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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뼘 수필 Aug 02. 2024

감자수제비를 끓이며

맛에 담긴 시간의 기억

내가 안 해서 그렇지, 공부? 그까이 것, 했다 하면 전교 1 등인들 못하겠어?

많이들 그러셨죠?

네, 저는 항상 그랬어요. 

그런 생각이 가득하니까 제가 공불 참 잘한 줄 알았어요.(이하 생략)


내가 안 해서 그렇지, 요리? 그까이 것, 껌이야. 만날 그랬지요.

특히 저는 감자 수제비를 정말 잘 만들어요. 

손에 밀가루 하나 안 묻히고 엄청 쉽게, 엄청 맛있게.


해마다 여름이면 꼭 한번 해 먹었던 감자 수제비, 자 달려볼까요?

 

1. 강판에 먼저 감자를 갈고 밀가루를 넣으세요. 

순서가 바뀌어도 상관없지만 그러면 밀가루가 날리니 조심하셔요. 


2. 그다음, 숟가락으로 대충 섞어주면 됩니다.


감자를 갈면 물이 많이 생기니까 그 물로 반죽을 하는 거예요.

감자와 밀가루의 양을 재면서 한 적은 없어요.

감자 한 알을 갈아보면 아, 하고 감이 와요.

음, 손으로 떼 넣을 거라면 조금 쫀득한 반죽이 좋아요. 

저는 손에 밀가루를 안 묻힐 거라 조금 더 축축한 게 좋아요.

작은 감자 반 알 정도 더 갈아 넣으면 되겠네요.


그냥 감자를 숭덩숭덩 썰어 넣음 되지, 왜 갈고 난리냐고요?


맞아요. 근데 갈아서 하면 감자 옹심이처럼 맛있어요.

감자가 퍽퍽하게 씹히는 걸 다 좋아하는 건 아니잖아요. 


감자를 깎다 보니 엄마 생각이 났어요. 

저는 감자칼 씻는 게 귀찮아서 그냥 식칼로 깎습니다.

엄마는 숟가락으로 감자 껍질을 사사삭 잘 벗겼지요.

모지랑이 숟가락이면 더 잘 벗겨진다고 해요.

오래 써서 끝이 다 닳은 물건을 '모지랑이'라고 하지요.

모지랑이!

참 이쁘고 어쩐지 애달픈 말이죠?


외가는 감자 농사를 크게 지었대요.

하지감자 포슬포슬 삶아서 분을 내면 그렇게 맛있다고 해요.

엄마는 감자를 너무 좋아해서 밥 대신 감자만 먹었대요.

그래서 외할아버지가 저 년은 감자귀신이 들렸어, 혀를 차셨대요.

저는 감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제가 만든 감자 수제비만 좋아합니다.


3. 숟가락으로 섞은 반죽을 위생비닐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두세요.


볼 일 다 보시고 가보면 지가 알아서 반죽이 돼 있어요.

안 됐다면 손바닥으로 좀 두드려 주심 되고요.

비닐에 담긴 밀가루 감자 반죽을 만지면 촉감이 참 좋아요.

어릴 때 찰흙을 갖고 놀았던 기억! 미끌미끌, 매끈매끈 좋았지요?

그런 느낌이 나서 저는 주물럭거리곤 해요.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감자꽃'이라는 시도 중얼거리면서요.

아직도 정말 그럴까? 고개도 갸웃거리면서요.

요즘은 작물도 하도 개량종이 많으니까요.


4. 다시물이 끓으면 반죽 주머니를 왼손에 들고 숟가락으로 똑똑 떼어서 넣어요.

5. 양파나 호박도 넣어주면 좋겠지요? 



저는 채 써는 걸 잘하고 좋아해요. 

채칼이 필요 없어요. 가늘고 얇게, 고르게 잘해요.

채를 썰 때 도마와 칼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참 좋아요.

싸사사사삭, 썰면 지나가던 남편이 그래요.


어? 생활의 달인 나가야 하는 거 아냐?


응? 도마 위에 썰어놓은 거? 별론데? 혹시 그러시는지...요.

암튼 뭐, 맘 잡고 하면 그렇다는 얘깁니다.

에이, 맘 잡고 하면 누가 못해.

네, 네. 바로 그겁니다. 

맘 잡고 하면 다 잘하는 걸, 그 맘이라는 게 또 맘대로 안 되잖아요.


똑똑 떠 넣은 수제비가 말갛게 보이면 익은 거예요.

자, 이제 감자 수제비가 완성됐어요.

맛있어 보이나요?

왕멸치가 두둥 떠 있네요.

보통은 멸치, 양파껍질, 파뿌리, 다시마, 버섯 등을 넣고 푹 우려서 다시물을 만들어놔요.

없으면 멸치랑 버섯을 넣고 끓인 물을 바로 사용해요.

왕멸치는 먹을 때 앞접시에 건져내요. 씹히면 그냥 먹기도 하고요.

국물은 수제비가 익으면서 품고 있던 감자전분이 나와서 약간 걸쭉해져요.


통깨를 자세히 보면 깨알만 한 게 구멍이 송송 나 있어요.

모르고 볶은 통깨를 씻어서 다시 볶았더니 저렇게 됐어요.


와~ 진국이다. 정말 맛있어.


립서비스가 좋은 남편은 먹는 내내 감탄을 합니다.

하기 싫은 음식을 또 하게 만들지요.

상 차릴 때는 김치도 꺼내서 자르고 수저와 앞 접시도 갖다 놓습니다.

상 치울 땐 음식통도 냉장고에 넣고 식탁도 닦고 음식쓰레기도 처리해 주지요.

참 영리한 남자입니다.


아들들이 같이 살 때는 종종 그랬지요.

엄마, 진짜 맛있는데 다신 하지 마세요.


어떤가요? 손쉽고 맛난 감자 수제비.

일 년에 딱 한번 해서 더 맛있는 감자 수제비였습니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요?

그럼 1번부터 5번까지 다섯 문장만 보셔요. 



사진: 이영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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