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운전기사

일상이라는 이름의 소설

by hesed by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성향으로 나뉜다. 지하철 아니면 버스인데, 물론 택시 등 다른 대중교통수단도 있지만, 대중교통의 백미는 누가 모라 해도 지하철과 버스다. 각각의 교통수단마다 특징도 있고 장단점도 있어서 타는 재미나 편의성이 다르지만 아무래도 난 타고난 성향 때문인지 버스를 선호한다. 지하철에 비해 도착하는 시간도 일정치 않고 교통체증에 무방비로 당할 때도 있지만, 차창 밖 풍경을 볼 수 있다는 매력이 내가 버스를 주로 이용하는 이유이다.

직장이 집에서 가까워져 요즘은 주로 도보를 이용하는 탓에 버스를 탈 기회가 좀처럼 없지만 가끔이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기회가 생기면 나는 버스 노선을 우선적으로 검색해 보곤 한다. 오늘도 서울을 돌아다닐 기회가 생겨서 나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예년에 비해 가혹할 정도로 길고 무더운 올해 여름 더위에,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 것조차 곤욕이었지만, 그렇다고 버스에 대한 의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버스는 머지않아 도착했고 나는 뜨거운 햇살을 피해 버스에 냉큼 올라탔다.

이리도 시원할 수가! 무더운 기온 탓인지 유난히 시원하게 느껴지는 버스 안이 마치 천국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듬성듬성 앉은 사람들 사이로 여유롭게 나의 선택을 기다리는 파란색 커버를 뒤집어쓴 좌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버스 기사님에게 얼른 수고하신다는 인사를 해대고 좌석을 고르기 시작했다. 역시나 뒷자리가 편했다. 얼른 뒷자리에 가서 몸을 기대니 태양빛에 벌겋게 달아올랐던 나의 몸 덩어리가 다소나마 진정되는 듯하다. 그리고 비 오듯 쏟아지던 땀들도 서서히 사라지니 온몸이 시원해짐과 동시에 졸음이 찾아왔다.

그렇게 한 10여 분을 졸았을까? 사람들의 인기척에 잠에서 깨어난 내 눈에는, 조금 전에 비해 꽤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버스 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시내 주요 거리와 시장 몇몇 곳을 지나가는 노선 탓에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꽤나 북적이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손잡이를 부여잡고 서있는 사람들 사이로 보이는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의 부지런한 시선과 손놀림이었다. 손님을 안전하게 태우랴, 요금을 제대로 내는지 체크하랴, 뒤에 오는 버스가 정체되지 않게 서둘러 손님을 태우고 정류장을 떠나느라 아저씨는 여간 바빠 보이는 게 아니었다. 그와 중에 어떤 분들은 이 버스가 어디에 가냐며 연신 질문을 해대고, 탈지말 지를 망설이시는 분들도 있고,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더운 날씨에 대한 불만을 괜스레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쏟아내는 분들도 있다. 참으로 짜증 나고 힘든 직업이다 싶어, 운전기사 아저씨를 안타깝게 바로 보고 있던 찰나!

그토록 바쁘고 짜증 나는 순간에도 연신 피어오르는 아저씨의 선한 미소가 인상적으로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가끔 섞여 나오는 구수한 사투리 목소리는 그렇게나 친근하고 친절할 수가 없었다. 버스 운전기사라는 직업을 잘 모르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스트레스가 상당한 직업일 듯한데, 운전기사 아저씨는 시종일관 사람 좋은 미소와 구수하면서도 부드러운 사투리 억양을 잃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내공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새삼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슬며시 일어났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버스 운전기사라는 직업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복잡한 서울 길을 집채만 한 버스를 몰고 요리조리 운전하면서 동시에 타고 내리는 손님들의 안전과 반응을 살펴야 한다. 손님들이 요금은 제대로 내는지, 버스 노선을 제대로 알고 탔는지, 불편하거나 아픈 손님은 없는지, 위험한 행동을 하는 손님은 없는지 등등... 그뿐이 아니다. 버스 내부뿐 아니라 정류장마다 줄 서 있는 손님들이 안전하게 타는지, 못 타는 손님이 없는지 등등 버스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지속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가끔은 진상 손님들이라도 태우게 된다면, 끊임없는 질문과 불평을 들어줘야 하고,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가끔 신문지상에 실리곤 하는 만일의 폭력 사태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 거리는 일을 오랜 기간 하시면서도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기는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운전에 집중하면서도 주변의 승객들을 전체적으로 살피며 안전과 편안함의 조율을 이루어내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작업들을 오랜 기간 꾸준히 감당해 낸다는 것은 어쩌면 직업이라는 세계를 초월하여 일종의 수련과 같은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내가 타고 있는 이 버스의 운전기사 아저씨는 그러한 수련과정을 훌륭히 소화해 내고 이제는 경지에 오른 우리 사회의 또 한 명의 영웅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정성을 담아 10년간 꾸준히 하면 큰 힘이 된다.
20년을 하면 거대한 힘이 되고,
30년을 하면 역사가 된다.
- 중국 속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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