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부터 지금까지 서울의 중심지의 역할을 해왔던 경복궁 옆 북촌에서는 수많은 먹거리와 볼거리, 그리고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이 존재합니다. 경복궁 가장 옆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면 가을의 정취를 한 껏 느끼면서 아트선재센터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문경원 & 전준호: 서울 웨더 스테이션(Seoul Weather Station)>은 월드웨더네트워크(WWN: World Weather Network, 이하 WWN)의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상기후와 자연재해로 변하고 있는 기후 환경을 예술적 상상력과 여러 학제 간의 협업을 통해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이를 통해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모색하는 전시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WWN은 기상관측소들의 연합으로 전 지구적 위기인 기후변화와 생태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WWN에 속한 28개국의 예술 기관들은 예술가와 전문가들이 함께 환경에 관한 예술적 연구를 진행하고, 전시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공유하고 있습니다. 아트선재센터는 기후 위기 시대에 예술의 역할을 고민하고 담론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기 바라며 이 전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층, 2층, 3층에 연달아 이어지는 전시는 수많은 기후와 관련된 담론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며 작품들을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위태로운 지구의 기후 환경에 대해 일깨워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1층에서는 <서울 웨더 스테이션>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월드웨더네트워크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눈을 사로잡는 세계지도에는 WWN에 참여하는 많은 나라들과 기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앞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Nothing Gets Organised(NGO)&POOL과 니나 바넷(Nina Barnett)&제레미 볼렌(Jeremy Bolen), 그리스 NEON과 나탈리아 추칼라(Natalia Tsoukala), 스타브로스 가스파라토스(Stavros Gasparatos), 필리핀 현대미술디자인박물관(MCAD)과 데릭 투말라(Derek Tumala), 영국&프랑스 니콜레타피오루치재단(Nicoletta Fiorucci Foundation)과 제이콥 쿠즈크 스틴슨(Jakob Kudsk Steensen), 조엘 쿠엔넨(Joel Kuennen), 튀르키예 사하(SAHA)와 엘마스 데니즈(Elmas Deniz), 브르주 야그지오글루(Burcu Yağcıoğlu)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1층의 수많은 작품들 사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스타브로스 가스파라토스의<소닉 웨더 스테이션(Sonic Weatehr Station)>였습니다. 이 작품은 그리스의 기상관측소에서 수신받은 기상 데이터를 음파 출력으로 생성하는 온라인 작업입니다. 태블릿 화면에 동그랗게 모여있는 점들 위로 손가락을 움직이면 음파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소리들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어느 지점을 누르는지에 따라 기온, 습도, 기압, 바람, 비에 대한 실시간 정보와 동시에 미묘하게 달라지는 소리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소리를 느끼다 보면 이 작은 원안에서 송신되는 날씨의 변화의 폭이 생생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폭우, 폭설, 폭염, 태풍과 같이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매일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날씨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깨닫기 어렵습니다. 간단한 조작으로 느껴지는 날씨의 미묘한 변화들은 지구의 환경이 얼마나 섬세하게 주변을 감싸고 있는지, 지구의 환경은 우리가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절벽 위에 서있는지 알아차릴 수 없기에 언제나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엘마스 데니즈, <비애>, 2019, Two-channel video, 15min each, Istanbul
지구에게 당면한 위기를 1층에서 발견하고 나서 올라간 2층에서는 문경원 & 전준호 작가의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문경원 & 전준호 작가는 2009년부터 함께 활동하며 예술의 기능과 역할이 무엇 일지에 대해 탐구하는 작업을 선보여 왔습니다. 이 전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은 바로 <불 피우기(To Bulid a Fire)>입니다. 전시장의 한쪽 벽을 꽉 채우고 있는 거대한 스크린, 영상, 조형물, 로봇 그리고 인공지능 언어 모델 GPT-3(김희우 코딩)가 함께한 멀티미디어 작품은 15분 동안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던 공간을 순식간에 가득 채웁니다. 영상 속 지구의 변화에서 인간은 마치 환상 속에 존재하는 미지의 생물과 같고, 이러한 기후 위기의 가운데 서있는 지구의 변화를 설명하는 주된 객체는 AI라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로봇은 영상 속 이야기를 직접 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AI가 해주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러한 지점은 <월-E(WALL-E)>라는 영화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최근 일러스트와 웹툰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는 AI와 로봇 퍼포먼스의 결합은 어색하면서도 인류가 멸망한 뒤 지구에 대한 생각을 가져보게 합니다.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들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가 올런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기후위기라는 전시의 큰 주제 속에서 우리는 이후에 지속될 인류나 또 다른 형태의 다음 세대가 지구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행동을 취하고 있는지, 우리 앞에 써질 긴 역사에서 인류는 어떻게 기록될지 생각해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전달하는 듯합니다.
문경원&전준호, <불 피우기>, 2022 중 일부
문경원&전준호, <불 피우기>, 2022 중 일부
3층에서는 문경원 & 전준호 작가의 평면 작업들과 아고라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모바일 아고라: 서울 웨더 스테이션>은고기후 문제와 탄소 중립에 대해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대안을 모색하는 공간이자 동시에 앞에 놓인 영상물을 통해서도 전문가들의 시각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온/오프 플랫폼입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존재한 도시국가 폴리스에서 자유시민들의 자유로운 토론을 위한 공간으로써 활용되었던 '아고라(Ἀγορά)'는 두 작가를 통해서 재활용되었습니다. 버려진 의자들을 모아 재활용하여 재창조한 듯한 원형 공간과 지구 환경에 대한 모색을 위한 새로운 장소로써 과거의 의미를 다시 활용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아트선재센터에 소환된 아고라, 이 공간에서 만큼은 관객, 예술가, 전문가가 모두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류로써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습니다.
벽면을 채운 배우 류준열 님의 <무제>는 과학자가 아닌 그가 예술을 통해 얼마큼 기후 위기에 대해 이해하고 나아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유명인이라는 사회적 역할에 속한 그가 예술 활동을 통해 지구의 환경이 마주한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행위는 한국 사회에서 더 큰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 웨더 스테이션(Seoul Weather Station)>은 예술계뿐만 아니라 이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도 이 전시의 주제가 가진 중요도와 무게를 수많은 작품들과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심도 있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시연계 프로그램인 <모바일 아고라: 토크 프로그램>은 전시 시작부터 전시가 끝나는 11월까지 함께 진행될 예정이니 관심이 있는 분들은 아트선재센터에서 확인해 보시면 예술과 지구환경에 대한 복합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많은 과학자들, 환경운동가들은 지구가 현재 위기에 처해 있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불안한 변화는 우리의 피부에 와닿지 않기에 무심코 잊어버리고 맙니다.대중을 설득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예술가와 학계 전문가들의 예술적 외침을 주의 깊게 들어보고, 위기에서 벗어난 지구 환경 미래에 대해 함께 고뇌하는 <문경원 & 전준호: 서울 웨더 스테이션>을 통해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류로써 기후 환경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전시 제목 - 문경원 & 전준호: 서울 웨더 스테이션
전시 위치 - 아트선재센터(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3길 87)
전시 날짜 - 2022.08.30 - 11.20
기획 - 김선정(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 이수진(미술사학자), 조희현(아트선재센터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