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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번째 고객

한 뼘 수필

by 한 뼘 수필

자꾸 눈이 아프다.

계단을 내려갈 때나 돌다리를 건널 때 마음처럼 성큼성큼 이 안 된다.

뭣보다 책을 읽는 시간이 자꾸 짧아지는 게 속상하다.

한때는 하루종일도 읽었는데 갈수록 읽는 시간이 줄어든다.

어떤 날은 종일 눈이 따갑고 새큰거린다.


노안이려니 미루다가 작정하고 안과에 가서 검사를 했다.

안구건조증, 염증, 노안, 이런 말들이 들렸고 역시나 그렇구나 했다.

그래도 책을 놓을 수 없는 처지니 그 불편한 현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물었다.


그러자 의사기 내게 되물었다.


"책을 보기 시작해서 얼마쯤 지나면 그런 현상이 나타납니까?"

"삼십 분만 되면 벌써 활자가 퍼지고 뿌예지는 느낌입니다."

의사가 말했다.

"그럼 책을 삼십 분만 보세요."

병원을 나오면서 투덜대니 남편이 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되지, 뭐. 명의네."

뭘까? 뭔가 개운하지 않은 이 느낌은?

나는 그 느낌을 쥐어박았다. 지당한 말이라고!





엄마를 모시고 한동안 병원을 들락거렸다.

성주로 가서 엄마를 모시고 와서 검사를 받고 다시 모셔다 드리고 며칠 지나면 결과 보러 다시 엄마를 모시러 가고를 반복했다.

담당 내과과장은 엄마가 불편을 호소할 때마다 각종 검사를 했고 다양한 약을 처방했다.

엄마는 내가 퇴직하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병원에 다니는 걸 미안해했다.

나는 그나마 가까이 사는 내가 퇴직을 해서 시간이 되니 다행이라고 했다.


그렇게 다닌 지 몇 개월이 훌쩍 지났다.

그날도 진료를 받기 위해 내과 진료실 앞에서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예약을 하고 가도 병원 대기 시간은 길고 복잡했다.

그래도 엄마가 불편하던 증상이 호전된 것 같다고 해서 기대가 됐다. 그동안 받은 여러 검사에서 이상증세가 발견되지 않아서 더 그랬다. 이제 일주일 전에 받은 그 검사만 무사하면 엄마 사는 곳의 내과를 다녀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지루했지만 좋은 기분으로 기다렸다.





마침내 엄마 순서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는 순간 의사가 짝짝짝, 박수를 쳤다.

내가 들뜬 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울 엄마 많이 호전되셨죠? 맞죠? 그래서 손뼉 치시는 거죠?"

의사가 여전히 웃음을 물고 말했다.

"아, 백 번째 고객이십니다. 그래서 박수를 쳤습니다."


병원에서 듣는 백 번째 고객!


내가 인상을 구기자 그제야 의사가 진료차트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웃음을 거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주저하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날 우리는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나쁜 결과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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