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배우기

by 젼샘

나는 지식전달자이다.

중2부터 교과서에 등장하는

영어의 수동태를 기가 막히게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지혜를 전달할 수는 없다.

지혜는 말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몹시도 지혜를 배우고 싶다.

그래서 지혜로운 누군가의 말씀을 듣거나 온갖 책을 뒤적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타인의 지혜가 지닌 한계를 알고 있다.

그의 지혜는 말이나 글로 전달되고 듣는 이마다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배우는 것이

가장 극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경험의 폭이 좁고

앞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유한하기 때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경지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다.

경지는커녕 죽을 때까지 어린아이 같은 상태에 머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치지 않고 갈구하고 눈을 열려고 노력한다면 가능할까?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조급해하지 않고 내 감정에 잠시 머무르는 여유가 있다면 삶의 순간마다 배움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배우려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들여다볼수록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식견과 얕은 인격을 가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서슴없이 무언가를 말하거나 주장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닫곤 한다.

내 나이 마흔이 되었을 무렵 내면의 부대낌이 조금은 잦아들고 정리되는 느낌을 가졌었다.

아.... 이래서 불혹이라고 하나?

나는 이제 유혹에 넘어지지 않는 완성형 인격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인가?라는 희미한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나를 모르겠고

다른 사람의 마음은 더욱 모르겠으며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틀릴 수 있다는 혼돈 속에 대환장파티 중이다.


나의 이런 마음을 지인과 나눈 적이 있다.

그녀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불혹의 기준이 달라졌어.

60세만 넘어도 잔치를 해주던 그 시절의 불혹은 생의 절반을 지나 죽음을 바라볼 때였을 거야.


어찌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나에게 아직 시간이 좀 남은 것 같았다.

아직은 조금 더 방황하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해도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 까짓 거

100세 시대니까 50까지는 맘껏 실컷 우당탕 시행착오해 보지 뭐!


너무 부끄럽지만

성인이 된 아들에게는 엄마가 지금 여전히 아직도 많이 배워야 하니 틀리면 알려주고 헤매면 기다려달라고 말이다.



나라는 사람이 나를 돌아보고 내 삶을 정돈하려는 시도는 내가 부모가 된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무거운 형벌을 짊어지게 되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시선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자식 앞에 부끄럽지 않은지 곱씹어보게 되었다.

이제는 내 아이가 성인이 되어 나의 부족함과 불완전함을 감출 수 없기에 때때로 용서와 이해를 구하며 지내고 있다.


눈앞의 다른 사람의 허점은 잘도 보인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지적질하고 점수를 매기기도 한다.

오.... 저런 점은 플러스

아... 저건.... 좀.... 마이너스....


그래서 나도 저렇게 해야지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타인을 기준 삼아 나를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 비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또다시 한계에 부딪힌다.


이제는 출발점을 다시 정해보려 한다.

나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이런 점은 정말 이불킥이야....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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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런 점은 괜찮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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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나를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삶의 태도를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