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소설
나에게는 한 가지 습관이 있다. 종종 오래된 건물 사이사이 골목길을 돌아다니곤 하는데, 그 길 어딘가에 자리 잡고 시간의 무게를 버텨온 낡은 건물의 벽이나 빛바랜 담장을 만날 때면,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며 쓰다듬는 습관이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오랜 세월의 흔적과 손때가 느껴져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가끔은 세월의 풍파를 맞아 균열이 생긴 벽이나 담장 '틈' 사이로, 이름 모를 조그만 풀이나 꽃이 자라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모진 틈새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조그만 풀들을 대할 때면 애처롭고 안쓰러운 감정들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예전의 견고함이나 단단함이 사라져 버린 오래되고 빛바랜 벽과 담장들이, 부끄럽지도 않은지 태연스레 자신의 '틈'을 내어주고, 풀은 끈질기게 그 좁은 '틈새'에서 살아내는 모습을 보면 경이롭기 그지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에서 만나는 '틈'이 어디 이뿐이랴!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틈'을 만나게 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벽이나 담장 사이로 생긴 '균열'을 의미하는 '공간의 틈'도 있고, 고된 노동 사이사이 주어지는 반가운 '쉴 틈'처럼, '시간의 틈'도 있다. 그런가 하면 '빈틈'처럼 타인의 허술한 약점을 파고들 수 있는 '기회의 틈'도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극적이라고 생각되는 '틈'의 사용 예는, '숨 쉴 틈'이다. 숨 쉴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몰아치는 삶의 폭풍 속에서, 잠시라도 허락되는 '숨 쉴 틈'은 인생의 오아시스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숨을 쉬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으니, '숨 쉴 틈'이란 말은, 정말 극적인 표현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틈’은 ‘트이다(열리다, 벌어지다)’에서 유래한 순우리말 명사이다. ‘틈’은 고유어로, 예전에도 거의 같은 형태로 쓰였는데, 15세기 문헌인 『석보상절(釋譜詳節, 1447)』에도 이미 '틈'이라는 말이 등장했다고 하니, 그 역사가 깊은 우리말이다.
'틈'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신기한 단어이다. 앞서 잠시 말한 것처럼, '틈'은 ‘공간 → 시간 → 기회 → 약점’으로 의미가 확장된 단어이다. 그 유래가 공간적인 사이를 말하는 것에서 출발해, 시간의 개념을 거처, 추상적인 기회와 약점의 의미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하니, 참으로 기이한 단어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측면은 단어의 이중성이다. 문학에서는 ‘틈’이 '균열, 허점'등의 부정적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동시에 빛이 스며드는 길, 기회 등의 긍정적 의미로도 자주 사용된다.
가장 고민스러운 것은 '사람 사이의 틈'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생각될 수 있는데, 서로 사이가 나빠지고 감정의 골이 생기는 '틈'으로 생각되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사람 사이의 '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너무나 가까운 사람들의 경우, 예를 들어 부부나 연인, 또는 부모와 자식 간에는 가끔을 '틈'을 두어 나를 돌아보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적, 시간적 여백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이럴 경우 '틈'은 긍정적인 의미로도 바라볼 수 있다.
살아가다 보면, 가까운 누군가와 틈이 벌어져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부부 사이의 오해,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 친구 사이의 다툼과 같이, 크고 작은 다양한 이유로 인해 우리 사이의 틈이 벌어진다.
그런가 하면 조금의 틈도 없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누군가에게 금이 가는 경우도 있다. 자녀에 대한 과도한 감시와 보호, 부부 사이의 집착스러운 관심 등은, 서로의 '호저 공간'도 없이 너무 밀착되어 있어 깨지기 십상이다.
[호저 공간]
‘호저 공간’이라는 표현은 심리학자 존 가트맨(John Gottman)의 연구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 개념은 인간관계에서의 심리적 거리와 안전한 공간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다. 특히 갈등 상황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가시를 세우는 모습을 ‘호저(porcupine)’에 비유한 데서 비롯되었다.
벽에 붙어 있는 타일을 상상해 보면 이해가 쉽다. 타일과 타일 사이에는 일반적으로 '줄눈'이라는 것을 시공하는데, 타일과 타일 사이를 메워주면서, 타일이 서로 맞물리며 자리를 잡도록 도와준다. '줄눈'의 역할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진이나 충격과 같은 외부의 힘에도 타일이 쉽게 흔들리거나 서로 부딪치지 않게 하고, 온도 변화에 따른 미세한 팽창이나 수축에도 견딜 수 있도록 해준다. '줄눈'은 타일 간의 적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서로 금이 가거나 깨어지지 않도록 완충해 주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사람의 성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줄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정한 틈을 유지하되 결코 분리되지 않는 사이. 서로 부담스럽지 않은 공간을 가지고 있지만,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연결된 사이. 무관심한 듯 보이지만, 서로 간의 진동, 즉 아픔이나 고통을 같이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사이를 만드는 완충제이자 연결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줄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스스로가 인생의 경험을 통해 성장하며 찾아나가야 한다. 그것은 '적정한 관심과 배려' 일 수도 있고, 서로에 대한 '경청이나 기다림의 인내'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