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뺨 수필
어릴 때, 엄마는 소고기를 사 오는 날이면 전골이나 불고기 대신 오래 두고 늘려 먹을 수 있는 장조림을 만들곤 했다. 소고기 토막에 간장과 물엿과 물을 찰박하게 부어 불에 올리면 부글부글 거품을 내며 끓어올랐다. 한참 고기가 무를 때까지 국물을 졸이다가 통마늘과 꽈리고추를 넣었다. 그런 날이면 장조림 냄새가 부엌 안에 진동을 했다.
벌써 입에는 군침이 가득 도는데 매정하게도 엄마는 그걸 손으로 잘게 찢어서 조금씩 상에 내놨다. 혼자 먹어도 모자랄 만큼의 양이라 늘 아쉬웠지만, 고기를 건져내고 남은 간장 국물은 또 얼마나 맛있었던지. 더운밥에 넣어 썩썩 비벼먹으면 금세 한 그릇이 뚝딱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이야 맘만 먹으면 먹을 수 있는 소고기 장조림이 아직도 내겐 맛나고 별난 음식이다.
언젠가 시댁에서 저녁을 짓다가 셋째 형님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자기도 소고기에 얽힌 아련한 감정이 있다며 이야기를 들려줬다.
"동서, 내가 소고깃국을 안 먹잖아. 왜 그런 줄 아나? 어릴 때 소고기 국을 끓이면 엄마가 아버지랑 오빠, 나, 남동생들까지 먼저 떠준단 말이야. 그럼 어린 마음에도 울 엄마 먹을 게 없을 것 같아서 일부러 소고깃국이 싫다고 밀쳐버리곤 했어. 그런데 내가 몇 번 그러고 나니까 엄마는 정말 내가 소고깃국을 싫어하는 줄 알고 아예 안 주는 거야. 그게 또 서럽고 야속해서 난 소고깃국을 싫어한다고 주문을 외웠더니 진짜 소고기 국이 싫어졌어. 근데 더 웃기는 건 우리 엄마가, 아무튼 기집애 하나 있는 게 얼마나 별스러우면 소고깃국을 안 먹는지 몰라, 그러면서 쥐어박기까지 했다니까."
소고기 할인 행사 문자가 날아왔다.
일전에는 대형마트에서 한우 반값 세일을 진행한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그런 행사의 저변에 깔린 소값 안정과 소비확산, 축산 농가 등을 생각하니 조금 우울하다.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던 법정 스님의 '먹어서 죽는다'라는 글도 떠오른다. 잘못 먹어서 죽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 글에는 환경운동가 제레미 리프킨의 '쇠고기를 넘어서'라는 책도 언급되어 있다.
건강을 위해서든, 생태계 보전을 위해서든 또한 굶주린 사람이나 동물학대 등을 생각해서라도 고기 중심의 식생활 습관을 극복해야 한다는 그런 내용이 담겨 있다.
젊은 한 때, '소'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쓰기 위해 축산 농가에 취재를 다니며 보았던 어미소들이 아련하다. 외갓집에서 보았던 순한 소의 큰 눈망울도 생각난다. 갓 태어난 송아지를 어깨에 무동 태워줬다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러워했던 기억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고기를 아예 끊지는 못할 것 같다.
뭐든 지나침을 경계하면 되는 거 아닐까?
장조림에 또는 소고깃국에 담긴 우리의 추억도 마음을 건강하게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