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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아래서

한 뼘 수필

by 한 뼘 수필
성문 앞 우물가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꾸었네



슈베르트의 '보리수'는 다들 잘 아는 노래 일 것이다.

빌헬름 뮐러의 시집 '겨울 나그네'에 수록된 시 24편 중 하나로 슈베르트가 작곡했다.


나는 지난 일요일 보리수나무 아래서 단꿈을 꾸는 대신 한숨을 쉬고 있었다.

보리수를 따야 해서 네댓 시쯤 엄마 집에 갔다.


"열매를 얼마나 많이 달고 있는지 가지가 축축 늘어졌어. 이래 이쁜 보리수를 잔뜩 달고 있는데 수확도 안 한다고 고게 얼마나 원망을 할 거야. 그래서 손 닿는 데는 좀 땄는데...."


정말 예뻤다. 곧 터질 듯 빨간 구슬이 아그데아그데 열려 있다.

남편과 나는 나무 아래 바구니를 갖다 놓고 그 여린 열매를 조심스럽게 따기 시작했다.

마침 이틀째 내리던 비가 그쳤고 햇살도 부시지 않아서 고개를 한껏 쳐들고 맘껏 봤다.


그때였다. 허리가 아파서 힘든 엄마가 뭐라고 말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남편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냥 알아서 할 건데 또 참견하시려나 봐."


맞다. 엄마는 모든 것을 탐색하고 진단하고 참견한다. 그냥 믿고 가만히 기다리면 오죽 좋겠는가.

이 여사, 기어이 꽃밭으로 올라온다.

"무르기 쉬우니까 따면서 아예 꼭지를 떼라."

"엄마, 우리가 알아서 딸 게."

"아니, 이서방. 꼭지 따라니까."

"어무이, 허리 아프신데 그만 들어 가이소.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아니, 지금 바로 꼭지 따. 나중에 다시 손대면 물러서 안 돼."


내가 포기하고 알았다고 하는 순간 남편이 휙 꽃밭을 나가버렸다.


"어무이, 저는 잔소리 들으면서는 안 할랍니다."


세상에! 엄마는 너무 당황했다.

얼마나 점잖고 속 깊고 잘 챙겨주던 맏사위던가. 이럴 리가 없는데.

그런 눈으로 엄마가 날 쳐다봤다.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계속 보리수만 땄다.


어른들인데 각자 알아서 감정 정리하겠지, 뭐. 하루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보리수가 얼마나 많이 열려 있는지 한 주먹씩 땄다.


엄마가 계속 중얼거렸다.

"높은 데는 이 서방 와야 하는데. 이 서방 금방 오겠지?"


계속 중얼거리는 엄마가 좀 웃겨서 내가 말했다.

"이 서방 안 올 걸. 그니까 왜 입을 떼셔? 가만 놔두면 알아서 잘하는데."


엄마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묻는다.

"이 서방 갱년기가?"

"아, 나이가 얼만데 아직도 갱년기야."





남편 없어도 우리는 보리수를 다 땄다. 워낙 가지가 낭창낭창 늘어져서 잡아당기면 아래까지 쑥 내려와 줬다. 남편은 뒤란으로 앞뜰로 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댔다.

엄마가 딴 것과 내가 딴 것은 확실히 달랐다. 엄마 것은 티 하나 없다.


엄마가 왔다리갔다리 하는 사위 들을까 봐 은밀하게 그러나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컴퓨터에 날마다 뭐 쓴다며. 거기다 써라. 장모가 잔소리 좀 했다고 삐져서 휙 나가버린 이 서방 이야기."


내가 웃으면서 답했다.

"엄마, 내가 블로그에 흉을 봐도 늙은 사위에게 잔소리하는 엄마 흉을 보지, 내 남편 흉보겠어?"


흐흐, 엄마가 웃었다. 그리고 사위를 향해 소리쳤다.

"이 서방, 냉장고에 달고 시원한 참외 있네. 그것 먹게."


그 순간 깨달았다.

엄마는 키가 안 닿아서 우리한테 보리수를 따라고 한 게 아님을. 참견하러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엄마는 꽃밭에 서 있는 보리수, 그 아래서 딸이랑 사위랑 오손도손 보리수 따는 단꿈을 꾸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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