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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뼘 수필 Aug 15. 2023

보이스피싱

한 뼘 수필

내 계좌에서 653,000원이 결제됐다는 메시지가 왔다. 

어? 할 것도 없이 어, 보이스피싱이네, 하고 바로 메시지를 삭제했다. 

그런데 잠시 후 다른 번호로 똑같은 문자가 연거푸 두 개가 더 왔다.     

그건 좀 신기했다. 내가 바로 삭제한 건 어떻게 알고 다른 번호로 또 보냈지?     

내 말에 남편이 문자 내용을 확인한다고 내 핸드폰을 가져가 들여다본다. 나는 남편의 두툼  한 손가락이 삭제를 누른다는 게 링크를 잘못 눌러서 정말 낭패를 볼까 봐 갑자기 겁이 났다. 그래서 다급하게 외쳤다.     


 "아, 줘. 내가 할게."     


내 말에 뭐지? 하는 표정으로 남편이 폰을 건넨다.     

 

한 시간쯤 지나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010으로 시작하니 의심 없이 받았다. 전화의 목소리는 여자였다. 내 이름을 확인한 뒤 소비자 보호원이라고 한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그냥 툭, 끊어버린다. 그러고 보니 말투가 좀 어눌한 것 같았다. 요즘은 보이스피싱도 정말 진화되었다고 하는데 어째 좀 어리바리해서 웃고 말았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나는 점심시간에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핸드폰에서 웬 남자의 세련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남경찰서 사이버 수사대 김 00 경사입니다.”      


그가 차분한 어조로 00 은행에 내 명의의 계좌가 있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그 명의 계좌로 대출을 받은 게 맞느냐고 재차 물었다. 나는 대출을 받은 적이 없어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때부터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명의자가 모르는 대출 사례가 00 은행에서 여러 건 발생해서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은행 직원을 바꿔줄 테니 확인하라고 했다. 그리고 누군가 또 다른 남자가 내 이름을 묻더니 정확한 확인을 하기 위한 절차이니 계좌번호를 부르라고 했다. 난 계좌번호를 외우지 못했기 때문에, 모른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은행 직원이 다시 강남경찰서 김 경사를 바꿔주며 협조를 잘하라고 당부했다. 나는 몇 개 되지도 않는 계좌번호를 외우지 못하는 내가 좀 창피해서 고분고분 그러마,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누가 내 명의로 대출받아서 다 써버린 거 아닐까, 꼼짝없이 내가 다 갚아야 하는 거 아닌가, 너무 걱정됐다.     

     

그런 와중에 점심 급식을 마친 아이들이 나한테 와서 외출증을 끊어 달라느니, 뭐니 하면서 떠들어댔다.      

김 경사는 주변이 너무 시끄럽다고 좀 조용한 데 가서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 내가 알겠다며 일어나자 옆자리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의 지시대로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되는 도서관으로 갔다. 그가 다시 계좌번호를 부르라고 말했다.      

 나는 외우지 못한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 후, 퇴근하면 집에 가서 계좌를 확인해 줄 테니 다시 전화를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가 사안의 심각성을 모르냐고 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어떡하지요? 근데 어쨌든 계좌번호는 몰라도 난 대출한 적이 없으니 일단 그렇게 알고 수사해 주세요.”         

그런 말을 주절주절하고 있는데 옆자리 선생님이 도서관으로 오는 게 보였다. 그 순간, 전광석화처럼 어떤 깨달음이 왔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여전히 김 경사의 말을 경청하면서 메모지에 ‘강남경찰서 사이버수사대 김 00 경사 확인 요망’이라고 써서 선생님께 보여줬다. 선생님이 바로 강남경찰서로 전화를 했다. 그 순간에도 나는 김 경사를 의심하는 게 미안해서 공손하게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소리쳤다.     

     

“쌤, 전화 끊어요, 빨리. 보이스피싱이래요.”     

와우! 얼른 끊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쌤, 사이버 수사대 같은 건 없대요. 어쩐지 아까 옆에서 쌤 통화하는 거 들으니 뭔가 이상해서 제가 따라왔거든요.”      

     

계좌번호를 몰라서 당하지 않았을까. 계좌번호를 알고 있어서 말해줬으면 정말 당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실제로 그런 전화를 받으니 나도 모르게 그런 상황 속으로 스르르 빠져들게 되었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좀 창피했던 경험이다.          


사회, 경제, 기후, 사건 등 안개 낀 듯 답답할 때가 많다. 모두의 평안과 안녕을 빌어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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