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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뼘 수필 Aug 02. 2024

자두

맛에 담긴 시간의 기억

올해도 어김없이 가족과 친지들에게 추석 선물로 자두를 보냈다. 


십수 년 전,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분에게 작은 선물을 하고 싶었다. 

과하지 않은 선물을 고민할 때 큰 동생이 자두를 권했다. 

교인 중에 자두 농사를 짓는데 정말 크고 달고 맛있다고 했다. 

자두 선물이 생소했지만 동생이 하도 큰소리를 쳐서 선물로 보냈다. 

내 것까지 사 먹지는 못했다. 비싸서 못 사 먹었다. 

사과도, 배도, 감도 아닌 자두를? 그렇게 생각했다.


자두를 받으신 분이 너무 좋아하셨다. 

이렇게 큰 자두는 처음이라시며 정말 달고 맛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선물할 일이 있으면 자두를 보냈다. 


한 번은 선물 받으신 쌤이 자두 몇 개를 가져와서 내게 줬다.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맛 좀 보라고요."

쌤은 마치 내가 자두를 맛보지 못했다는 걸 아는 것 같았다. 

정말 맛있었다. 과육이 그렇게 꽉 차고 탱글할 수가 없었다. 

그 이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서 더 맛있었다.



사과를 과일의 왕으로 생각하는 나는 자두 살 돈으로 사과 사 먹는데 

이제 자두도 사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엄마께도 보냈다. 

그리고 나도 자두를 사 먹기 시작했다. 



어떤 지인과 얘기 중에 자두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는 관심을 보이면서 자기도 사겠다고 해서 연결을 해줬다. 

자두를 받고 정말 흡족해했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 후로 그녀도 계속 자두를 샀다. 

그러던 어느 해였다.

어찌 된 셈인지 배달된 자두가 많이 상해 있었다.

해마다 샀어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많이 상했다.

그게 더 이상했다. 몇 개 상한 거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 정도라면 뭔가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 자두 상태를 물었다. 

그녀는 "올해도 자두가 좋아."라고 명랑하게 말했다. 


나만 그런 거라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동생에게 말하니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했다. 

동생이 보고는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본인도 모르는 일일 거야. 얼마나 좋은 분인데.

그래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건 말해줘야 할 것 같아." 


자두 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무 미안해하면서 환불을 해주겠다는 거였다. 

나는 나대로 난처했다. 그걸 바라고 한 말이 아니니까. 

그래서 그동안 좋은 자두 주셨는데, 괜찮다고 했다. 

계좌를 말해주지 않았더니 며칠 후 다시 자두를 보내왔다. 

고맙고 미안했다. 


추석을 보내고 그녀를 만났다. 

날 보자마자 얼굴에 가득 웃음을 달고 말했다. 

"자기야, 나 자두값 두 박스 다 환불받았다."

"왜? 자두 괜찮다고 하더니?"

"자두 주인이 미안하다면서 환불해 주겠다고 하던데?"

"그럼, 자두는 보냈어? 환불받았으면 자두 보내야지."

"아니, 자기들이 안 좋은 자두 보내서 미안하다고 한 걸 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걸 고스란히 환불받냐. 자두도 안 보내고."


우리는 서먹한 상태로 헤어졌다. 

자두 주인은 내가 소개해준 그녀에게까지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일 년 농사에 들인 품과 정성과 시간을 생각하니 미안해 죽을 지경이었다. 

나도 그렇지만 그녀가 냉큼 환불받은 것은 정말로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자두를 자주자주, 두고두고 생각한다. 


내 손에 내가 선물한 자두를 쥐어준 그 쌤의 따뜻한 마음을, 

남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그녀의 삭막한 가슴을.


자두 주인장의 따뜻한 마음도 고마워서 나의 추석 선물은 여전히 그 집 자두다. 

해마다 가족 친지들에게 보내는 자두에는 그것을 가꾸고 수확하는 이의 

선한 마음도 들어있으리라. 그래서 크고 달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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