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수필
며칠 전 대학 동창들과 만났다. 참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물론 그동안 나와 한 친구의 혼사가 있어서 잠깐 얼굴은 봤지만 이렇게 정식으로 마주 앉아
정담을 나눈 것은 정말 한참만의 일이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와 이러저러한 일들에 묶여 우리는 그 일들을 같이 나누지 못했다.
그동안 있었던 각자의 희로애락들을 쏟아냈다.
우리가 공통으로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소식들도 나눴다.
작년에 퇴직한 나와 친구는 퇴직 후의 일상을 이야기하다가 똑같이 외쳤다.
그래, 우린 일 안 하면 죽는 줄 알았잖아. 그런데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네.
우리 앞에 놓인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지? 우리의 화두였다.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우리 앞의 시간들이 너무 널널해서 감당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다들 잘 살고 있다.
거창한 일을 하면서?
아니다.
그저 소소한 일상을 성실하게 살고 있다.
재미있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소설이 문득 떠올랐다.
그 이야기에 나오는 두 번째 에피소드는 이렇다.
구두 수선공 세몬의 집에 건강하고 신분 높은 자가 와서 일 년을 신어도 멀쩡한 장화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다. 구두 수선을 배우던 남자(천사 미하일)는 구두 대신 슬리퍼를 만들었고 세몬은 당황한다. 그때, 높은 사람의 하인이 와서 주인의 죽음을 전하면서 죽은 자에게 신기는 슬리퍼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앞 날을 알 수 있는 지혜의 힘이 우리에겐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후회 없는 정답으로 가는 길인지 알 수 없다.
세계적인 걸작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카레니나' 등을 쓴 대작가에 대해 언급을 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다만 농민들의 소박한 삶을 살고자 했다는 것, 재산과 저작권을 포기하려다 가족들과 갈등이 생겼고 집을 나가 작은 역에서 폐렴으로 생을 마쳤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바위처럼 묵직하게, 꽃처럼 화사하게.
어느 것이 인생의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내 마음은 이 아이의 답지에 만점을 주고 싶다.
빵점을 주면서 빵처럼 둥글게 웃었다.
앞으로도 다른 이에게 따뜻한 웃음을 주는 이쁜 인생이 펼쳐지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