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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한 장 반 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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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Oct 22. 2024

A tale

[한 장 반]프로젝트25

By 이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녀석이다. 집 앞 골목에서 자주 만나는 길고양이에게 소시지를 몇 번 주었더니 집까지 따라와 어느새 눌러 앉았다. 눌러 앉았다기엔 밥 때가 되면 먹을 것을 청하러 오는 단골집 정도는 되는 모양이다.


배 한 번 긁어준 적이 없어 암컷인지 수컷인지도 모르는 녀석이다. 자기 이름이라도 되는 양, '녀석아’라고 말하면 '냥'하고 대답을 한다. 고양이 사료 한 포대를 사뒀지만 사료는 입도 대지 않고는 소시지를 내놓을 때까지 꼬리를 말고 앉아 딴청을 한다. 어쩌면 녀석은 나를 '소시지 주는 녀석'으로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나는 사람들 발이 보이는 반지하 창문. 어느새 나도 녀석이 창문에 나타나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못 본 지 며칠이 되었을까. 사고라도 당한 건 아닌지 걱정하던 중이어서 녀석의 노크 소리가 반가웠다. 멸치같은 거라도 좀 주고 싶었지만 집에서 밥을 안 해먹은 지가 몇 해인데 멸치가 있을리가. 사뒀던 소시지 하나를 챙겨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갔다.


"이 녀석아, 어디 갔다가 왔어. 뭔 일 생긴 줄 알았네."

"냐앙~."


녀석은 날 보자 입에 물었던 것을 내려 놓는다. 이게 말로만 듣던 고양이의 보은인가. 윽! 아이고 뭘 잡아 온 거야. 쥐 같은 거면 어떻게 하지? 손으로는 도저히 만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무젓가락 같은 거라도 가져와야 하나. 혀로 앞발을 핥으며 칭찬을 기다리는 듯 얌전히 앉아있는 녀석. 녀석에게 소시지를 까서 넘겼다. 


고양이가 내려놓은 것은, 이야기였다. 이야기라니! 어떻게 고양이가 이야기를 잡아 온다는 말인가. 떨리는 손으로 이야기를 집어 올렸다. 두서 없이 레퍼토리 범벅인 상투적인 이야기였지만, 그것은 분명 이야기였다.



그놈의 이야기가 뭔지. 세상을 놀래킬만한 이야기를 잡겠다고 안 해 본 것이 없었다. 제대하고는 복학도 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나섰으니 어느새 20년도 넘은 세월이다. 실력이 좋았는지 처음에는 벌이도 꽤 괜찮았다. 내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고, 변변치 못한 것을 잡더라도 사주는 곳이 있었다. 집까지는 못 샀어도 아버지 차 한 대는 바꿔드릴 수 있었다. 잘 모았다가 결혼 자금에 보태라고 하셨지만 새 차를 받고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실력은 형편 없었다. 군대에서 철책근무를 서다가 잡은 눈 먼 이야기가 지금까지 내가 잡은 최고의 이야기였다. 같이 근무를 서던 부사수는 잡은 게 이야기인지도 모르는 까막눈인터라 운 좋게 나 혼자 이야기를 독식할 수 있었다. 그것을 팔아 꽤 큰 돈을 만졌고 손쉽게 돈맛을 보고는 제대하자 마자 자퇴를 했다. 그 후로는 계속 내리막이었으니 그때 그 눈 먼 이야기가 잡힌 것이 운이 나빴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찾아 다니기 시작한지 오 년이 넘어가자 보다 못한 어머니는 정말 사돈의 팔촌이 운영하는 택시회사에 나를 밀어 넣었다. 억지로 들어간 자리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정치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 각자 자기 사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 택시 아닌가. 어쩌면 이야기 잡기 가장 좋은 직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손님들을 태우면서 이야기 잡으러 다닌 것 뿐인데 마흔이 넘어갔다. 내가 한 일이라곤 이야기를 잡은 것이 아니라 택시 손님들이 잡아 둔 이야기를 구경하는 것뿐이었다. 그걸 택시 운전 10년만에 깨달았다. 그나마 돈 받고 판 이야기는 5년 전에 잡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포기한 적은 없지만 포기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오늘 길고양이 녀석이 이야기 하나를 잡아왔다. 소시지를 다 먹은 녀석은 대답도 하지 않고 미련없이 떠났다. 또 이야기를 잡아오려나? 이게 작별 선물은 아니겠지? 


조심스레 손에 든 이야기 보따리를 조금 더 풀어보았다. 어디서 많이 봤다 싶더니 한 때 베스트셀러였던 소설의 한 대목이었다. 새 이야기가 아닌 것에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이야기 잡는 고양이라니 이런 영물이 따로 없다. 어디서 잡아왔는지 녀석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이 작은 기연을 깨버릴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는 출근해서 첫 손님을 태웠다.


“기사님, 삼천포항까지 택시 대절하면 얼마나 나와요?”

“아유, 급하신가봅니다. 요즘 그렇게 하면 꽤 비쌉니… 어? 어? 혹시 이 작가님 아니세요?”


이럴수가. 아침에 고양이가 물고 온 이야기를 쓴 이 작가였다. 군대에서 첫 이야기를 잡은 것. 이야기를 찾아 헤맨 것. 택시를 운전하게 된 것. 길고양이를 만난 것, 그 고양이가 이야기를 잡는 고양이라는 것. 그 이야기를 쓴 작가를 태우게 된 것.


이것은 운명이리라. 게다가 삼천포라니. 이 모든 것이, 지난 20여년 이, 마치 나만을 위해 준비된 커다란 안배같다는 생각에 마른 침을 삼켰다.


이 작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리고 나서는 곯아떨어진 듯했다. 룸미러로 잠든 이 작가를 확인하고는 조수석 글로브 박스를 열었다. 이야기 채집기가 잘 들어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숨을 골랐다. 흥분하면 안 된다. 오늘이다. 오늘 분명히 큰 놈을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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