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수필
오늘은 현충일
아침에 아파트 관리실에서 현충일 묵념에 관한 안내 방송을 내보냈다.
그걸 듣고 있자니 큰 애가 중학생일 때 현충일 아침이 떠올라 싱그레 웃음이 나왔다.
등굣날은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애들이 꼭 휴일만 되면 새벽부터 설치곤 한다.
그날도 큰 애는 꼭두새벽부터 지 동생이랑 태극기를 꺼내들고는 설레발치고 있었다.
아이구, 저 놈아들.
꾹 참고 있는데 갑자기 뭐 깨지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외침이 요란하게 들렸다.
나가보니 거실등이 박살이 나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태극기를 게양하겠다고 베란다로 나가면서 신나게 휘두른 봉에 거실등이 정통으로 맞아 깨져버린 거였다.
일단 다쳤는지 확인했다. 애들은 멀쩡했다. 그러고 나니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정수리가 뜨거워졌다. 고래고래 소리쳤다.
"대체 왜 새벽부터 난리냐, 어? 쉬는 날 엄마 잠 좀 자면 안 되나?"
남편도 뛰어나왔다. 기죽은 애들을 보더니 방으로 들어가라 하고선 날 뭐라했다.
"나도 잠 좀 자자. 집에만 오면 나는 당신 고함 소리 땜에 잘 수가 없어."
우리는 그 현충일에 각자의 공간에서 묵묵히 비자발적 조의를 표하며 보냈다.
어제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앞산 충혼탑에 가서 실버합창단 공연을 한다고 말한다.
허리 아파서, 숨이 차서 힘들어 하면서 언제 또 합창단에는 들어가서 공연을 한다고 땡볕에 그러는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래도 꾹 참고 잘 다녀오시라고 했다.
한번은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는 말에 발끈한 적도 있다.
"뭔 나라 걱정이야, 엄마가. 자식 기도나 열심히 하셔."
엄마가 하여튼, 못 됐어. 라고 혀를 차면서 말했다.
"나랏일이 잘 되야 너도 나도 다 잘 살 수 있는 거잖아."
시아버님 생전의 일이다.
어느 대선 날, 시누이는 겨우 가라앉힌 아버님의 감기가 도질까봐 투표하러 나가시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단다. 그런데 아버님은 살짝 다녀오려고 가만가만 바지를 꺼내 입으시다 넘어지고 말았다.
“아버진 왜 그리 투표를 못해 안달이세요?”
시누이가 퉁을 놓자 아버님은 멋쩍게 웃으셨다.
“좋은 나라 만들라고 그러제.”
“아버지가 투표한다고 좋은 나라 돼요?”
“그래! 된다!”
입원하신 아버님은 장난스럽게 주먹을 불끈 쥐면서 웃으셨다.
오늘의 글은 위정자들이 읽으면 좋겠다. 나는 정치에, 위정자에게 별 기대가 없다.
하지만 나의 진심은 정치도, 그들도 믿고 기대하며 설레고 싶다.
세상의 중심에 서서 외치고 토로하는 자들도 알기를 바란다.
보이지 않는 한 모퉁이, 어느 구석에도 이 나라를 향한 순정한 마음들이 있다는 걸.
세상을 반듯하게 세우고 둥글둥글 굴러가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