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생기던 그날의 온기
아이를 낳던 그날의 빗줄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야....'라고 우는 유치원생을 달래며 네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세심하게 알려주던 그때.....
참 따뜻하고 강렬하게 기억되는 순간들이다.
뭐든지 무난했던 아이였다.
어떻게 셈하는 법을 알려줄까 고민했을 때
어느새 구구단을 떼고,
가갸거겨부터 가르치면 될까 고민하고 있을 때
눈 돌리고 나니 한글도 뗐다.
초등학교 때부터 방학만 되면
이고 지고 짐을 싸서 한달살이를 떠났다.
어린 두 아들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무게는 너무 버거웠다.
그때마다 내게 동료가 되어주었고 친구가 되어주었던 큰 아들이었다.
난 그 때 왜 그렇게 아이를 어른처럼 대했는지 모르겠다.
의지했던 것 같다.
아이의 몸과 마음을 잘 돌보고 있나 고민할 때,
한숨 돌리고 나니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제 손으로 돈을 벌었다.
자기 이름으로 사회에 첫 발을 딛고 번 돈이다.
나는 이제 내 할 도리 다 했다 싶어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부모의 동의가 없어도
자기 이름 석자 만으로
뭐든 결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아이가 내 곁에 머물고 떠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다.
더 이상 내가 양육이란 이름으로 아이를 소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마침표 같은 후련함과
둥지 속 새끼를 잃은 듯한 상실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고등학교 3년간 아이와 함께 등교했다.
평소 말 수가 많지는 않지만
화두를 던지면 늘 신중하게 생각을 나눠주었고 아이와의 대화 속에는 즐거움과 통찰이 있었다.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울만큼 지나치게 솔직한 내 생각을 끄집어내어 보여주어도 나이답지 않게 균형 잡힌 시선으로 나를 일깨워주기도 했다.
그런 아들에게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20년간 쉬지 않고 일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폭신한 카스텔라와 시원한 우유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는 엄마가 되어주지 못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학교 앞에서 기다리지 못해 비를 맞고 쓸쓸하게 하교하게 하는 찢어지게 가슴 아픈 날들도 있었다.
대신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며 열심히 일하는 슈퍼우먼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교수 엄마가 아닌 교사 엄마인 것을 아쉬워하며 아이를 전인적으로 자극하고 동기화시킬 수 있는 그 모든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휴... 뒤돌아보니 참 숨 가쁜 시간들이었다.
뿌듯하고 상기된 표정을 하고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사드리는 드라마 속 장면이 떠오른다.
우리 아들이 사 준 초밥은 빨간 내복이었다.
특 초밥이 아닌 일반 초밥의 값을 치르고 나오며 이제 아빠 마음을 알 것 같다고 했다.
책임지는 것, 가장이 되는 것, 스스로 단단한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부담을 지기 시작했다는 말로 들려 마음 한켠이 서늘해졌다.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아이의 20년간의 역사가 초밥 위를 타고 흘러갔다.
이제는 내 보호자가 되어주겠다는 든든한 아들아...
어른이 된 너의 하루하루를 이제는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숨죽여 지켜보며 무한한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고맙다.
엄마의 지난 20년을 지탱한 건 바로 너였구나.
아들아, 이제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줄래?
흠칫 반 박자 멈추었다가
신중하게 답한다.
전에 엄마 응급실 갔을 때처럼 하는 걸 말하는 거지? 당연히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