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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Sep 24. 2022

불타는 사랑의 노래

아뜰리에 에르메스 | 2022.07.29 - 10.02

신사동에 위치한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의 지하에는 미술 작가로써 발을 내딛기 시작한 젊은 작가의 작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바로 제 19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류성실작가와 그녀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불타는 사랑의 노래>입니다. 작년 3월 역대 최연소 작가로써 상을 수상한 류성실 작가는 체리장과 같은 캐릭터를 앞세워 아프리카TV 등 미디어 콘텐츠를 이용한 방식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번 <불타는 사랑의 노래>는 그녀의 캐릭터 체리 장의 '대왕 오빠'이자 나탸샤의 '사장님'이었던 이대왕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습니다. 과거 '대왕트래블' 사업을 하던 그는 이윤을 추구하는 속물적 인물이며, 코로나 사태로 관광업이 망하자 애견상조회사 사업을 벌이게 됩니다.  아틀리에 에르메스의 아티스틱 디렉터 안소연은 이러한 류성실 작가의 작품세계는 압축 경제성장 이후 한국 사회에 자리잡은 졸부근성과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를 예리하게 직시하며, 오늘날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돈에 대한 원초적이고 강렬한 개인들의 욕망을 추적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시장 안에 들어서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화장터나 장례작장을 연상시키는 모습 입니다. 전시장은 대왕애견상조의 사업장으로 변신해 관객을 맞이합니다.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은 우리가 화장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장 순서를 띄워 두는 모니터와 마치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듯한 화환들 입니다. 전시장 초입에서 관객들을 맞이하는 화환들은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화환이라는 것 자체에 축하나 애도를 표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축하를 받을 사람 또는 애도를 표할 사람을 위한 예를 더하기 위해 사용되는 물건이 절까지 하고 있으니 어색하고 웃기기까지 합니다. 축하와 애도의 모습 보이지 않고 겉모습만 그럴싸한 비꼬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화환들 뒤에 놓아진 모니터에는 공주라는 이름을 가진 애완견의 화장 순서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는 전시장에 위치한 영상 작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순서를 보고 영상의 내용을 예측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화장터와 같은 분위기가 더해집니다. 이 모니터에는 대왕애견상조의 대표 이대왕의 인터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자신이 왜 이 사업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자신은 많은 고객의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마치 사이비 종교가 사기적 행태를 감추고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신도들을 세뇌하듯이 대왕애견상조를 방문하는 관객들을 현혹하기 위한 자기 포장처럼 느껴집니다.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입만 열심히 움직이는 이대왕의 얼굴은 말로는 뭘 못하냐는 듯한 생각이 드는 것에 신뢰성을 더합니다. 지어 애견상조 사업의 효율이 좋다는 그의 발언은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의심을 심어줄 겁니다.

현대에 많은 사람들이 개, 고양이 부터 시작해 다양한 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사회적으로 '애완'이라는 단어보다 '반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애완'이라는 단어는 동물이나 물품 따위를 조아하여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젠 사람과 더불어 사는 존재가 된 동물이 되었기에 장난감과 같은 느낌을 일으키는 '애완 동물'보다 '반려 동물'이 사용되고 권고되고 있습니다. 특히 개와 고양이에 있어서는 반려견과 반려묘라는 표현의 사용이 더욱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이러한 사회적 흐름을 거스르는 듯한 '애완'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이대왕이 동물을 하나의 돈벌이 수단으로써 보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요소라고 생각됩니다.  


전시장의 한 가운데에는 거대한 대리석 벽이 공간을 가로질러 놓여 있습니다. 추모공원에서 보일 법한 이대왕과 애완견들의 모습은 대리석에 새겨진 것이 아닙니다. 부조처럼 보이도록 착시를 일으키는 이 그림 역시 이대왕의 인터뷰에서 느껴진 대왕애견상조라는 기업이 혹시 사기는 아닐까라는 의문에 빠지도록 합니다. 이대왕과 애완견들이 행복하게 무지개다리를 건너간다는 모습 그 자체가 단단하게 새겨진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지워질 수 있는 허상인 게 아닐지 의심하며 믿음이 얄팍해져만 갑니다. 착시부조 옆에 놓인 거대 모니터에는 사랑했던 애완견의 마지막모습과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전시의 제목인 <불타는 사랑의 노래>가 가장 잘 느껴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10세의 나이로 사망한 공주를 애도하는 과정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격렬하게 오열하는 공주의 주인과 생중계되는 공주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모습은 마치 우주선이 날아가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마무리하는 이대왕의 트롯트같은 노래는 이 장소에 참석한 관객이 울어야할지 웃어야할지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저는 반려동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또다른 가족을 잃은 심정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대왕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극도로 과장되어 사이비 종교스럽습니다. 애도과정에서 공주가 계속 이야기하는 무지개 다리 너머는 좋은 곳이라는 이야기는 카더라에 기반하고 있기에 공주가 이대왕에게 속아넘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듯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으면 자신이 그쪽으로 가겠다는 주인의 과장스러운 태도는 슬픔에 잠겨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함께 속은 듯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한발짝 떨어져 이 모든 행태를 관찰하는 과정은 강건너 불구경을 하거나, 막장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대리석 벽의 뒤쪽에는 무지개 다리를 건넌 애완견들이 당도할 것 같은 화려하고 휘향찬란한 천국스러운 모습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이대왕과 나타샤가 함께 화려한 마지막 여행을 장식해 주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놓인모디터와 불빛들은 번쩍임을 더해주다 못해 어지러운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과거 효도관광 상품을 제공했던 대왕트래블의 영광스러운 모습 또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이미지 구석에는 QR코드가 숨겨져 있습니다. 링크를 통해 들어간 사이트에서는 이대왕의 지저분한 뒷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곳에서 QR코드가 담고 있는 내용까지 확인하는 것이 이 대왕애견상조 투어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류성실 작가는 자신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타오르는 불 뿐만아니라 남의 집 불구경을 좋아하는 이유는 불타는 것들이 언젠가 재가 될 운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타오르는 불과 불을 향한 욕망과 그들의 쓸모를 찾기 위한 또 다른 욕망을 상상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을 수도 울수도 없는 주의 애도 과정과 그 뒤에 화려하게 감춰져 있던 대왕애견상조의 모습을 바라보며 구경하고 있는 관객의 모습이 바로 작가가 전시를 준비하며 떠올린 상상의 실현일 겁니다. 전시장이라는 벽 뒤에 서서 작품들을 바라보며 과연 이 작품은 얼마일까와 같은 속물적 욕망을 표출하는 우리의 모습을 작가는 구경해보길 원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완견의 사체를 불태우며 뜨겁게 타오르는 화장터의 열기는 조만간 사그라들겠지만 우리의 불구경은 또 다른 전시장, 일상 속 공간에 수많은 행태로 드러날 겁니다. 이러한 인간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이대왕의 이번 대왕애견상조와 미래에 생길지도 모르는 또다른 사업들이 망할 길은 묘연해 보입니다.  





전시 제목 - 류성실 : 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위치 - 아뜰리에 에르메스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45길 7, B1F)

전시 날짜 - 2022.07.29 ~10.02

관람 시간 - 11:00~19:00(평일, 토요일 /수요일 휴관), 12:00~19:00(일요일, 공휴일)

주최, 주관 - 에르메스 재단(Foundation D'entreprise HER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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