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수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추가 지난 지 한참이지만 그늘진 곳이 없는 장소라 쏟아지는 햇살을 피할 길이 없다. 시원한 나무 그늘에 있다가 문이 열리면 들어가고 싶었지만 북적대는 발걸음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자리를 떴다가는 자칫 순서를 빼앗길지도 모른다. 이 지역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라 분양 사무소 앞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그래도 이 더위에 좀 빨리 열어주면 좋으련만 문은 견고하게 닫혀 있다. 그 앞에서 지키고 서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대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는지 문이 열렸다. 그런데 줄을 서 있는 쪽의 문이 아니라 그 옆의 문이 열렸다. 줄 선 사람들은 당황해서 항의를 했고 그 와중에 재빠르게 줄을 옮기는 사람들 때문에 그곳은 한순간에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직원이 뭐라고 안내를 하는 것 같은데 웅성거림 속에서 그 말이 묻혀버렸다. 앞에 선 사람들이 뒤로 밀리고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먼저 입구 쪽으로 내달았다. 직원들이 여럿이 나서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주최 측의 미숙한 일 처리가 일차적 문제였지만 순식간에 실종된 질서 의식에 쓴웃음이 나왔다.
우리 큰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문제집에 이런 서술형 문제가 있었다.
“약수터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답은 “차례로 줄을 서야 한다.” 또는 "질서 지키기"이다. 그런데 아이는 이렇게 답을 썼다.
“약수터의 물이 굉장히 많아야 한다.”
그날 우리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질서 의식이 아니라 굉장히 많은 문이었을까?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얼굴이 붉어지고 있다. 며칠 전에는 급한 마음에 인적이 드물다고 무단횡단 하려다가 작은 아이가 내 팔을 잡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 분명 무안했는데 그 뒤로도 아무도 없으면 무단횡단해 버릴까?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또 소음방지 슬리퍼를 신으라는 남편의 잔소리를 지겨워하기도 한다.
왜일까?
우유 팩은 뭐 하러 씻어서 내놔? 그냥 내놓으면 되지.
줄 서지 마. 아무 데나 있다가 막 치고 들어가는 거지, 뭐.
헌 이불 같은 거, 의류 수거함에 슬쩍 넣어놔. 이름 쓴 것도 아닌데 누가 알아?
대놓고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을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봤다. 다들 반듯하고 기본적인 양심의 잣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생각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게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