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비추는 단상들
위잉~ 삐익~
부드러운 기계음의 프린터 소리가 사무실의 정적을 깨뜨린다. 몇 년 전 만해도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던 소음... 그때는 그리도 시끄러워 불만이 한가득이었지만 이젠 그나마도 듣기가 어렵다. 기술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다 보니 어느덧 종이 출력물을 들여다보는 사람들도 적어졌고, 업무의 대부분이 컴퓨터 모니터나 앱 화면 속의 가상세계에서 돌아가는 탓에 프린터의 사용 빈도는 급속히 감소하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프린터 기술도 눈부시게 발전하여 이제는 예전의 거친 기계음을 벗어난 지 오래이다.
돌이켜보면 설계 관련 부서에서 몸을 담고 있는 직업적 특성상, 프린터의 기계적 소음과 그들이 연신 뱉어 내는 종이 출력물은 나에겐 매우 친숙하고도 원망스러운 애증의 존재였다. 하얀 종이 위에 깔끔하게 뽑힌 도면들은 언제나 책상 위에 가득 쌓여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고, 단조로운 기계음의 프린터 소리는 뭔가 사무실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일종의 시그널 같은 것이었다. 물론 출력 업무를 주로 담당하던 신입사원들은 늘상 자괴감에 시달리며 마치 자신들의 상사인 것 마냥 프린터를 노려보곤 했는데, 나 역시 그러한 시절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워라밸이 잘 지켜지던 때가 아니어서, 가끔은 출력을 위해 프린터 앞에 서있는 시간들이 오히려 과중한 업무를 벗어나 잠시의 휴식을 가져다주는 순기능을 하기도 했었다. 프린터 앞에 대기하는 동안은 상사의 질책이나 부서의 살벌한 분위기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기에, 때론 출력의 시작을 알리는 거친 기계음이 오히려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기도 했고, 잠시나마 생각을 비울 수 있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그리고 출력이 끝날 때쯤 '삐' 하고 들려오는 종료음은 또다시 생업을 위한 전장으로의 복귀를 암시하곤 했다. 어쩌면 나보다 이전 시대의 선배들이 타이프 라이터의 둔탁한 소리를 추억하는 것처럼, 한 장 한 장 종이를 밀어내는 프린터의 기계음도 어느덧 추억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물론 생각해 보면 눈부신 기술의 발달이 내 책상 위에 늘상 쌓여 있던 종이 뭉치들을 치워 주었고, 번거로운 출력 작업도 많이 줄여준 탓에 감사한 마음도 크지만, 한편으론 기계적 소음뿐 아니라 어쩐지 사람 간의 대화 소리도 줄어든 것 같아 때론 사무실이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다. 업무 효율성이 그 무엇보다 강조되는 요즘, 한가한 잡담이나 여유로운 대화는 자리 잡을 곳이 없어진 것도 당연해 보이지만, 어쩌면 굳이 사라져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인간적인 소리들도 이제는 거의 들리지 않는 것은 나만의 기분 탓일까?
아침에 출근하여 서로의 안부를 묻는 소리들, 서로 도와가며 일하는 북적이는 소리들, 때론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날 선 토론을 벌이는 소리들, 어쩌다 어려움에 빠진 동료를 위로하기 위한 친밀하고 사적인 대화들... 어쩌면 이제는 굳이 필요하냐고 반문할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협업용 플랫폼과 AI가 업무 방식의 전반을 차지하여 비대면 업무가 많아지다 보니, 사람 간의 직접적인 대화의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은 모습들이 내겐 못내 아쉬운 것은 아마도 나이 탓인가 보다.
변화는 거의 대부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가져온다. 그리고 변화의 방향성이 옳다면 때론 다소 부정적인 면이 드러나더라도 감내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의 사무환경 변화도 비슷한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개인보다 팀과 조직을 무조건 우선시하던 예전의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서로 간의 존중과 배려를 통해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자존감을 높여 개인의 역량을 효율적으로 이끌어 내려는 관리 방식은 긍정적 요소가 크지만, 어쩌면 우리는 자칫 인간이 지닌 고유한 소통의 순기능까지 잃어버리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소소한 걱정들이 나만의 착각이길 바라며, 오늘은 괜스레 프린터를 한번 작동시켜 보며 마음의 잔향(殘響)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