가)
- 위치 :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762번길 69
- 건축의도 : 건축가 특유의 노출콘크리트 기법을 사용하여 빛과 물을 건축요소로 끌어들임으로써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고자 함. 전통공예를 소개하는 본태 박물관의 특성상 전통과 건축의 조화도 중요한 특징임.
- 설계 : 이타미 준 (한국명 유동룡, 재일교포 건축가)
- 위치 : 제주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906-10
- 건축의도 : 설계 초기부터 건축가의 주요 테마인 '바람'을 의식하고 제주의 풍토에 순응하며, 미술관이 위치
한 주변 곶자왈이 가진 수평적이고 고요한 자연환경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주요 특징임.
- 설계 : 건축가 승효상
- 위치 :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
- 건축의도 : 추사체와 세한도라는 걸작을 만든 추사의 삶과 걸맞도록 건물도 벽과 지붕에 충실한 가장 기본적
이고 단순한 형태로 설계하였으며, 건물이 위치한 제주 대정읍의 작은 동네에 집들이 옹기종기 만들어 낸 집
합의 아름다움을 깨고 싶지 않아, 전시실은 지하로 밀어 놓고 지상의 공간은 비워 둔 것이 특징임. 참고로
‘대정읍’은 추사 김정희가 1840년부터 1848년까지 약 9년간 유배 생활을 했던 곳임.
- 설계 : 건축가 승효상
- 위치 : 제주 제주시 한림읍 한창로 1236
- 건축의도 : 제주 한림읍 성이시돌목장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이용해 치즈, 우유, 아이스크림 등의 유제품을
생산하는 유가공 공장. 승효상 건축가는 오래전 도민들의 민생을 위했던 성이시돌목장의 헌신을 높이 평가
했고 그런 이유로 성이시돌목장의 협력업체이며 제주도가 지원하는 신설 제조업 투자기업인 미스터밀크 공
장 설계를 기꺼이 수락함.
- 건축 : 임피제(맥그린치) 신부
- 위치 : 제주 제주시 한림읍 금악동길 28 (성이시돌 목장 내)
- 건축의도 : '테쉬폰'은 물결모양의 아치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쉘 지붕' 형태의 근대건축물임.
패트릭 J. 맥그린치 신부 (한국명 임피제)가 고향인 아일랜드에서 테쉬폰 구법을 배워온 뒤 1960년대 제주시 한림읍 이시돌 목장을 시작으로 제주 곳곳에 보급함. 테쉬폰은 당시 건축자재가 부족했던 상황에서 간단한 자재와 건축술로 빠른 시간 안에 지을 수 있는 최적의 방식이었으며, 한때 200채 가까이 공급됐으나 현재 개발 광풍 속 대부분 사라짐.
발견의 진정한 항해는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데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
나의 여행은 어느덧 대정읍에 이르렀다. 사실 대정읍은 어느 유명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돌고래의 출몰을 보고자 방문했던 '노을해안로' 주변이나, 마라도와 가파도의 유명세와 함께 출항지로 덩달아 인지도가 높아진 '모슬포항' 정도가 이름을 알리고 있을 뿐, 별다른 관광지가 없는 조용하고 한적한 지역이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지역이기도 하지만, 그 평온한 겉모습과는 달리, 이곳은 제주 도민의 눈물과 한이 서려 있는 아픔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모슬포’란 지명의 의미만 살펴봐도, 오래전에는 '모슬개' 또는 '모실개'라 불렸는데, '모슬'은 모래를 의미한 제주 방안 '모살'에서 유래한 것이며, '개'는 포구를 뜻하는 것이니, 단어 그대로라면 '모래가 있는 포구'라는 뜻이겠으나, 다른 말로는 '못살포'라 불리었다고 한다. '못살포'는 그 말 그대로, '바람이 거세고 환경이 척박하여 사람이 못 사는 땅'이라는 뜻이니 그 어려움을 짐작할 만하다.
그 사연 또한 구구절절한데, 조선시대에는 가장 험한 유배지였으며, 제주 4·3 사건 때 132명이 학살당한 서달오름 또한 이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나의 가슴속 깊은 곳에 묵직한 아픔을 던져 주는 이곳, '알뜨르비행장'은 중일전쟁 당시 전투기의 중간 기착지로 건설된 일제의 대표적 수탈과 노동착취 현장이었다. 이곳은 태평양 전쟁 당시에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강제 동원하여 만든 군용 비행기 격납고였다. 모슬포 바닷가의 자갈과 모래를 이용하여 이러한 격납고 20기를 만들었는데, 현재 19기가 원형 그대로 남아 제주도민을 강제 노역에 동원한 실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넓게 펼쳐진 고요하고 평온한 푸른 대지 위에 마치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버려진 무덤처럼 덩그러니 울고 있는 격납고의 초라한 모습과 기껏해야 팔십여 년 전 전쟁의 광기들을 실어 나르느라 이곳을 수없이 뜨고 내렸을 일제의 군용기들의 모습이 나의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오버랩되었고, 그 시대의 아픔을 점점 잊어가는 우리의 모습이 부끄러워 나는 한참을 그곳에 서 있었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 주는 것이다.
<아니톨 프랑스>
그렇게 둘째 날의 일정이 마무리되어 갈 때쯤, 나는 차박지를 서둘러 골라야 했다. 사실 차박지라고 해봐야 흔히들 생각하는 거창한 차박은 당초에 생각지도 않은 터라, 그저 근처에 내 몸의 중요 대사를 처리할 만한 화장실과 물을 사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만 갖춘 곳이면 괜찮겠다 싶었다. 그러나 정신없이 여정에만 매달리다 보니 금세 해가 지기 시작했고,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고는 앞이 잘 구별되지 않는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하자, 나는 급한 마음에 분주히 지도를 검색하며 제주 남쪽의 해안도로들을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이미 주변은 어디가 어디인지 잘 구분할 수도 없었고, 차박지로서의 최적성을 판단할 수 있는 여유는 더군다나 없었다.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달려서 성산일출봉 근처까지 가보기로 했다. 어차피 내일 아침 성산일출봉에 오르기로 했으니 미리 가서 대기하며 하룻밤을 지새우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기대였다.
성산일출봉 아래 주차장을 한밤중에 찾아와 보긴 처음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시간에 성산일출봉을 오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저녁 9시가 훌쩍 넘은 시간 주차장엔 단지 서너 대의 차량들만 뜨문뜨문 서 있었다. 나와 같은 방랑자들인가 하는 궁금증을 안고, 나 역시 가능한 바다가 보이는 가능한 깊숙한 어느 한구석을 찾아 조용히 차를 안착시켰다.
차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나왔을 때, 놀랍게도 그곳에는 밤의 대낮이 펼쳐져 있었다. 휘황찬란하게 떠오른 성산일출봉 머리 위 달빛은 온 세상을 그야말로 화사하게 비추고 있었고, 밤을 수놓고 있는 하얀 구름은 달빛을 받아 그 윤곽을 더욱 신비하고 다채롭게 바꿔가고 있었다. 그날따라 낮동안 숨 가쁘게 몰아치던 바람과 파도도 달빛 아래 조용한 잠을 자는 듯했다.
나는 문득 "이렇게 비현실적이고 평온할 수가 있을까?" 하는 감탄사들을 떠올리며, 그 밤을 그렇게 거의 홀로 즐겼다.
여행은 삶을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작자미상>
새벽같이 차 안에서 눈이 떠진 나는, 아직도 일출까지 한 시간 여가 남은 터라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성산 근처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 검색을 통해 찾은 곳인데, 그 이름도 지역친화적인 '성산포 수협 목욕탕'이었다. 그 역사가 꽤나 오래된 듯한데, 나름 관리를 잘하신 탓인지 무척이나 깔끔하고 정감 가는 목욕탕이었다. 더군다나 매우 저렴한 금액과 해수탕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은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어제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고 한참의 호사를 즐기다가 탕에서 나와, 막 시원한 음료를 한잔 즐기려던 순간이었다. 목욕을 방금 마치신 두 노인분의 대화가 들려왔다. 연세가 팔십은 넘어 보이시는 두 분 중 한 분이, "의사가 췌장암이라고 금방 죽는다고 했는데, 글쎄 삼 년이 돼도 안 죽었어. 오늘이 삼 년째야, 이런! 내가 박카스 쏜다! (두 분의 박장대소)"
이 무슨 대화 인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생면부지의 할아버지였지만 두 분의 천연덕스런 대화가 그리고 그분들의 초연한 삶이 나의 아침을 희망차게 북돋았다.
'광치기', 이 무슨 해괴한 이름인가 하는 생각에 궁금해하고 있을 무렵, 이럴 수가! '광치기'라는 이름은 구전에 따르면, 예전에 태풍이 많이 불어 바닷가 나간 남자들이 많이 죽었는데, 그 시체가 바닷가에서 해변으로 많이 떠밀려와 해변에서 관을 많이 짰다고 해서 '관치기'라고 부른 말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제주는 참으로 무슨 사연이 이다지도 많다는 말인가? 가는 곳곳마다 그 숨은 아픔들이 있으니 제주는 참으로 겉보기와는 다른 곳인 듯하다.
하지만 이곳은 '관치기'라 이름하기엔 너무나도 아름답고, 심지어 해변가 언덕 위 잡풀 하나도 함부로 밟고 싶지 않을 만큼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간조시에는 바닷가의 이끼 투성이 바위들도 그 희귀한 자태를 드러낸다 하니, 그 또한 보고 싶었지만, 이른 아침 눈부신 태양을 반사하는 대지와 바다만으로도 나에겐 벅찬 감동이 되어주었다. 아마 이곳의 지명도, 그 이름과 뜻을 마냥 어두운 데만 둘 수 없어 '광치기'로 바꿔 부른 듯하다. 지금은 성산에서 일출이 유명해지면서 '해가 뜨는 빛이 흠뻑 비친다'는 뜻의 '광치기'로 변하였다고 하니, 그 옛날 아픔이 이제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고 빛에 흠뻑 젖은 아름다운 곳으로 영원히 남길 바란다.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전국시대의 '맹상군'이라는 인물의 일화에서 유래되었는데, 맹상군은 제나라의 왕족이자 재상으로,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는 달리 인재를 중시하고 출신에 상관없이 인재를 등용하여 그의 재상 재임기간 동안 제나라를 강국으로 이끌고 정치와 문화를 발전시켰다 한다. 이러한 '맹상군'의 뛰어난 능력과 인재를 아끼는 태도에 대해 사람들은 "맹상군이 객을 좋아하고 스스로 즐거워했으니 그 이름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라고 평가하던 말이, 오늘날 '명불허전'이라는 고사성어로 전해진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우리나라에도 이런 명불허전의 지도자나 정치가가 다시 한번 등장해 주길 바라면서, '성산 일출봉'을 다시 한번 바라본다. '성산 일출봉'이야말로 자연이 내려주신 '명불허전'인 듯하다.
그러나 일출봉 정상에 고이 숨겨둔 사발모양의 분화구 비경을 보기 위한 여정은 그리 녹녹지 않다. 수 없이 이어지는 계단과 오르막길을 30여 분간 오르고 나서야 그 비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중간중간 높이를 달리하여 내려다 보이는 바닷속 비경과 기암괴석들의 응원은 다리가 뻐근해지도록 힘든 계단길도 기분 좋은 구름 위 산책으로 변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젊은 시절 한달음에 올라가던 이 길을 이제는 천천히 주변의 것들을 쳐다보며 걸어 올라간다. 성산 일출봉의 거대한 그늘 아래 보호받는 이름 모를 풀 들과 그 옛날 바다를 솟구쳐 오른 '화산채'들의 흔적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드디어 도착한 성산 일출봉 전망대. 가지런하고 깔끔한 데크로 이루어진 전망대 아래로는 거대한 분화구가 펼쳐진다. 해외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삭막한 회색과 잿빛의 분화구가 아니다. 진기한 나무와 풀들로 뒤덮인 초록의 향연이다. 그대로 뛰어내려 그 포근한 품에 빠지고 싶은 자연의 기적이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이런 축복된 선물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저 사발모양의 움푹 패어진 생명의 공간엔 영원히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의 추악한 발자국을 한 번도 맛보지 아니한 신성의 공간이 어딘가 하나쯤은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이른 아침부터 나의 감정을 최고조로 달리며 자연을 만끽했더니, 다소 허기가 져왔다. 시간 되는 데로 유명하다는 근처 해장국집을 찾아 다소 늦은 아침을 해결하고 나는 '종달리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제주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일도 나의 주된 관심사이나, 이 글이 너무 길어지고 방대해진다는 느낌이 들어 이곳에서는 간략히 하여 한다. 제주의 맛깔나고 정겨운 음식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구한다.
달리는 곳곳 제주의 숨은 속살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종달리 해안도로'를 끼고 삼십여분을 달렸을까, 도로 위 표지판에 '비자림'이라는 표시가 보인다. 나는 표시를 따라 제주 중턱에 위치한 '비자림'을 향하여 좌회전 표시를 켠다. 이윽고 나타난 제주 중턱의 완만한 경사도로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주변의 이국적인 나무들과 기분 좋은 초록의 숲들은 '광치기 해변'과 '성산 일출봉'을 뒤로한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었다.
서두르지 마라 그러나 쉬지도 마라.
<괴테>
비자림 출입구 화장실에 적힌 말이다. 그동안 난 너무 서두르는 삶을 살아온 듯하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제대로 무언가를 이루어낸 삶도 아닌 듯한 것이 묘한 후회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인생에 늦은 때가 어디 있겠는가? 이제부터라도 '괴테'가 우리에게 강조한 서두르지 않지만 꾸준한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 무언가 큰 성공을 이루지 않더라고 그렇게 성실히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성공이리라는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며 나는 비자림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비자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국내 최대의 비자나무 군락지이다. 500년에서 800년의 수령을 가진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단일 품종 군락으로는 그 규모가 세계 최대로 꼽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비자림을 산책하는 내내 그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오래된 고목들이 신비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앞다투어 눈앞에 튀어나왔다. 함부로 말을 놓기도 부담스러운 나이의 비자나무 사이를 꽤 오랜 시간 걸으면서, 과연 800년 가까이 한 곳에 서서 오로지 한 곳 만을 바라본다는 심정이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본다. -물론 이 비자나무들이 다른 곳에서 옮겨져 심기웠으리라는 가능성도 있겠지만- 나는 살짝 답답한 마음이 들며, 세상을 내 발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도 참으로 행복이라는 소소한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그 오랜 세월 한자리에서 우리가 숨 쉬는 산소를 뿜어내며 세상을 정화하고 있는 그 모습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자림은 그 이름에서 풍기는 것처럼 너무도 신비하고 고요한 숲이어서, 이 순간 나를 비롯한 관광객들의 이기심과 욕망이 묻어나는 쉼 없는 재잘거림 들은 차라리 불필요한 것이었다.
제주의 깔끔한 백반으로 기분 좋게 점심을 마무리한 나는 요즘 제주 인기 코스라는 장소를 방문했다. 그 이름도 기나긴 '스타벅스 더제주 송당파크 R점'이었다. 가볍게 커피 한잔 즐길 생각으로 방문한 곳이었지만, 그 긴 이름만큼이나 사람들의 대기줄은 더 길다.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을까 하는 생각에 커피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카페 앞 폭포와 돌산을 올라본다. 놀랍게도 인공이다. 사람들은 '제주의 오름'을 시샘했는지 스스로 오름을 쌓은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오히려 제주의 오름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듯하다. 그 편리함과 쾌적함에 대한 유혹이 자연의 거친 손길이 주는 감동보다 사람들에겐 더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바로 옆 이름 모를 제주오름이 약간은 서운해할까 봐 미안하다.
오후 2시경 나는 '사려니숲'에 도착했다. 입구를 찾기가 다소 어려워 약간은 헤매었지만, -입구도 정반대 위치에 두 곳이 있으니 미리 검색을 통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와야 한다. 그리고 주차장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국도변에 차를 주차해야 한다.- 무사히 주차를 마친 나는 짙푸른 숲의 틈사이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사려니'란 말은 어원이 분명하지 않지만 '숲 안', '신성한 곳'을 의미하는 '솔(살)아니'란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한라산의 깊은 숲에서도 더 안쪽의 숲을 가리키는 것으로 '인간이 함부로 범하지 못하는 신성한 땅'이라는 의미다. 제주도에서 사려니 숲길이 '신성한 숲길'로 여겨지는 이유다. 사려니 숲길에서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곧게 뻗은 나무의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이 높게 느껴진다. 사려니 숲길에는 삼나무뿐만 아니라 편백나무, 졸참나무, 서어나무, 산딸나무, 쥐똥나무, 때죽나무, 단풍나무, 참꽃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그러나 수많은 나무들의 수종만큼이나 요즘은 유명세 탓인지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뭐 나도 그중의 한 명이지만 이 소중한 숲을 아주 소중히 걸어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는 사람들의 오염된 발길을 숲의 거대한 모성이 충분히 품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숲을 걷는 내내, 내 폐 안의 썩고 부패한 숨결들의 숲이 내어주는 새로운 생명의 호흡들로 교체되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숲의 신선함을 받고자 연신 깊은 심호흡을 해댄다.
여행을 하는 것이나 병에 걸리는 것, 이 둘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점이다.
<다케우치 히토시>
함덕의 밤 바닷가 왜진 주차장 한편에 차를 세웠다.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함덕 해수욕장에 중에서도 비교적 조용하고 한적한 이곳은 함덕 가장 끝자리 위치하였다. 몇 칸 안 되는 주차자리에 다소 걱정을 했지만, 초보 차박 여행의 운이 따르는지 빈자리 한 곳이 눈에 띄었다. 주차를 하고 보니 더욱 명당이다. 바로 앞 조용한 바다는 물론 나지막한 언덕까지 금상첨화다. 불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과 저 하늘 도도히 빛나는 달빛과 고기잡이 배들의 조화는 그야말로 예술이다. 시세말로 "미쳤다."라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평상시 한 번도 써보지도 않은 젊음의 용어가 나를 살짝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그야말로 마지막 제주의 밤을 위한 최고의 무대였다.
바람 부는 바닷가 언덕에 앉아 편의점에서 구입해 온 정체 모를 와인 한 병을 앞에 놓고, 삼십 년째 듣고 있는 이소라 님의 노래를 다시 한번 재생한다. 몇 번을 들었는지 셀 수도 없지만 여전히 나의 가슴에 저림을 주는 노래들이다. 사랑의 아픔 따위는 이제 별 감흥도 없을 나이라 생각했지만 인간은 결코 그렇게 삭막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너무 힘든 가사 쓰지 말고. 이제는 행복하세요. 소라님~"
혼자만의 여행의 장점이 있다. 자유로운 경로나 수월한 식사 메뉴의 선택, 저렴한 비용 등 일반적인 장점들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행여나 여행지가 실망스러워도 눈치 볼 필요가 없다. 단지 나름 최대한 그곳을 느끼고 배우고, 그리고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그만이다. 인생도 뭐 비슷한 거 같다. 실망스러운 시간들도 있겠지만 최선을 다하여 그 시간들은 살아가고 또 다른 시간들을 기대하면 된다. 막상 나중에 돌아보면 사실 모든 시간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행의 순간들도 비록 실망과 환희가 교차하지만, 새로운 만남과 경험을 통해 일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시간이다. 이러한 새로운 방식의 생각과 질문은 결국 나를 넓힌다. 그리고 그 생각과 질문에 대한 답들이 -비록 완전한 답이 아니어도- 내 일상에 녹여지는 순간, 평범하고 지루했던 일상에 또 하나의 변곡점이 생길 수 있다. 가끔은 화려한 휴가가 아닌 진실된 여행을 통해 내 안에 숨겨져 있어 몰랐던 그 무엇인가를 깨우는 소중한 경험들을 만끽하시길 바란다.
이제 함덕의 밝아오는 아침을 뒤로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비행기 시간이 아직은 몇 시간가량 남은 탓에 나는 아마도 가족들에게 안겨줄 선물을 살 듯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소소한 선물 꾸러미와 함께 나의 애정과 진심도 선물하려 한다. 조금 더 성숙한 남편, 조금 더 친구 같은 아빠가 되기 위한 나의 진심말이다.
여행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세상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영역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를 깨닫게 해 준다.
<프리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