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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오우쟁론기(공치사)

한 뼘 수필

by 한 뼘 수필

이른바 주방 오우는 쑥쑥 부인의 주방기구 가운데 다섯 벗이라.


블로거들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컴퓨터 등을 벗으로 삼았나니

쑥쑥 부인인들 홀로 어찌 벗이 없으리오.


사람살이 가장 중요한 것이 식이로되

부인은 주방 살림 돕는 것들로 다섯 벗을 삼을 새,

각각 인덕션과 칼, 수저 세트와 접시, 프라이팬 이더라.


쑥쑥 부인은 이 오우를 옆에 두고 점심, 저녁을 해결하는 바라,

아침은 부인의 눈이 안 떠져 빠짐이요,

오우는 성심을 다하여 맡은 바 소임을 다하더라.


하루는 부인이 소파에 길게 누워 팥주머니 눈에 대고 졸고 있는 바,

오우가 한 데 모여 식사의 공을 의논하더라.


프라이팬이 긴 허리를 곧게 세워 이르되


제우는 들으라.

나는 뭐든지 들들 볶아 맛난 반찬 만드는 데 없어서 안 될 존재라.

그뿐이랴, 감자 숭덩숭덩 썰어 넣고 갈치 몇 토막 얹어 자글자글 끓여내는 것도

이내 몸, 여름 입맛 돋아나는 겉절이도 내가 없으면 어디다 넣고 무치랴.

급하면 쌀도 안쳐 밥도 짓는, 이름하야 만능 프라이팬이더라.

그러니 식사 공덕 중 내 으뜸이 아니더냐.”



식칼이 푸른빛을 번득이며 나타나 씨근대며 이르되,


프라이 팬아, 프라이 팬아.

그대 아무리 마련을 잘 한들 내가 썰지 않으면 무엇이 제대로 되겠느냐.

양파를 통째로 삶을 거냐, 갈치를 대가리째 넣을 거냐.

무는 또 어찌 썰 것이며 배추, 마늘은 안 다듬고 먹을 거냐.

무든, 오이든 굵은 채, 가는 채 썩썩 썰어 그대 몸통에 넣을 거니

내 공과 내 덕이라, 네 공만 자랑 마라.”


수저 세트 가는 다리 종종 모아 쌍으로 달려들어 왈,


너희 둘의 말이 불가하다. 어리석구나.

진주가 열 그릇인들 꿰어야 보배일 것이요.

너희가 아무리 썰고, 채쳐서, 지지고 볶아도 우리 아니면

저 부인의 입으로 어찌 들어갈 것이냐.

저 멀리 산 넘고 바다 건너 어느 고을 사람들은 손으로도 먹는다더라만

저 쑥쑥 부인이 어이 그럴 것이요. 행여나 엎드려 고개 처박고 입으로 먹는다더냐.

어림없다, 양우들아. 내 아니면 두 벗이 무슨 공이라고 자랑하느뇨.



접시가 얼굴을 붉으락 푸르락 노해서 왈,


수저야. 자랑 마라. 네 아무리 잘난 체 해도 그동안 참아왔다.

매양 귀에 질리게 들었어도 내 낯가죽이 두꺼워 견딜만했느니라.

내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니 가마 떼긴 줄 아느냐.

나는 꽃이다. 저 쑥쑥 부인의 바깥 공이 나를 일러 접시꽃이라 했다.

모든 음식 내가 아니면 어디에 담아내리.

전 접시꽃, 김치 접시꽃, 과일 접시꽃 아니더냐.

내 부인의 상차림을 광채 나게 하나니, 그 공이 으뜸이라.



인덕션 크나큰 입을 벌리고 너털웃음으로 이르되


접시야, 실로 얼굴이 아깝도다.

이쁘면 다더냐? 생각 좀 하고 살자.

제우여, 그대들이 천만 가지 준비하면 뭐 하더냐.

날로만 먹을 거냐? 평생 풀떼기만 먹을 것이더냐.

프로메테우스가 왜 신의 불을 훔쳤다더냐.

내 없으면 무엇으로 익히고 완성하리.

세상 맛있는 재료가 있으면 뭐 하리.

세상 귀한 것도 내가 아니면 화중지병이라.

이러므로 음식의 공 중에서 내가 제일이라.



이때, 쑥쑥 부인이 불쑥 고개만 들고 이르되


오우의 도움으로 음식을 만드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 공이 사람의 쓰기에 있으니 어찌 오우의 공이라 하리오.


하고 팥주머니 눈에 대고 깊은 잠에 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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