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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뼘 수필 Jan 24. 2024

그 남자들
(집에 남은 자, 역사에 남은 자!)

따뜻한, 소소한


1. 다낭으로 떠나던 날 아침(출발 편) 


불현듯 떨리기 시작했다. 

여행을 준비하던 나날들이 무심했다. 

엄마의 걱정도 성가시기만 했다.  

그런데 더럭 겁이 난 것이다. 

여자 둘만의 자유여행, 잘하는 걸까? 

남편에게 같이 가지 않는다고 성질을 냈다.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묻는다. 

"비행기 사고 나면 어쩌지?" 

어이가 없는지 남편이 웃었다. 

그리고 군고구마와 과일 도시락을 줬다. 

떨리고 불안한데 맛있다. 



2. 다낭에서 호이안까지 그랩 택시로 이동하다.(교통편)











푸른 하늘에 구름이 섬처럼, 파도처럼 끝없이 펼쳐진다. 

불안이라고? 그게 뭐였더라?ㅎㅎ 

변덕스러운 내 마음도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엄마가 보내준 성경 말씀도, 기도문도 평화를 가져다줬다. 

그러나 베트남 거리는 평화롭지 않았다. 

그야말로 무질서, 혼잡스럽다. 

신호등도 별로 없지만 있어도 지키지 않는다. 

수많은 오토바이와 택시가 마구 뒤엉켜 달린다. 

쉴 새 없이 울리는 경적 사이를 요령껏 걷고 건너야 한다. 


그나마 호이안은 좀 낫다. 

후에 번화가를 걸을 때는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패키지로 왔다면 이런 길을 걷지 않았을 것이다. 

형님은 지도를 보며 걷느라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말했다. 

"내가 다치면 형님이 조치를 취하겠지만 형님이 다치면 난 아무것도 못해요. 

그러니 형님, 제발 조심하셔요." 

하하, 형님이 웃었다. 


3. 아, 정말 좋다~ 1월의 베트남! (날씨 편)


다낭의 1월은 덥지 않지만 우기라고 했다. 

그래서 우산과 우비를 준비했다. 

색색의 일회용 우비 4벌을 펼쳐보지도 못했다. 

5일 동안 날씨는 선선하고 쾌청했다. 

딱 한 번, 10여 분 동안 소나기가 왔다. 

비를 좋아하는 형님은 당장 나갔고 

비 구경을 좋아하는 나는 호텔에 남았다. 


바다와 강을 끼고 있는 호이안은 시원했고 

후에 성과 왕릉은 햇볕에 노출됐어도 바람이 많아서 또 시원했다.  

여름에 베트남에 왔을 때는 

5분도 걷지 못하고 카페만 찾았다고 형님이 말한다. 

카페에 들앉아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돌아다닐 수 있는 1월의 베트남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계속 실실거렸다. 



4.  그 남자들 이야기 - 집에 남은 자와 역사에 남은 자 (역사 편)


형님은 핸드폰을 쉬지 않고 본다. 

지도도 봐야 하고 각종 예약, 주문도 해야 하니 당연하다. 

그런데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닌가 보다. 

아주버님과 톡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사진마다 아주버님이 감상평을 달아 보내셨다. 

평소에도 자상하지만 이렇게나 낭만적인 줄 몰랐다. 내가 감탄하니까 톡을 안 보내냐고 묻는다. 


"집에 남은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놀기만 해라."

남편이 그리 말해서 나는 그리한다. 

"비행기 타면 이모티콘 하나만 보내라."

그래서 그리했다. 자기도 마찬가지고. 


형님이 사진과 톡을 보내라고 권한다. 

흠, 그럼 나도 그래볼까? 

8시에 사진과 톡을 보냈다. 

답은커녕 읽지도 않는다. 

대구 시간은 10시쯤 됐으니 자나 보다. 

그런데 아침에도 안 읽는다. 

헐, 대체 뭔 일이지? 

보이스 톡을 해도 안 받는다. 

그러니 생각을 해보자. 

안 보냈으면 이런 걱정 안 해도 되는 거지. 

여행 간 사람이 집에 남은 사람 걱정하는 게 말이 되나? 


잠시 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핸드폰이 이상하단다.  

폰이 안 울려서 이제야 확인했단다. 

뭐, 이런 남자, 저런 남자 있는 거지.


나는 학교 다닐 때 역사와 세계사를 좋아했다. 

형님도 역사에 관심이 많다. 

베트남 역사도 공부를 많이 했는지 자분자분 설명을 잘해준다. 

귀에 쏙쏙 들어온다. 

물론 다 기억할지는 미지수다. 


 "전에 패키지로 왔을 때는 후다닥 봐서 너무 아쉬웠어요." 

"그럼 이번에는 지도 보면서 남김없이 구석구석 봐요." 

"동서 다리 안 아파요? 괜찮겠어요?"

"그럼요, 걷는 건 자신 있어요. 형님, 여긴 뜨득 황릉이죠?"


"네, 뜨득 황제가 여기서 국정 업무도 봤으니 궁전 역할도 했죠."

"그럼 살아서 자기 능을 세운 셈이네요?"

"그렇죠. 카이딘 왕도 그렇고. 그래서 원성이 자자했어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애먼 백성들만 죽어나가는군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카이딘 황릉은 프랑스에서 

직접 수입해서 만들었대요. 화려하고 정교하죠?"

 "네, 근데 뾰족한 모양의 저 탑은 뭔가요?"

"황제의 위엄을 보여주는 오벨리스크예요. 

저게 돌기둥 하나를 깎아 만든 거래요."

"색유리와 도자기 조각을 많이 사용했네요." 


"후에 성은 베트남 마지막 왕조 응우옌의 궁터예요. 해자로 둘러싸였죠?"

"아, 성을 둘러싼 하천을 해자라고 하는군요." 

"네, 몇 겹으로 둘러쌌어요."

"자유여행이라 그런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별로 안 보이네요."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였잖아요. 

그래서 프랑스 인들이 향수에 젖듯 여길 많이 찾는대요." 

"체, 결국 세계사는 약육강식의 역사네요." 


재잘재잘, 우리의 역사 수다는 계속되었다. 

너무 길어서 다 옮기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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