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벗이 되고 싶은가?
나의 지향점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이
내 벗이 되었으면 한다.
나를 침범하지 않으며
내 곁을 지켜주었으면 한다.
나는 어떤 벗이 되고 싶은가?
나는 내가 나의 벗에게 바라는 것을
그에게 줄 수 있을까?
나는 누군가의 벗이 될 자격이 있을까?
나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나의 벗들에게 이렇게 다가갔다.
한 없이 동정하고
침묵하지 않으며
맹목적으로 너의 편이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그리고 벌거벗은 내 모습 전부를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벗이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자신을 숨기지 않고 다 드러내는 것은 한편으로 다른 사람의 분노를 일으킨다고 한다.
왜일까?
자신의 욕망, 신념, 가치관을 드러내면
다른 사람의 불안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적당히 눈치 보고, 비슷한 척하며 사회적으로 안전하게 행동하는 것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진정한 벗을 맞이하고 진정한 벗이 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그래서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고 벗을 위해 거짓으로 나를 꾸미기도 한다.
괜찮은 사람인 척
너그러운 사람인 척
이해하는 척
그런 내가 진정 좋은 벗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분명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가고 싶지만
위험을 감수할 만큼 용감하지는 않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내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의 벗들을 떠올려본다.
가라앉은 내 마음속 찌꺼기까지 휘저어 밖으로 쓸어내 주는 벗이 있는가 하면
그저 이해하고 그저 너그럽고 그저 괜찮다고 말해주는 벗도 있다.
그런데....
나를 뼈저리게 아프게 할 만큼
내 모습을 비춰주는 벗이 있나?
분명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럴 때 그를 멀리한다.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겁한 나를 마주하는 것도
뼈저리게 아프다.
그러나 그렇게 용기 내준 나의 벗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아야 한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문제를 안고 괴로움 중에 있었지만 나를 위해 다가와주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런 벗이 내 곁에 계속 머물 수 있도록 그의 정성을 알아차릴 수 있는 지혜를 갖추고 싶다.
나는 나를 옥죄고 있는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봄날의 햇살이 되고
보드라운 빵이 될 수 있으며
따끈하고 향기로운 커피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좋은 벗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