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닌 지 20년이 넘었다. 첫 아이 출산으로 2년 정도의 육아기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회사를 다닌 것이다. 항상 나는 아무개 회사, 인사부 아무개였다. 그렇다 보니 어떤 경우는 내 이름이 아닌 회사명으로 기억되고 불리기도 하였다. 또 다른 내가 바로 회사였던 것이다. 이렇게 나라는 사람을 대신해 주는 회사는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보려 한다.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경제적 의미가 크다. 아이가 아프고 내가 아파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곳이 회사였다. 아이가 어려서 일 년이라도 휴직하고 싶어도 이 또한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했다. 업무 책임과 압박감, 그 안에서 형성되는 관계 속 갈등 때문에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머뭇거리게 한 것은 '당장 회사를 그만두면, 안정적인 수입의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집에서 아이만 키우면 나는 엄마로만 기억되는 것인가?'라는 고민이었다. 그동안 쌓아 놓은 경력과 이미 나의 브랜드가 된 회사를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에게 회사는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정체성이라는 의미였다.
자세를 바로잡고 코칭적인 측면에서 다른 의미의 회사는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본다.
'고객님한테 회사의 또 다른 의미는 무엇인가요?
잠시 눈을 감고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가본다. 그리고 천천히 현재까지의 회사생활을 돌이켜 본다. 인생의 절반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무엇을 했으며 어떻게 변화했는가?
신입사원 시절을 떠올려보자.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 신입은 회사업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부족한 역량 때문에 상사와 선배들에게 때론 눈칫밥을 먹어가며 일을 배우기도 했다. 실수라도 하면 눈물 나게 혼나기도 했다. 경력이 4~5년쯤 되었을 때는 처음으로 프로젝트를 리드해보기도 했다. 프로젝트 관리 및 프리젠테션, 자료 분석하는 스킬을 계속 익혀나갔다. 10년 차 정도부터는 해외로 출장도 다니면서 교육도 받고 다시 직원들에게 교육도 하였다. 다른 나라 동료들과 함께 업무를 진행하면서 경쟁력도 키웠다.
해마다 노동부 감사, 본사 감사를 받으면서 업무프로세스와 기준을 확립해 나갔다. 수차례 있었던 인수합병으로 보상과 평가, 직무를 분석하고 통합하는 일도 완료했다. 처음에는 복잡하고 힘들었지만 몇 번 진행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겼다. 쉴 틈 없이 바쁜 와중에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원도 졸업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회사를 통해 코칭도 접하게 되었다.
이렇게 다시 되돌아보니, 나는 회사를 통해서 20년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속적으로 천천히 성장하고 있었다. 회사는 돈을 줘가면서 내가 더 단단해지도록 성장시켰던 것이다. 회사의 의미를 표면적으로만 생각하면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정체성이었다면, 내면 깊은 속을 들여다보면 "성장"인 것이다. 잠시 생각해 본다. 회사를 다니지 않았다면 과연 나는 현재의 나였을까? 현재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상상이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를 성장시켜 준 회사에서 이제는 내가 조직원들의 성장을 도와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나 또한 여전히 회사에서 그들과 함께 또 다른 성장을 할 것이 분명하다. 그들도 나처럼 한 20여 년이 지난 후에 '회사'는 나를 '성장'시켜준 곳이라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