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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Sep 20. 2024

Wind

[한 장 반]프로젝트15

By 이작


해가 다르게 지구는 따뜻해지고, 빙하가 빠르게 녹기 시작했다. 높아진 바닷물에 아름다운 해변을 잃어가자, 그제야 지구온난화를 실감한 사람들의 마음이 급해졌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지속 가능한 지구 행동'이라는 국제기구는 큰 상금을 걸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전세계에서 257개의 아이디어가 출품되었고, 13개의 아이디어가 선정되었다. 그 13개 방안가운데 13번째로 뽑힌 것이 ‘WIND(윈드) 프로젝트’였다.


전문가들로부터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미미하고, 생산성도, 효율성도, 무엇보다 실현가능성이 낮다며 박한 평가를 받았지만, 온라인에서 일반인 점수가 높아 수상작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윈드 프로젝트’는 방귀를 모아 온실가스를 막고 모은 방귀는 연료로 쓰자는 아이디어였다. 소의 방귀를 수집하는 시도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지만, 윈드 프로젝트가 모으려는 것은 사람의 방귀였다.


메탄가스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이산화탄소보다 서른 배쯤 강한데, 한 해 배출되는 메탄가스의 20%가 소나 양같은 반추동물의 트림과 방귀에서 나오고, 자동차 한대가 만들어내는 가스보다 소 한 마리가 내보내는 가스가 더 많다고하니, 온실가스 주범으로 소가 지목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방귀라니. 사람의 방귀는 소에 비해 한 해 배출량이 1/2600에 불과해서 그걸 모은다고 해도 큰 도움이 안되었다. 이런 지적에 대해 발안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만이, 지금 엉덩이를 비집고 나오려는 이것이, 기체인지 고체인지, 아니면 액체인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만이 이물질 없는 순수한 가스를 모을 수 있습니다. 소한테 이걸 기대할 수는 없지요. 통제가 되지 않는 소한테서 메탄을 채집하려면 그 설비비가 훨씬 많이 듭니다.”


하지만 효율성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람의 방귀를 모으는 과정의 난감함과 거부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였다. 윈드를 정확히 명명하자면 방귀채집기였다. 일단 가스가 새지 않도록 고안된 특수 팬티를 입어야 했고, 팬티에 연결된 호스의 반대쪽 끝에는 가스를 빨아들이는 흡기모터와 가스를 담는 압축캔이 달려있다. 압축캔은 발목과 종아리 쯤에 고정하거나, 또는 등에 배낭처럼 멜 수 있었다. 하지만 대체 누가 남들 앞에서 이런 방귀통을 달고 다닐 수 있을까?


윈드에 처음 반응을 보인 것은, 아주 극소수의 남자들이었다. 이 남자들의 공통점은 ‘방귀에 불 붙이기'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카메라 앞에서. 


민망한 자세로 엉덩이 내밀고 누워 라이터를 준비하고 방귀에 불을 붙이는 장면을 영상으로 담아 공개했던 이 도전적인 남자들은 방귀채집기 정도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방귀에 붙인 불이 바지에 옮겨 붙어 엉덩이에 큰 화상을 입었던 한 남자는, 이번에 ‘윈드로 방귀를 모아 더 큰 폭발을 보여주겠다’는 예고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이 선구자적 얼리어답터들을 뒤따른 것은 ‘헬스하는 남자들'이었다. 단백질 보충제를 먹으면 방귀가 많이 나오는 경험들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었다. 


어차피 단백질 보충제를 끊을 수 없고, 때문에 방귀를 감수해야 한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방귀를 모아, 그 돈으로 단백질 보충제를 사자며 자체 선순환 고리를 만들자는 논리를 펼쳤고, 많은 헬스인, 정확히는 단백질 보충제 애용자들이 설득되었다.


힘줄 때 방귀가 많이 나온다며, 아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 윈드를 착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윈드가 일종의 ‘사회 현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채식주의자들이 합류하면서부터 였다. 채식 후 잦아진 방귀가 불편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들이 분노한 지점은 온실가스의 주범으로 소를 지목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육식소비를 위해 키워놓고 왜 소에게 잘못을 씌우냐는 것이다. 육식 소비문제까지 지적하면서 자연스럽게 소의 개체 수를 줄여 온실가스를 막자는 운동으로 번졌다. 여기에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까지 합류하자 윈드는 대세가 되었다.


방귀를 많이 부르는 식재료와 음식 레시피가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 늘 올라오게 되었다. 윈드는 패션에도 영향을 주었다. 윈드를 착용하고 있다는 것을 감추기위해 입은 펑퍼짐한 바지. 누군가는 ‘소방차 바지'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알라딘 바지'로 알고 있는 바지가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사람들은 방귀를 채집하고 팔아서 생긴 수익을 앱에 기록하고 서로 공유하는 걸 즐겼는데, 윈드의 공식 앱보다 서드 파티 앱인 ‘허삼관 매뿡기'라는 앱이 더 인기가 있었다. ‘방귀 판 이야기’라는 뜻으로 지은 매뿡기 앱에는 사용자들 가운데 가장 많은 기록을 세운 사람한테 뿡뿡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오늘의 뿡력발전'이라는 앱은 윈드 전체 사용자가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이고, 대체 에너지를 얼마나 생산했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방귀를 파는 허삼관들이 많아지면서 윈드의 숨은 효과도 드러났다. 방귀를 모아야 하니 채집기를 새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기본이었다. 


'구멍'과 호스 사이의 틈을 없애려면 다소 불편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착용해야 했는데, 그 불편한 착용법이 방귀 소리를 획기적으로 줄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제 냄새 걱정, 소리 걱정없이 언제 어디서나 방귀를 뀔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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