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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뼘 수필 May 13. 2024

성실하게 성장의 의무를 다하듯

따뜻한, 소소한

김혜진 소설 '경청'에는 길고양이 '순무'가 등장한다. 

그 소설에 나오는 한 구절이 마음에 훅, 들어왔다. 


"성실하게 성장의 의무를 다하듯 순무는 

고통 속에서도 잘 자란다."


그 대목에서 한 아이가 떠올랐다. 

십수 년 전, 중2 담임을 할 때 우리 반 아이다.

엄마는 안 계시고 아빠와 오빠랑 살았다. 


무기력한 아버지와 경제적 독립이 안 된 오빠랑 단칸방에서 살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살림까지 하느라 얼마나 힘들까. 

자연 그 아이에게 마음이 갔다. 엄마 없이 어쩌나. 

엄마 있는 우리 아들들도 저래 허술한데. 


그런데 아이는 정말 무럭무럭 자랐다. 

자고 나면 크는 것 같았다. 신기할 지경이었다.

잘 먹지도 못할 텐데, 누가 챙겨주지도 않을 텐데 

아이의 성장은 그야말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성실하게 성장의 의무를 다하듯'


그러니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이러저러하게 감면되는 것들을 챙겨주었다.

자연 아이의 아빠와 통화하는 일이 생겼다. 

아이의 학교생활도 궁금하면 언제라도 상담하라고도 말했다.


아이는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림만 그렸다. 

반 아이들과도 딱히 활발하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아이에게 농담도 걸고 말도 시키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 학부형의 전화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특별한 용무가 없는데도 전화를 해서 주저리주저리 했다.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거였다.

학교에서 허락되는 감면과 혜택을 챙겨주긴 했지만 

그 외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잘 들어주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경제력도 없이 혼자서 아이들을 건사해야 하는 

가장의 입장이 안쓰러웠다.

그러나 어느덧 그의 하소연은 도를 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도, 퇴근 후에도 전화가 왔다. 

분초를 다툴 만큼 바쁜데, 노상 동동거리며 사는 나는 

그의 하소연이 점점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내게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쓰지 않았다. 

내 이름에 씨를 붙여 말하곤 했다. 

"ㅈㅎㅅ씨?" 그런 식이었다. 


선배 교사에게 의논을 했다.  

그녀도 아이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지만 선의를 왜곡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아예 전화를 받지 말라고 했다. 

도대체 뭘 왜곡한단 말인가. 

답답했지만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나 전화가 와도 받지 않았다. 

그랬더니 학부형도 잠잠했다. 

어느 날, 퇴근 후 휴대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지만 무심코 받았다. 

"여보세요?"

"저, ㄱㅇ아빤데요." 

그 학부형이었다. 나도 모르게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받지 않으니까 답답해서 다른 번호로 한 걸까?


다음날, 아이한테 혹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학부형에게서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가끔 그 학부형이 생각났다. 

날마다 아이를 무럭무럭 자라게 해 준 사람은 

누가 뭐래도 아이의 아빠였을 텐데.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본 건 그가 아니라 

어쩌면 나였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아이는 조금씩 더 밝아지고 더 이뻐졌다. 

3학년이 돼서는 아이들과도 잘 어울렸다. 

아이는 성실하게 성장의 의무를 다한 것이다. 

어른들이 뭔 생각을 어떻게 하든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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