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슴을 닮은 섬

소록도(小鹿島) 이야기

by hesed by


# 소록도, 우연한 만남


사실 내 인생에 이곳을 방문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늘 누군가의 글이나 사진 속에서 어렴풋이 상상했던 곳. 고통스러운 아픔의 역사가 담겨 있지만, 평범한 이들에게는 그 아픔을 좀처럼 상상하기조차 힘든 곳. 내게 소록도는 그런 섬이었다.


그리고 어느 십일월의 첫날, 나는 우연찮게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여수와 고흥을 홀로 여행하며 어디를 갈까 지도를 들여다보던 중에 우연히 눈에 띈 것이 '소록도'였다. 아~ 소록도가 고흥에 있었구나. 사실 나는 소록도의 정확한 위치조차 잘 알지 못했다. 단지 한센인들이 모여사는 곳, 일제 강점기에 아픔의 역사가 있는 곳이라는 정도의 두리뭉실한 지식만이 내겐 전부였다. 그리고 소록도라는 이름이 '작은 사슴'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인터넷을 검색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다소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나는 차를 몰아 작은 사슴을 닮은 '소록도'로 향하고 있었다. 소록도로 향하는 길 내내 눈부신 윤슬이 잔잔히 일렁이는 고흥의 바다는 너무나도 아름다웠지만, 왠지 소록도에 다가갈수록 무언가 알 수 없는 긴장이 나의 마음을 조여 오고 있었다.

KakaoTalk_20251111_221320574.jpg [고흥 섬과 바다]


# 소록도, 희망의 섬으로 변모하다


육지인 고흥반도에서 소록도로 넘어가려면 '소록대교'를 건너야 한다. 거칠고 험악해 보이는 남해바다 여울목 위로 뻗어있는 소록대교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다리인데, 2009년에 개통되었다고 한다. 그전에는 소록도는 해상으로만 통행할 수 있었던 섬이었으나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어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곳이 된 것이다.


그런데 소록도의 첫인상은 다소 의외였다. 슬픔과 고통의 역사 때문인지 다소 쓸쓸한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려보니 꽤나 많은 관광객들이 활기차게 걸어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안내자료를 찾아보니 2009년 소록대교가 개통된 이후에는 박물관과 중앙공원 등을 단장하여 '역사 여행지'로서 활용되며 '치유와 희망'의 섬으로 거듭나고 있었던 것이다.


마냥 쓸쓸하고 외로운 섬을 상상했던 나는 다소 머쓱했지만, 이내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는 데크길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와 소록대교의 근사한 풍경에 매료되어 나도 한 명의 관광객이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섬을 다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는 이 아름다운 풍경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지만...


image.png?type=w1
image.png?type=w1
[소록대교 / 소록도 바닷가 데크 진입로]


# 소록도의 역사


바닷가 데크길을 따라 들어오면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을 먼저 만나게 된다. 국립소록도병원이 개원 100주년을 맞아 2016년 '한센병박물관'을 개관했다고 한다. 소록도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면 1916년 일제강점기에 '소록도 자혜 의원'의 개원으로 그 역사가 시작되었으니, 100년을 훌쩍 넘긴 세월을 견뎌낸 곳이다. 당시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로 격리 수용하는 곳이었고, 치료보다는 강제 노역이나 인권 탄압이 자행된 아픔의 역사를 지닌 곳이었다. 해방 이후에도 고통의 역사는 이어졌으나, 현재는 한센병을 극복한 주민들과 함께 치유와 희망의 섬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국립소록도 병원은 병사와 병동으로 구분되어 있다. 병사는 중앙리, 녹생리, 신생리, 새마을, 동생리, 남생리, 구북리의 7개 마을이 있는데 입원과 동시에 병사를 배정받으며 병사에서 치료가 힘든 질환을 가진 한센인은 병원 본관에 마련된 병동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한센병박물관-1.jpg
한센병박물관-2.jpg
[국립 소록도병원 한센병 박물관]


# 수탄장 (愁嘆場), 근심과 탄식의 장소


소록도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어지는 바닷가 데크길에 접어들라치면 "수탄장"이라는 투명 표지판이 우두커니 서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데, 표지판이 서있는 장소가 과거에는 직원지대와 병사지대를 구분하는 경계였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감염을 우려하여 환자 자녀들을 직원지대에 있는 보육소에서 생활하게 하였으며 병사지대의 부모와는 이 경계지역 도로에서 한 달에 한 번 면회를 허용하였다고 하는데, 부모와 자녀가 도로 양옆으로 갈러선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혈육을 만나야 했던 이 장소를 환자들은 '근심할 '수(愁)'와 '탄식할 '탄(嘆)'을 써서 근심하고 탄식하는 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愁嘆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평범해 보이는 이곳이 수많은 부모와 자식들에게 헤어 나올 수 없는 아픔을 가져다준 비극의 장소였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KakaoTalk_20251111_170952899_23.jpg



# 몰라 3년, 알아 3년, 썩어 3년


'몰라 3년, 알아 3년, 썩어 3년'은 예전 한센병 환자들이 치료 시기를 놓쳐 고통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병에 대한 인식이 없는 잠복기 3년, 병을 알면서도 치료할 방법이 없어 망설이다 치료를 시도해 보던 시기 3년, 그리고 결국 병이 악화되어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 3년을 의미한다고 한다. 지금이야 의술이 발달하여 완치가 가능하다지만, 예전에는 그야말로 사형선고를 받은 것처럼 처참한 심정으로 병의 아픔과 사회적인 차별까지 견뎌내야 했으니 그 고통이야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리라.



# 부부가 되려면 자녀를 포기하라.


'한센병 박물관'을 둘러보던 중 다소 충격적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 소록도에서는 남녀가 부부가 되기 위해서 정관수술을 받도록 하였는데, 이것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절차라고 하여 가정 수술이라고 하였다."


남녀가 만나 결혼을 통해 부부가 되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 자녀를 갖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행복이요 가치일진대, 예전에는 한센병이 유전이 된다는 오해로 인하여 자녀를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빼앗긴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한센병은 나균이라는 세균에 의해 감염으로 전파되는 병이지 결코 유전병은 아니다. 그리고 전염력도 낮을뿐더러 전 세계 인구의 95%는 한센 병균에 대한 자연 면역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한센인들도 최근에는 의술이 좋아져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완치될 수 있으며 더 이상 타인에게 전염시키지 않을 수도 있다.


서로 사랑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자녀를 낳고 온전한 가족을 이루고 싶은 마음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과 기쁨마저 제한돼 왔던 삶, 한센인들에게는 그것이 바로 또 다른 감옥이요 고통이었을 것이다.



# 문 씨, 한 씨


"문 씨"와 "한 씨"는 과거 한센병 환자들을 비하하거나 다르게 부르던 멸칭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문 씨"는 과거 한센병 환자를 비하하던 말인 '문둥이'에서 유래하여, 소록도 등지에서는 환자들을 조금 높여 부르는 표현으로 '문 씨'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한센병의 원인균을 발견한 노르웨이 의사 이름인 '한센(Hansen)'의 이름을 따서 '한 씨'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표현들은 한센병이라는 질병 자체가 사회적 낙인과 차별의 대상이었던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용어들인데, 현재는 이러한 차별적 언어 대신 '한센인'이라는 공식적이고 존중하는 표현을 사용하며, 한센병은 의학적으로 완치가 가능한 감염병이다.



# 무카이 (むかい) 배


'무카이'는 맞은편', '반대편'이라는 뜻으로 '향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일본어이다. 과거에 한센병 환자들이 소록도 병원으로 갈 때 이용했던 배로 선착장에서 연기 등으로 신호를 보내면 소록도에서 원생을 태우러 배가 나갔다고 한다. 이것을 영선 또는 일제강점기 때 쓰던 말 그대로 무카이 배라고 하였는데, 격리된 아픔의 섬 소록도로 들어가는 그야말로 '슬픈 연락선'이었다.



# 내 주변의 누군가일 수도 있다


한센병 전시관 내에는 한센인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진 벽이 있다. 지난 세월 한센병으로 고통을 겪은 이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것인데, 혹시나 하는 호기심에 내가 아는 동명이인이 있는지 둘러보았다. 몇 개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는데 다소 충격적이었던 것은 나의 가족 중 한 명의 이름과 동명이인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내가 될 수도 있었다. 또는 나의 가족이나 친지가 될 수도 있었다. 단지 그들이었을 뿐이다. 평범한 일상을 앗아간 한센병. 그 누구인들 피하고 싶지 않았으랴. 우리는 늘 평범한 일상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토록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누군가의 마음을 공감하고 어디서나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어야 한다.


한센병박물관-4.png
한센병박물관-3.png


# 소록도의 겸손, 마리안느와 마가렛트 간호사 이야기


마리안느 스퇴거는 1962년 2월, 마가렛 피사렉은 1966년 10월 각각 이곳 소록도를 찾아와 한센병 환자와 그 자녀들을 위하여 헌신적인 봉사 활동으로 깊은 감동을 주었으며, 우리나라의 한센병 퇴치와 계몽에 큰 역할을 하신 분들이다.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이곳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죽어서도 소록도의 화장장에서 화장되어 이곳 소록도에 묻히고 싶다"라는 바람과는 달리, 자신들이 이제는 나이가 들어 소록도에 부담을 줄 수도 있음을 염려하여 2005년 11월 22일 편지만 남기고 20대 젊은 시절에 찾아와 평생을 몸담아 왔던 소록도를 떠났다고 한다.


박물관 한쪽 구석에는 마리안느가 쓴 붓글씨가 전시되어 있는데, '겸손'이라는 솔직하고도 담백해 보이는 두 글자가 눈길을 끈다. 문득 왜 '겸손'이라는 글자를 남겼을까 하는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이분들의 헌신적인 삶을 돌아보건대, '희생', '봉사', '사랑'과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지만 '겸손'이라는 단어는 왠지 좀 더 숙연하고 속 깊은 그분들의 마음과 신앙심을 공감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 누구인들 병에 걸리고 싶겠는가? 그 누구인들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을 대면하고 싶겠는가? 자신의 바람도 아니요 이유도 알 수 없이 찾아온 고통의 병... 성경에는 그런 나병 환자들을 직접 찾아가시고 치료하시는 예수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리고 예수의 행동에서 우리는 단순한 치유의 기적이 아닌 사랑을 느낀다. 고통과 질병으로 몸부림치는 온 인류를 향한 애끓는 사랑...


아마도 마리안느와 마가렛트는 그러한 예수의 사랑에 무릎 꿇었으리라. 자신들에게 주어진 보통의 일상과 평범한 육체가 얼마나 감사한 선물인지 그들은 깨달았고 그러한 은혜에 겸손히 엎드렸으리라. 그리고 누군가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자신들이 받은 은혜를 나누고자 낮아짐의 겸손으로 나아간 것이리라.


KakaoTalk_20251111_170952899_14.jpg
마리안느,마가렛.jpg



# 돌아오는 길


일반일들이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은 박물관과 중앙공원까지이다. 실제 한센인들이 사는 마을에는 일반인은 들어갈 수가 없고 사진 촬영도 금지이다. 그래서 나는 멀리 마을의 종탑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뭔가 묵직한 마음을 지닌 채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한센인들의 마을을 뒤로하고 걸어 나오는 바닷가 소나무길의 풍경은 들어오는 길에 바라보았던 것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비릿한 바다 내음을 품은 흰 물결 부서지는 파도는 한센인들의 아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했고, 이미 저 멀리 내려앉고 있는 황혼의 빛은 마리안과 마가렛트의 겸손을 조용히 비추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멀리 바라보이는 소록대교는 아픔과 병 속에 갇힌 고통의 일상에서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 건너가기를 평생토록 사무치게 소망했던 한센인들의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KakaoTalk_20251111_170952899_09.jpg
KakaoTalk_20251111_170952899_04.jpg



# 모든 인간은 별이다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임철우 작가 소설 중에 나오는 "모든 인간은 별이다."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아래 몇 구절 인용하여 남기며 글을 마친다.


모든 인간은 별이다.
이젠 모두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지만
그래서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고 누구 하나 기억해 내려고 조차 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건 여전히 진실이다.

한때 우리는 모두가 별이었다.

저마다 꼭 자기 몫만큼의 크기와 밝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채
해 저문 하늘녘 어디쯤엔 가에서
꼭 자기만의 별자리에서 자기만의 이름으로 빛나던
우리 모두가 누구나 다 그렇게 영롱한 별이었다.

임철우 작가 "그 섬에 가고 싶다" 중에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