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을 넘어가며 가끔 잠과 사투를 벌인다. 또 살과 힘겨루기를 하며 늘 지고 만다.
잤다 깼다 하기를 서너 번 해야 하루 밤이 지나간다. 오늘은 줄어들지 않는 몸무게를 이겨보려고 저녁을 안 먹고 버텼더니 배가 고파 잠이 안 온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다 자리를 박차고 앉아 처음으로 여기에 글을 써본다. 며칠을 건강에 대한 염려로 마음이 고달팠다. 내일 병원을 가서 검사를 할까 아니 지난번 검사 결과를 기다려볼까 머릿속이 뒤숭숭하다.
잠은 안 오고, 정신은 말똥말똥한데, 늘어나는 약만큼 마음도 묵직해진다. 새벽이면 늘 일어나 밤새 부엌 싱크대에서 수도랑 씨름하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당신의 힘겨웠던 삶이 이제야 보이고 마음이 아프다. 왜 좀 더 헤아리지 못했을까? 왜 몰랐을까? 당신의 나이가 된 뒤에야 그 아픔이 느껴지고, 왜 말이 줄어들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거 같다.
얘, 잠깐 와봐라. 너네 아버지 이상하다. 나이 60에 느닷없이 치매 검사를 받으러 당신 손을 붙들고 병원을 들락거렸다. 넋을 놓은 얼굴, 문갑 뒤로 가득 찬 휴지들. 여기에 버리지 말라고 했잖아요. 잘못했어요, 아줌마. 그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신이 딸을 잊었다. 텅 빈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아줌마란다. 기가 찼다. 너무 놀라 눈물도 안 나더라. 1 더하기 1 같은 어이없는 치매검사에 아주 귀찮아하는 얼굴이 역력하게 의사를 쳐다봤다. 며칠을 검사 한 끝에 의사는 갑상선 기능 항진이라는 병명을 내놨다. 촉촉한 손바닥, 두 팔을 나란히 들고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확인한 뒤에 나온 결과다. 며칠 입원한 뒤에 병원 문을 나서면서 서른이 다 된 딸을 따라 나오는 당신은 아이 같았다. 갑상선 이상이라는데, 당신은 나를 딸로 기억하지 못했다. 치매에 좋다는 한약을 먹은 후에야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알아봤다.
당신은 할 일이 없었다. 일찍 놓은 직업으로 무료한 시간을 오래 버티며 살았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늘 부끄러웠다. 부모님 직업 칸만큼 모멸감을 느끼게 만드는 빈칸이 있을까? 돈 잘 버는 모친의 극성맞은 치마바람으로 난 늘 학교 선생들의 자랑스러운 보너스였다. 월급만큼이나 많이 주었으니까. 모친의 훌륭한 경제력은 당신을 더욱 위축시켰고, 할 일이 없던 노년은 더욱 쓸쓸하게 말라갔다. 기자 출신답게 입담이 훌륭했고 나를 붙들고 모세의 기적부터 성경을 몇 시간씩 강의하던 솜씨는 점점 줄어갔다.
어디를 다니는지, 갈 곳도 없이, 돈도 없이 어디로 나섰던 걸까? 주머니에 돈도 변변히 없었을 텐데 어디를 갔을까? 사업을 한답시고 집안의 재산을 몽땅 들어 내버리다시피 한 이후 당신은 술로 몇 년을 보냈다. 당신이 술 마시고 돌아온 날은 밤새 식구들을 돌아가며 괴롭혔고 지긋지긋한 집구석에 환멸을 느낀 나는 술로 세월을 보냈다. 복권 한 장이 제대로 맞기만을 바라며 사고 또 사고, 허무하게 끝나버린 희망을 부여잡고 또 복권을 사 와서 아이처럼 자랑하던 당신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시리다. 얼마나 돈을 벌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얼마나 돈을 갖고 싶었으면 복권 사는 것을 자식한테 자랑했을까? 집 앞 가게에서 돈을 꾸고 대추나무 연 걸리듯 여기저기 푼돈을 꿔서 부끄럽지도 않냐고 난리 치던 모녀의 잔인한 합창에 당신은 술주사로 답했다. 내가 당신이 미워 술로 길거리를 헤매는 동안 당신은 술주사로 모녀를 들들 볶았고, 동생과 모친은 밖으로 도망을 쳤다고 했다.
그런 당신이 말을 잃었다. 할 말이 너무 많아 식구들을 쫓아다니며 이야기를 하던 당신이 말을 잃었다. 너네 아버지 이상하다 와보라는 말에 달려간 나는 또 기가 찼다. 말이 많다고 모친한테 타박을 받던 당신이 말을 잃었다. 갑상선 항진으로 치매 증상처럼 나타났던 기억의 오류는 아예 말을 잃게 만들었다. 사는 게 지긋지긋했을까? 말도 안 통하는 가족이 지긋지긋했을까? 말해봐야 소용도 없고, 늘 무시당하던 당신의 삶에서 입을 닫기로 했을까?
고혈압에, 고지혈에, 당뇨에 점점 먹을 약이 늘어간다. 갑상선도 의심스럽단다. 당신도 이렇게 아팠던 거다. 귀찮았던 거다. 자도 자도 풀리지 않는 피곤에 잠도 오지 않는 밤에 앉아, 벌건 대낮에 하루 종일 누운 채로 지내던 당신이 자꾸만 그립다.