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 Jan 27. 2023

 To be anything, To be nothing

탈영역우정국 | 2023.01.12 - 01.29

2023 검은 토끼의 해가 밝았습니다. 새로운 예술작품들과 만남으로 가득 차길 바라는 올해의 첫 전시를 만나기 위해 조용한 주택가 사이로 향합니다. 골목길 사이에 위치한 탈영역우정국은 우체국통폐합으로 비어버린 서울 마포구 창전동 (구) 창전동 우체국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리니어 콜렉티브의 장기프로젝트입니다. 과거 주민들의 편지와 택배들을 전달해 주었을  이 공간은 지금은 다양한 영역의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지역사회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금 탈영역우정국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는 <To BE Anything TO BE Nothing>입니다. 이 전시는 '쓰레기'라는 물체가 가지게 된 수많은 특성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미 다 사용된 것, 소진된 것과 같이 이미 우리가 이해하고 있던 의미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탈을 쓰고 부활할 운명을 가진 것, 발견되지 못해 선택되길 기다린 채 버려져 있는 것과 같은 의미를 더합니다. 현대에 쓰레기는 여러 영역과 결합되어 새로운 사업의 중심에 있습니다. 가장 흔한 것들로는 폐플라스틱을 천이나 소품들로 재탄생시키고, 예술에서도 리사이클, 순환의 고리 위에 올라가는 수많은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전시에서는 누군가의 기억과 의미를 흔적으로 가지는 동시에 무의미와 무가치를 상징하는 쓰레기가 사용과 폐기의 경계에 서있음을 이야기하며 이 경계에서 그들의 사용처를 바꿔줄 수 있는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 허수연, <True Stories>, 2023 | 뒤: 양승욱, <남는 건 사진뿐>, 2023

이 전시는 박다빈, 양승욱, 허수연 3명의 작가와 송아리, 정은형의 Skingraphy팀이 쓰레기가 가지는 경계에 대한 경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 작가들의 작품들은 각기 다른 쓰레기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관람객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허수연 작가는 예술가의 쓰레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종이로 만들어진 종이죽과 버려지는 소재들을 선택해 전달하고 있습니다. 회화의 가장 기반이 되는 재료라고 할 수 있는 '종이'는 그 자체로써도 많은 의미를 가지지만 쓰레기로 변모한 종이도 현대사회에서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재활용의 대표주자이자 최근에는 플라스틱의 대체품으로써 떠오르지만 이것이 진정한 친환경인가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작은 메모지부터 휴지, 종이빨대까지 우리의 삶에 너무나도 밀접하게 붙어있지만 무의식적으로 사용해 왔던 종이들은 우리의 눈에 잘 띄는 거대한 작품의 덩어리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생활 속에 녹아 있었지만 폐기돼버린 작은 삶의 흔적들은 허수연 작가의 손을 거쳐 캔버스에 박제되어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양승욱 작가가 선택한 것은 '사진'이라는 소재입니다. 작가의 사적인 이야기와 정체성이 담겨있는 사진들 중에서 자신이 사용하지 않았지만 버리지도 못한 것들을 관람객이 떼어갈 수 있는 <남는 건 사진뿐>은 요즘 소비되고 있는 사진들에 대한 행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핸드폰의 발전과 인생네컷과 같은 순간을 담을 수 있도록 하는 문화생활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사진은 과거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소중하게 촬영하는 것이 아닌 짧은 순간을 담는 것으로써 의미가 점점 더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가 백일, 결혼, 명절이라는 중요한 순간들을 기념하는 기념비적인 의미는 퇴색되고 나의 찰나를 포착하기 위한 오락으로써 사용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도 사진이 개인적이고 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지점은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적인 이야기의 무게가 가벼워진 사진들은 작품으로써 관람객과 공유되고 있습니다. 수집된 작가의 과거의 순간들이 가진 가벼움 사이에 존재하는 틈으로 관람객이 스며들어 새로운 순간을 창출해 내는 새로운 연결고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박다빈 작가는 3차원의 물질적인 '쓰레기'에서 벗어나 디지털 세계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라고 할 수 있는 '오류'에 주목합니다. 이 '쓰레기'들은 가장 최근 발생하기 시작한 것들입니다. 작가는 현대에 탄생한 인공지능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오류가 보여주는 인간과 기술 사이에 보이는 인식과 존재론의 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최근 수많은 SNS에서 유행하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이용해 인공지능에게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바꿔보는 행위는 작가의 이러한 생각을 잘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의 예시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우리의 모습을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바꿀 때 성별을 다르게 표현한다던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만들어내 우리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겐 그저 인공지능의 오류이지만, 박다빈 작가의 시선에서는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일지 모릅니다. 이러한 지점들을 이용하여 로딩에 실패하고 조각난 이미지들을 산출해 내는 <Inhale-Exhale>(2023)은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냄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는 기술들이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과 얼마만큼의 틈새를 가지고 있는지 조망하게 합니다.

Skingraphy(송아리, 정은형), <갗그물 skin-net>, 2023

Skingraphy는 변이 신체를 탐구하고 실험하는 예술팀입니다. Skingraphy는 송아리 작가와 정은형 작가로 이루어진 팀으로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피부'에 대한 정교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피부'는 '나'와 '세계'가 맞닿는 일차적 매질로써 기능합니다.  인체에서 피부는 외부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가장 거대한 외피 조직입니다. 이 조직은 항상 우리의 몸 밖에 위치해 있는 것 같지만 조금씩 새로운 조직들을 만들어냅니다.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에서 우리의 몸에서는 수많은 죽은 피부 조직들과 머리카락, 눈썹 그리고 세포들까지 많은 '쓰레기'들을 배출해 내고 있습니다. 허물어짐과 세워짐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피부'는 끊임없이 변이 되는 존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변이 되는 과정에서 피부에는 수많은 흔적들이 남기도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Skingraphy는 이에 집중하면서 경계로써의 피부와 피부가 지니고 있는 시간의 흔적을 나누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전시는 우리가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쓰레기'에 담긴 수많은 시선들을 예술가의 태도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선택을 강요하는 현대에서 우리 뒤에 남겨진 '쓰레기'들이 우리에게 또다시 선택될 수 있는 가치를 가진 것은 아니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아직 늦지 않았을 겁니다. 버려진 물건뿐만 아니라 기억, 의미, 가치와 같은 모든 것들이 아직 내 삶의 경계에 서있을 때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전시 제목: To be anything, To be nothing

전시 위치: 탈영역우정국 (서울 마포구 독막로20길 42 1F)

전시 날짜: 2023.01.12 - 01.29

관람 시간: 오후 1시 - 7시 / 퍼포먼스 예약으로 진행

매거진의 이전글 SPACE Symphon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