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수필
냉정하게 한마디 던지고 잠에 빠진 쑥쑥 부인을 보더니 인덕션 왈,
참으로 한심한 여자로다.
동창이 훤하도록 눈을 못 떠서 허구한 날 지 눈곱으로 지 발등을 찍어대는 주제에
어이 낮에도 저리 자빠져 자는고?
더욱이나 저 부인네, 천성이 게을러서 책만 끼고 뒹굴다가 바깥 공 온다 하면
그때야 허방지방 나를 쉴 새 없이 닦달하니 허리가 작살이 날 지경이라.
내 공이 아니면 저 부부 어찌 변변한 것, 제대로 먹으리오.
사람이면 고마운 줄을 알아야지, 언제는 신통방통 잘한다고 이뻐 죽더니
어제는 뭔 바람에 이내 몸을 닦다가 저도 모르게 날 건드려놓고
깜짝 놀라하는 말, 아이고, 손대면 톡하니 켜져 버리니
얌전한 고양이 인덕션에 먼저 올라갔다가 고마 타 죽어버리겠네, 그러질 않나.
프라이팬 이어 가로대,
그대 말이 가하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내 그대와 늘 같이 하니 그 심정 어이 모르리.
쑥쑥 부인 잘 크라고 쑥쑥이라더니, 게을러 제 때 크지도 못한 지 잘못 제쳐두고
무시로 날 무겁다고 내부치질 않나, 낑낑대질 않나, 참으로 가관이로세.
하루종일 뭐 하다가 저 혼자 바빠서 불에다 올려놓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ㅁㅊㄴ 널 뛰듯 하다가 태워먹기 매양 일세.
아, 뜨거라. 놀란 나를 찬물에 집어넣고 수세미로 북북 문질러대니,
용의 검사 앞두고 등가죽 까진 조 소저도 아니고. 쓰라리고 서러워서 나는 못 살겄네.
한탄하는 프라이팬의 말, 급 끊으며 접시가 날아올 듯 나서서 이르되,
양우의 말이 가하고 가하도다. 공이 날로 꽃이라 부르면 무엇하리.
저 쑥쑥 부인 참으로 싫어하는 말이 앞 접시라.
까닭인즉, 게으른 저 여인 접시 하나 더 씻는 게 세상 싫은 일이라.
점잖은 공이 앞 접시 주시오, 하면 뒷 접시도 없으니 그냥 먹으시오, 한다.
찬장 가득한 게 우리 꽃들 아닌가.
어쩌다 공이 손수 가져가서 품위 있게 먹을라 치면
구시렁구시렁, 설거지하는 손으로 탕탕 쳐대니 허리가 남아나질 않는구나.
탄식하던 접시가 수저세트를 보더니 한마디.
쌍심지 켜고 달려들 땐 언제고 어이 이리 조용하 나뇨?
젓가락이 한숨을 푹 내쉬며 가로되,
쑥쑥 부인 공에게 시집올 때, 나 또한 숟가락과 한쌍이 되어 같이 한 세월이 길더라.
우리 수저 약한 팔다리 휘두르며 부인의 음식 섭취 힘껏 도와왔더니
이제 마음에 맞지 아니한 듯 우리 부부 한쪽에 처박아두고 난데없는 포크질이라.
숟가락 용도 따로 있고 젓가락 용도 따로 있거늘 자발 맞게 쇠스랑 포크가 웬 말인고.
저 승정원의 홍부인은 수저 다리 돌아간 것 애통하다, 울며불며 틀어진 뼈 맞춰줬소.
대장간 뜨거운 풀무질에 죽는 줄 았았다가 새 세상 봤다고 만세 삼창 요란한데
우리 신세 포크에 밀려 언제 내쳐질지 모르는구나, 오호통재라.
칼이 시퍼런 눈물지어 이르되,
나도 그대와 욕되기는 한 가지라.
내 무삼 죄로 생긴 대로 다 썰고, 딱딱한 것 치고 깨는 날 선 일만 시키더니
이제 가위라고 가랑이 쩍 벌어지는 걸 가져와서 내 일을 대신하니
그 치욕스러움을 어찌 말로 형용하리.
오우, 이렇듯 담논 하며 회포를 풀더니, 자던 부인 문득 깨서 오우 보고 왈,
오우는 내 허물을 저물도록 하느냐.
수저 세트 그중 나이 많아 부인에게 사죄하여 가로되,
젊은것들이 망령 되어 생각이 없는지라, 저희가 허물 많으나 평일 깊은 정과
저희 조고만 공을 생각하여야 용서하심이 옳을까 하나이다.
쑥쑥 부인이 답하여 왈,
내 아까 사람의 공이 으뜸이라 한 것은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역지사지라, 너희 불평을 듣자 하니 오우가 옳도다.
내, 게으른 천성에 마감형 인간이라 때가 닥쳐야 머리가 돌아가느니
이제라도 그대 벗들의 말을 새겨들을까 하노라.
다만 포크와 가위는 나와 같이 늙어가는 수저와 칼이 애틋해서 들인 것.
어이 낡았다고, 무뎌졌다고 벗을 버리리.
그러니 그대들도 허물치 말고 새로운 양우들과 잘 지내길 바라노라.
언젠가 내 다시 주방칠우쟁론기를 써서 그대들의 공을 널리 알릴 것이라.
이에 오우들, 허리 굽혀 부인에게 절하고 각자의 소임을 다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