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수필
산기슭으로 푸짐한 가을볕이 쏟아지고 있다. 키 큰 나무들과 함께 만드는 빗살무늬의 반짝임이 숲 안 가득 출렁인다. 교정 뒤편이 그대로 숲인 건 참 다행이다. 오늘은 탱자나무 아래가 내 마음을 묻는 장소이다. 손이 닿지 않아 주렁주렁 옹골찬 탱자에서 진노랑 향기가 흐른다.
어느 학교에 가든 마음 묻을 곳부터 물색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 어느 곳에서는 교사 뒤편 등나무 아래, 어느 학교에서는 교정 귀퉁이에 누군가 일궈놓은 채마밭. 나는 그곳을 ‘마음 보관소’라고 부른다.
오늘 내가 묻을 마음은 바위처럼 크고 묵직하다. 그래서 참 많이 아팠다.
“내 장래를 왜 선생님이 걱정하세요? 그냥 벌점 주면 되잖아요.”
똑바로 눈 치켜뜨고 말하는 아이의 항의에 그대로 말문이 막혀버렸다.
“전에 선생님은 안 그랬어요.”
무엇을 해도 아이는 이전 선생님을 들먹이면서 나를 할퀸다. 새학기가 되거나 학교가 바뀔 때면 새로 만나는 아이들이 이렇게 밀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도 아이들은 어느 순간 물과 물이 섞여 흐르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마련인데 이렇게 대놓고 싫은 기색을 보이기는 처음이다.
솔솔바람에도 흙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나뭇잎들이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내 마음에는 강풍에 휘날리는 광목천 소리가 허리 휘어지도록 소용돌이친다. 내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없는 어떤 서러움에 눈이 뜨뜻해진다. 이 나이에 아직도 마음 보관소가 필요하구나, 자괴감도 한 몫 한다.
여느 때처럼 마음보관소의 돌무지는, 낙엽은, 바람은 덩달아 안달하지 않고 웅숭깊은 눈으로 내 가슴을 쓸어준다. 덩달아 비명 지르지 않고 오래된 울림으로 내 손을 잡아준다.
어. 그래. 그랬나? 그렇지, 뭐. 됐어. 잊어버려. 내가 쏟아내는 분노와 한탄을 그저 가벼이 받아준다.
때로 여러 번 나눠 마음 보관소에 맡겨야 하는 큰 물건도 있다.
담임을 했던 아이 중에 제 마음에 안 맞으면 기절을 하는 아이가 있었다. 때로는 거짓으로 기절한 척 해서 119를 부르게도 했다. 아무데서나 소리를 내질렀고 누구에게나 대들었다. 마음의 병인 것 같아 학부형을 설득해서 치료를 받게 했다. 점심시간에는 같이 밥을 먹으면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랬더니 늘 엇나가기만 하던 아이가 날 보면 웃었다. 나보다 한 뼘이나 더 큰 아이가 먼저 다가와 어리광도 부렸다. 진심이면 다 되는구나, 그렇게 흡족했다. 그러나 아이는 잘못하여 불려오게 되자 언제 그랬냐싶게 나를 밀쳐냈다. 거짓말처럼 처음으로 돌아갔다. 언제나 뒤통수치는 생의 속임수처럼.
맡기지 못해 수시로 삐거덕거리는 마음자락도 있다. 초임시절의 아이들이다. 소명감이나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보다는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턱없는 비장감에 떨던 시절, 안정적인 교사의 길을 가라던 부모님 때문에 정작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되었다고 분별없는 원망을 많이도 했다. 그러니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지 못했다. 내 마음이 중요해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 데 서툴렀고 읽을 생각도 안 했다. 그저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면 된다고 여겼다.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려고만 들었지, 품어주고 보듬어주는데 인색했다. 주변에서 한마디만 해도 고깝고 간섭받는 느낌이었다. 결국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연연함과 조급증을 이기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던 날, 울면서 달려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제야 나는 그 아이들이 또 다른 마음자락이 되어 날 들쑤실 것임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이곳에 서면 지난 시간들이 보인다. 마음 보관소에 묻는 마음들이 어찌 묵직한 바위덩이만 있으랴. 서걱거리는 모래알갱이만 있으랴. 나 혼자 꺼내 쿡쿡, 웃게 만드는 마음 조각도 있고 눈물 나게 찬란한 마음보도 있다. 날 춤추게 하고 날 노래하게 하는 그 마음들을 꺼내본다.
교직을 떠난 지 십 수 년 만에 다시 돌아온 학교! 멀고 긴 시간을 거쳐 돌아왔다. 언제나 그리웠다. 꼭 다시 오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새로운 도전이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웠대도 그 속내는 ‘현실에 쫓겨서’가 아니던가. 나이까지 많다. 그래서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남들이 그렇게 느끼지 않게 하려고 애면글면 뛰었다.
그게 잘못 이었나보다. 나부터 의식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다. 나이에서 오는 지혜와 따뜻함, 한시적이라는 시간적 제약이 주는 절실함이야말로 내가 가진 무기가 아니던가!
떠나봤기 때문에 소중한 아이들임을 안다. 내 자식들이 어깨 아래로 날 굽어보는 나이가 되었으니 그네들 존재의 속성도 알만큼은 안다. 생의 속임수라도 말간 마음으로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연륜도 되었다. 하여 그 어느 때보다 더 한껏 내 마음을 펄럭일 수 있잖은가!
이층 복도 창으로 아이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복도에서 숲을 볼 때가 많지만 이렇게 숲에 서서 학교를 보는 것도 참 재미있다. 푸드득 살아있는 크고 작은 나무와 풀, 낙엽, 무덤, 꽃, 벌레, 새, 햇빛, 짐승, 바람, 부러진 나뭇가지, 물, 흙 알갱이까지 오순도순 숲을 이루고 있다.
저마다 모양새도, 개성도 다른 아이들이 오순도순 어우러져 향기로운 숲을 이룰 수 있도록 저들을 품어줄 것이다. 앞으로도 저들의 마음이 내게 오지 않을 때가 많을 것이다. 나 또한 저들의 마음을 다 읽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내 마음을 저들에게 꺼내 줄 것이고 저들의 마음을 훔칠 것이고 내동댕이쳐지고 찢기기도 하면서 이곳에 있을 것이다. 내 마음 주워서 곱게 꿰매주는 마음인들 없을까.
탱자나무 아래서 지금 나는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