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중심 인사의 도래 (1)

조직과 개인의 동반성장을 위한 해법, 직무중심 인사의 시대가 온다

by 조직과 사람사이

사람중심 인사의 그늘, 불편한 진실

“일은 B가 하고, 승진은 A가 한다.”


어느 기업이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여전히 많은 조직에서, 평가와 보상은 ‘성과’ 보다는 ‘나이, 근속기간’에 의해 결정된다.


한 예를 살펴보자. 45세 김 차장은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진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오랜 근속과 승진 후보 연차에 도달했다는 이유로 이번 인사평가에서 최고 등급(S등급)을 받고 부장으로 승진했다. 실질적인 업무는 대부분 젊은 과장들이 맡고 있었지만, '연차가 됐으니 승진해야 한다'는 조직 관행이 우선시됐다.

반면, 같은 부서의 이 차장(42세)은 뛰어난 프로젝트 성과로 부서 실적을 이끌었지만, 승진 후보 연차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가등급 B를 받았다. 회사는 "내년에 승진을 고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최 차장에게는 뼈아픈 결과였다.


1년 뒤, 김부장은 승진 후 평가등급 C를 받았다. 이는 실적 부진 때문이 아니라, 조직 내 다음 승진자를 고려한 평가 조정이었다. 반면, 이 차장은 계속해서 탁월한 성과를 내며 A등급을 받아 결국 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조직은 이미 유능한 인재들의 사기를 꺾고 이탈을 촉진하는 부작용을 경험해야 했다.

이러한 사례는 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며, 연공서열에 기반한 인사관리는 수십 년 간 한국 기업의 표준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연공 중심’ 인사의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 근속연수나 직급에 따른 자동적인 승진과 임금 인상은 실제 업무 성과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성과를 낸 사람이 인정받지 못하면 다른 구성원들의 동기도 저하되고, 핵심인재는 이탈하며 남은 이들은 점차 소극적으로 변한다. 즉, 사람을 중시하는 문화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성과를 외면할 때 조직은 스스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길을 걷게 된다.


변화를 요구하는 세상, 직무중심 인사의 도래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직무중심 인사가 확산되고 있다. 직무중심 인사는 개인의 연공이나 상사와의 관계가 아닌, 맡은 일에 대한 난이도 및 기여도에 따라 평가와 보상을 결정하는 체계로서 이를 위해 각 직무의 가치를 명확히 정의하고, 그에 적합한 인재를 배치하여 성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적재적소(適材適所)’에서 ‘적소적재(適所適材)’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전자가 ‘좋은 인재를 발굴해 적합한 일을 맡기는’ 방식이라면, 후자는 ‘일을 먼저 정의하고 그에 맞는 사람을 찾아 배치하는’ 접근법으로, 이는 사람 중심에서 일(직무) 중심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직무중심 인사체계로 전환이 더욱 시급해진 배경에는 급변하는 경영환경이 있다. AI의 급속한 발전, 디지털 전환, 불확실한 경제환경 등은 조직 내부의 민첩성과 전문성을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하게 필요로 한다. 단순히 오래 근무했다는 이유로 임금을 상승시켜주는 구조로는 이러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선도하는 사례로, 롯데그룹의 행보가 주목된다. 최근 주요 계열사에 직무중심 보상체계(직무급)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롯무원(롯데 + 공무원)’이라 불리며 안정적 고용문화로 알려졌던 롯데그룹이 유통, 화학 부문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일하는 방식과 문화’의 혁신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기획재정부는 2024년 10월 연공성 완화와 전문성 강화를 위한 직무중심 인사/조직 관리 방안을 발표하였으며, 정치권 또한, 노동 유연성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임금체계 개편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이처럼 산업계, 공공부문, 정치권 모두에서 직무와 성과 중심의 인사체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는 점은 한국 사회 전반의 ‘일하는 방식의 대전환’이 시작되었음을 시사한다.


이제는 '누가(Who)'가 아니라 '무엇(What)'을 묻는다


전통적 인사체계는 '이 사람이 조직에 얼마나 오래 근무했는가?'를 중요시했다. 그러나 직무중심 인사에서는 이러한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이 사람이 이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가?', '조직 목표 달성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를 묻는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히 인사제도가 변화하는 것을 넘어, 조직문화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승진, 평가, 보상 등의 인사제도는 한층 더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져, 근속연수나 나이가 아닌 실제 기여도에 따른 평가와 보상이 가능해진다. 이는 젊은 세대에게는 공정한 기회를, 경력자들에게는 전문성을 인정받는 환경을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자신의 경력 방향을 스스로 설계하고 필요한 직무 역량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주체적 성장 문화가 형성된다.


조직 역시 일을 기준으로 인재를 관리하게 되면서, 각 업무에 가장 적합한 인재를 배치하여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변화하는 환경에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체질을 갖추게 된다.


결국 직무중심 인사는 ‘오래 머문 사람’이 아닌 ‘필요한 일에, 필요한 역량을 갖춘 사람’이 인정받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미래 조직의 경쟁력과 개인의 성장을 동시에 실현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직무를 중심에 두면, 조직도 직원도 성장한다


앞서 언급했듯, 직무중심 인사로의 전환은 일하는 방식과 조직 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도전과제를 수반한다. 한국사회에서 나이와 경력에 기반한 오랜 관행을 바꾸는 과정에서 저항과 불만이 따를 수 있다. 노조의 반발이 변수가 될 수 있으며, 직무에 따른 임금 차등으로 직군 간 갈등도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직무중심 인사의 성공적 도입을 위해서는 이러한 갈등과 저항을 충분히 인식하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성공의 핵심은 변화 관리에 있다. 최고 경영진을 비롯한 모든 구성원이 직무중심 인사의 필요성과 가치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내부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러한 공감대는 직원들이 특정 직무를 수행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자연스럽게 증가시키고, 적합한 인재를 찾는 내부 시장(Internal Market)이 발전하게 된다. 이를 통해 조직은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직원들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며 성장할 수 있다.


이제는 묻고 확인해야 한다. 누가 오래 일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가장 잘할 수 있는가를, 그리고 그 답을 찾아 실천하는 조직만이 미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직무중심 인사는 단순한 HR 트렌드가 아니라, 조직과 개인이 급변하는 환경에서 함께 성장하기 위한 필수적 패러다임 전환이며, 조직과 직원 양측에게 혜택을 주는 진정한 Win-Win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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