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라는 이름의 소설
밤새 비가 온 뒤라 그런지 무척이나 상쾌한 공기가 나의 얼굴 가를 매만지는 아침이었다. 비교적 가벼운 걸음으로 회사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한 여자아이와 엄마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여자아이는 내 편에서 보면 등을 지고 있었고, 엄마는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아이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별것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려 하는데, 갑자기 엄마는 여자아이와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휙 뒤돌아서 더니 성큼성큼 걸어서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의 파편들이 후벼 들었고, 나의 입속에는 모래를 한 움큼 집어먹은 듯 거칠고 씁쓸한 메마름이 가득 차 버렸다.
젊은 엄마가 아이에 대한 순간의 짜증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를 버리듯 뒤로하고 떠나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에, 출근길 가벼운 나의 마음은 온통 비에 젖은 듯 무거워졌다.
난 우두커니 엄마만 바라보고 있는 여자아이의 표정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 바라보기는커녕 그 아이의 절망적인 표정이 상상되어 맘이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눈 속에 아니 마음속에 비취질 엄마의 뒷모습은 과연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아마도 그 어린 가슴속에는 세상이 무너지듯,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따스한 신뢰가 얼음장 같은 증오와 냉랭함으로 남으리라.
짧은 순간 나의 머릿속에 온갖 인류애와 애처로움이 발휘되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
영원히 떠나 버릴 것 같았던 엄마는, 갑자기 휙 다시 아이를 향해 돌아서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에 난 아이의 엄마가 뒤늦은 후회를 한 것인가 하고, 엄마의 얼굴을 조심스레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표정에 짜증과 후회가 가득하리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엄마의 얼굴에는 갑작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것도 뭔가 따스하고 결연한 미소였다!
난 상황을 파악할 수 없어 잠시 혼돈스러웠지만, 이내 내 마음속에는 안도의 한숨과 인류애의 회복이 찾아오며 나의 씁쓸했던 입가에는 달금한 미소가 띄워졌다. 엄마는 손을 번쩍 들더니, 아이를 향해 결연하게 외쳤다.
"자~ 출발 준비!"
아이와 엄마는 곧 있을 체육대회를 위한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이내 쏜살같이 달려가 엄마의 품에 쏙 안기고 말았다.
나의 머쓱함은 어찌할 수 없었지만, 이른 아침, 인류에 대한 나의 쓸데없는 실망감과 슬픔은 아이의 달리기와 함께 봄날의 시원한 바람처럼 날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